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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이 있는 풍경_영양군(2)]영양산성(英陽山城)
    컬처라인 | 2018-10-22 프린트 퍼가기
  •  

     

    마을이 있는 풍경

     

     

    영양산성(英陽山城)

     

     

    김범선

     

     

     

     외지 사람들이 감천1리 진막골 모퉁이를 돌아 영양읍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이 해발350m의 동산(東山)이다

     영양읍 사람들은 동산에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고, 저녁에는 탕건봉(宕巾峰)에 지는 해를 보며 하루가 지나간다. 신라시대 영양군은 옛 고(古), 숨을 은(隱), 고을현(縣),을 써 고은현(古隱縣)이었다. 한마디로 한국의 샹그릴라였다. 옛날부터 영양읍은 도적이 없었다. 그 이유는 지금처럼 자동차가 많지 않았던 시절에 범죄자들은 외부로 도망갈 길이 세길 뿐이었다. 안동으로 나가는 31번 국도나 봉화로 가는 911번 지방도, 그리고 영해로 나가는 918번 지방도 뿐이었다. 그 세 길만 검문 하면 모두 잡혔다. 그래서 영양읍은 도적이 없는 은둔자의 고장이요, 해와 달의 신비의 고을이었다. 

     

     

    “고(告) 합니다.”

    말을 타고 달려온 포졸이 숨이 차서 헐떡이며 말했다. 

    “빨리 고하라.”

    “국왕과 노국공주는 홍건적에 쫓겨 복주(안동)로 왔고요, 놈들은 임동 가랫재를 넘어 진보로 오는 것을 봤습니다요. 도적들은 머리에 붉은 띠를 두루고 백성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가옥을 불 지르며 노략질을 하고 있습니다.”

    포졸이 숨이 넘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여봐라, 그게 정말이냐, 니 눈으로 직접 봤느냐?”

    “예, 현감나리.”

    “좀 더 자세히 고하거라.”

    “놈들은 짐승보다 못한 흉악하고 무서운 도적떼들입니다.”라며 포졸은 그가 수집한 정보를 이렇게 알려 주었다. 

     

    1357년 기마민족인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 말기, 한족은 백련교를 중심으로 중국 각지에서 저항운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원나라와 전쟁을 했는데 몽골족의 강력한 토벌에 쫓겨 한족 20만 대군이 한반도로 도망을 쳐 고려를 침략했다. 

    수도 개경이 함락되고 공민왕은 노국공주와 함께 순흥 도호부를 거쳐 영천(영주)현 평은면에서 일박 후 복주(안동)으로 몽진하였다. 평은면 왕유(王留)라는 지명은 그런 연유로 붙여진 이름이다. 

    안동 부민들은 삼태사와 힘을 합쳐 홍건적과 싸웠는데 홍건적들 중 일부가 진보를 거쳐 영양현으로 쳐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여봐라, 황룡장수를 빨리 들라 하고, 백성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소집하여라.”

    영양현 사람들이 모두 관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황용장수가 관아에 들어서자 현감은 다급한 목소리로,

    “장군, 큰 일 났소, 홍건적들이 진보까지 쳐들어 왔다하오. 놈들을 어떻게 막아야 할지 걱정이요.”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나 황용장수는 차분한 목소리로,

    “현감께서는 백성들과 함께 관아 맞은편 산위에 성을 쌓으십시오, 저 산은 반변천(半邊川)을 낀 요충지로 산에 성을 쌓고 길을 차단하면 한 놈도 못 들어 올 것입니다.”

    “그럼 장군은?”

    “소생은 감천으로 가서 병졸들과 함께 매복으로 진을 펴고 놈들이 오면 일거에 섬멸 하겠습니다.”

    “장군의 작전이 맞겠소?”

    “장수는 전쟁에 허언이 없습니다. 군령장을 쓰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감은 오늘날 산성이라고 부르는 곳에 성을 쌓고 황용장수는 감천에 진을 펴고 매복을 하여 홍건적을 물리쳤다.

     


     

    지금의 감천 1리 진막골(陣幕谷)이라는 지명은 당시 황용장수가 진을 치고 매복으로 적을 기습하여 물리친 것에서 유래되었다. 그리고 영양현을 지키기 위해 현 2리 거도산(鋸刀山) 절벽 요충지에 축성한 산성은 전형적인 고려시대 축성 기술로 잡석으로 담장을 쌓듯 타원형으로 축성을 하였는데, 앞에는 반변천이 휘감아 흘러 공격은 어렵고 방어하기에는 아주 좋은 곳으로 지금도 성의 일부가 남아 있다. 지금의 도로명인 산성로는 그렇게 해서 생긴 이름이다.

     

    그럼 황용장수라는 사람은 누구일까. 전설 속에 등장하는 그 이름은 지금의 황용리 사람이었다. 황용리의 입구에는 도뭇골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곳은 원래 도곡(陶谷)으로 불리던 곳으로 그릇을 굽던 곳이었다. 현재 이곳의 행정구역명은 영양읍 동부 2리에 속한다.

    황용(黃龍)골은 천년 고찰 황용사(黃龍寺)가 있던 곳이다. 그곳은 원래 황용사지(黃龍寺址)의 절 골이었다. 옛날에는 도뭇골과 황용골 접경지점에 승용차만한 바위 세 개가 겹쳐져 있었다. 영양 사람들은 그 바위를‘장수바위’라고 불렀다. 이제는 세월의 무게로 바위를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지금도 도뭇골 사람들에게 장수바위의 위치를 물어보면 그것을 알고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 그 곳엔 옛날의 장수바위는 없어지고 참남배기로 올라가는 목재 가교가 놓여 있다.

     

    황용장수는 도뭇골 도공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일곱 살 때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가 일을 하러 나가면 혼자서 무술을 연마했다. 힘이 장사로 열 살에 콩 한 가마니를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올렸다고 한다. 아버지가 딸이 하나 딸린 과부와 재혼을 하자 계모 손 씨 슬하에서 컸다. 황용은 밤이면 훌쩍 없어졌다가 새벽이면 바지가 물에 흠뻑 젖은 채 집에 들어와 늦잠을 잤다. 

    어느 겨울밤 계모는 아들이 밤마다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 뒤를 밟았다. 아들은 도뭇골 장수바위로 갔다. 그리고 웃옷을 벗고 승용차만한 바위를 공깃돌처럼 검은 밤하늘에 높이 던져 올리며 힘을 기르고 있었다. 그 소년이 청년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황용장수라 불렀다.

     

     

     

     

     

    산성에는 일제강점기인 1934년에 대은(大隱) 권영성(權永成,1881년-1959년) 선생이 영양사정(英陽思亭)이라는 정자를 지었다. 이 정자는 전통 한옥양식에 붉은 벽돌과 인조대리석으로 지은 특이한 건축물로, 2004년 3월 11일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457호로 지정이 되었다. 또 팔수골 입구 밭둑가에 어머니를 생각하는 사모비(思母碑)를 세웠는데 전해지는 말로, 어린 시절 모친이 밭을 맬 때 어린 아들을 그 곳에 두고 일을 한 장소라고 한다. 아쉽게도 지금 그 사모비는 어디로 갔는지 그 자리에 없다.

    선생은 거부(巨富)로 많은 교육시설에 기부하셨고, 수해가 지거나 흉년이 들면 재물을 풀어 많은 사람들을 굶주림에서 구휼하신 소위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몸소 실천하셨다. 1959년 그 분의 장례식 날 영양중고등학교 전교생이 산성에 있는 그 분의 산소에 참배를 갔다. 아마도 학교용지가 그 분이 기증한 부지여서 그랬을 것이다.  

     

    필자는 어린 시절 조부와 산성에 자주 갔다. 조부와 권영성 선생 두 분은 바둑친구로 서로 호형호제하는 사이었다. 선생은 키가 크고 호리한 몸집에 말씀도 조용히 하시는 귀골(貴骨)로, 항상 깨끗한 한복을 입고 계셨으며 청빈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고 계셨다. 당시 두 분은 영양사정 옆 살림집 사랑방에서 바둑을 두셨다. 같이 계시는 할머니께서 곶감을 주셨는데 그 자리에 내 또래의 소녀, 머리를 길게 땋고 한복을 곱게 입은 여자애와 같이 놀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 김범선 글쓴이 : 김범선 김범선(소설가)

    경북고등학교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한국문인협회문단윤리위원
    국제펜클럽한국본부회원
    한국소설가협회중앙위원

    작품
    눈꽃열차, 비창1,2권. 황금지붕, 개미허리의 추억(상, 하권), 킬러밸리. 노루잠에 개꿈, 당콩밭에 여우들, 영혼중개사, 협곡열차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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