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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쑤세미의 골방에서 만화 읽기]고달픈 인생, 소소한 웃음, 어쩔 수 없는 것들
    컬처라인 | 2018-11-19 프린트 퍼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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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쑤세미의 골방에서 만화 읽기

     

     

    고달픈 인생, 소소한 웃음, 어쩔 수 없는 것들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백소애  

     

    자기계발서가 한창 유행일 때였다. 어떤 책에서 주장했던 것이 ‘핵심에 집중하라’였다. 가령 운전시비가 있을 때 “운전 똑바로 해, 이마에 피도 안 마른 것이!”라고 하면 십중팔구 싸움이 난다. 그런데 이때 “이마에 피도 안 마른 것”에 집중하지 말고 핵심인 “운전 똑바로 해”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내가 운전을 못해서 사고가 날 뻔해서 저 사람이 화가 났구나, 이렇게 이해하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싸움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 내가 내린 결론은 그건 보살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라는 거다. 삶이란 조금은 비겁하고 때론 치사하고 때론 억울할 때도 있는데 그때마다 평화모드로만 갈 수도 전투모드로만 발동 걸 수도 없는 노릇, 나만의 현명한 방법으로 대처해나가면 된다. 그 방법은 의외로 간단한 것 같다. 바로 ‘유머’ 하나만 첨가 하면 된다.

     

     

     

    도시엔 마음 놓고 울 공간이 없으니 쓰지 않는 전화박스를 철거하지 말고 거기에 커튼을 달아 ‘공중울음박스’로 만들자고 한다. 길을 걷다가 울고 싶어지면 그곳에 들어가 조용히 울고 나올 수 있도록 말이다. 비 오는 밤, 서로의 신상 따위는 묻지 않고 약속한 비밀 장소에 모여 파전만 묵묵히 부쳐 먹고 헤어지는 ‘파전 비밀 결사대’가 있으면 좋겠단다. 시내버스 ‘하차 벨’ 옆엔 ‘아차 벨’이라는 아주 구슬픈 음악을 만들어 정류장을 지나친 이들을 배려해주고, 누군가 아주 씩씩하게 퇴근을 한다면 그 사람 집 냉장고에는 분명 맥주와 피자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짐작한다. 또, 비상시를 대비하여 초콜릿, 맥주, 마른오징어 따위를 담아둔 응급상자를 구비해 놓아야한다는 등의 아주 바람직한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한다. 웹툰 작가 ‘도대체’가 말이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나에게도 아이디어가 몇 개 있다. 그 옛날 찹쌀떠~억 메밀묵~처럼, 한밤중 누군가 “맥주 있어요~ 오징어” 이렇게 외치면 단박에 나가서 살텐데, 그런 사업을 한번 해볼까. 운동화세탁소를 차려서 그냥 내가 손으로 빨아야겠다, 초기 자본도 안들텐데. 비오는 날 버스정류장 앞에서 김치전과 막걸리 세트를 묶음으로 팔아야지. 행복한 사람들의 행복을 헬륨가스처럼 넣고 다니면서 불행한 사람들에게 나눠줘야지, 쓰레기 안 치우는 옆집 아줌마네 집 앞에 벌레를 갖다놓아 혼자만 아는 소심한 복수를 꾸준히 해야지. 이렇게 시답잖은 아이디어에 혼자 즐거워하곤 한다.

     

     

     

    도대체의 그림 에세이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는 일기장과 다름없다. 그녀의 일상이 차분하고 간단명료하게 그려져 있다. 오후 4시에 오늘 할 일은 이미 다 끝냈지만 부장이 눈치챌까봐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직장인의 모습이나, 사냥을 마치면 놀이 활동을 하거나 여행을 간다는 범고래의 다큐멘터리를 보며 범고래보다 못한 인생이라며 푸념한다. 사회생활이란, 중학교 때 전교1등을 한 적이 있다고 말하는 직장동료에게 “늦었지만 축하한다.”고 말하는 것이라는 대목에서 슬며시 웃다가, ‘강하다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는 게 아니라 거부할 줄 아는 것’이라는 대목에선 사뭇 작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된다.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는 생활 웹툰 속에서도 근성 있게 띄엄띄엄 인생기술의 철학을 전파하고 있는 작가는 그런 자기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어쩐지 웃기는 상황을 발견해내는 특기를 살려 작은 웃음에 집중하는 글과 그림을 생산하고자 한다. 취미는 자화자찬.’ 이렇게나 귀여운 자화자찬은 팬시용품에 그려진 캐릭터처럼 아기자기한 그림체와 간결한 내용이 만나 빛을 발한다. 불안한 마음이 들 때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중얼거리고, 퇴사를 결심했는데 모레 회사에 도착할 택배와 치과견적 때문에 보류하고, 허공에 쓸데없이 발길질한 에너지를 모았다면 남은 생의 긴긴 밤에 전구를 켰어도 켰다라는 그녀의 유머에 시종일관 키득거리게 된다.

     

     

    작가 ‘도대체’는 인터넷에 무심코 올린 만화 〈행복한 고구마〉가 큰 인기를 끌면서 유명세를 탔다. 자신을 인삼이라 생각한 고구마가 행복에 겨워있자 이를 보고 샘이 난 다른 인삼이 고구마임을 깨우쳐주지만, 그것조차도 행복해하는 고구마의 이야기다. 목표, 목적, 꿈, 평가와 평판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겐 조건 없이 그저 해맑은 고구마의 행복이 절실히 필요하다.

     


    도처에 우울증 환자다. 물론 자가 진단자가 반 이상일테지만. 엠넷 ‘고등래퍼2’에 출연한 김하온은 ‘증오는 빼는 편이야, 질리는 맛이기에’라고 노래하는데, 열여덟 살 보다도 더 못한 멘탈로 살아가는 어른들 세상이다. 자존감 상실의 시대다. 인정욕구가 큰 사람은 자존감이 낮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4차산업이니 최첨단시대니 해도 사람들은 더 지친 얼굴로 살아간다. 불안한 마음이 생기면 ‘뭐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는 걸 어쩌겠어.’ 하며 도대체 표 ‘어쩐지 의기양양’에 도전해보자. 섣부른 위로도 어설픈 공감도 주고받을 일 없이 내 마음의 감정부터 잘 다독여주면 된다. 나부터 건강한 게 중요하다. 나의 행복이 곧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일테니까. 작가 ‘도대체’의 유머러스하면서도 게으르고 따듯한 시선이 좋다. 그러니까 우리도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도대체 글, 그림/ 예담/ 값13,800원

     

     

  • 쑤세미 글쓴이 : 쑤세미 강원도 태백 출생. 아이큐는 낮지만 머리가 좋다고 굳게 믿고 있음. 변덕이 심하고 우유부단하나 따뜻한 품성을 지니고 있다. 조카들에게 헌신적이며 인간성 또한 좋다.....고 믿고 있다.

    학생 때 교무실에서 밀대자루로 바닥 밀면서 은밀히 훔쳐본 생활기록부에는 ‘예의 바르나 산만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한참을 갸우뚱 하다가 담임이 수학선생님이었기에 그냥 이해하기로 함. 다소 후진 취향을 지니고 있으나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고 쓸데없는 걱정과 호기심이 많음. 같은 계획을 몇 년째 하고 있으며 역시나 올해도 다이어트와 앞머리 기르기에 도전할 생각이며 과메기에 없어서는 안 될 다시마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생각.

    웹툰도 괜찮지만 만화책은 역시 종이책으로 보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아날로그 건어물녀. 좋아하는 것은 무한도전, 오뎅으로 만든 떡볶이, 삼겹살에 매실소주, 비오는 날, 생활의 달인,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괴짜가족 류의 저질유머. 비 오는 날 무한도전 틀어놓고 배 깔고 누워 만화책 보면서 빈둥거리며 사는 것이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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