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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의 종택]송암종택 관물당
    컬처라인 | 2018-12-18 프린트 퍼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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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이 있는 풍경

     

     

    송암종택 관물당

       

    松巖宗宅 觀物堂

     

    박장영

     

     

    종택이 있는 곳

    송암종택은 안동시 서후면 교리향교길 45-18에 위치한 송암 권호문(松巖 權好文, 1532~1587) 선생의 집으로 조선 전기

    전통 가옥이다. 종택의 건립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가옥 내 사랑채 오른쪽에 1569년(선조 2)에 권호문 선생이 건립한 관물당(觀物堂)이 있다. 관물당은 현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1호로 지정되어 있고, 퇴도선생필법(退陶先生筆法) 및 퇴도선생유첩(退陶先生遺帖)은 보물 제548호로 지정되어 있다. 퇴도선생필법은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선생이 그의 제자인 송암 권호문 공에게 글씨 체본(體本)으로 써 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大)·중(中)·소(小) 등 크고 작은 글씨체와 해(楷)·행(行)·초(草)의 각체를 구별하여 따로 써 주었다. 퇴도선생유첩은 2책으로 장첩(粧帖)되어 있는데, 스승인 퇴계선생의 편지를 모은 것이다. 

     

    이곳에 가려면, 안동에서 국도 34호선을 따라 예천 방면으로 4㎞ 정도 가면 송야사거리(서의문)가 나온다. 이곳에서 우회전하여 서후면소재지 방향으로 500m 정도 가면 도로 왼쪽에 안동권씨 복야공 단소를 가리키는 표지석이 나오고 멀리 마을이 보인다. 이 표지석을 따라 마을로 들어가는 농로로 접어들어 900m 정도 가서 산등성이를 돌면 완만한 언덕길 위에 남향으로 송암종택이 나온다. 

     

     

     

    당호의 유래

    관물당은 1569년(선조 2)에 송암 권호문 선생이 건립하여 학문을 강론하던 정자 건물이다. 송암선생의 평생 공부는 ‘관물’에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물이란 인간 내면 수양이자, 동양철학의 전형적인 수양 과정이며 숙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관물당이란 스승인 퇴계선생이 직접 지어준 것으로, 이후 자신의 당호로 그리고 후대에는 송암 종택의 명예로운 이름으로 인구에 회자된다. 

    ‘관물당 종가’ 하면, 영남에서는 서애 종택인 충효당(忠孝堂), 학봉 종택인 풍뢰헌(風雷軒), 오천 군자리의 후조당(後凋堂) 종택 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후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에게 존경과 인정의 대상이 된 집이다.

    현재 관물당에는 퇴계선생이 그에게 준 「기제관물당(寄題觀物堂)」을 위시해서 기문과 당시 명사들의 시판이 걸려 있다. 

     

    기제관물당(寄題觀物堂)

     

     

     

     

     

    건축물의 구조와 배치

    건물의 평면은‘ㅁ’자형이며 대문채와 사랑채, 헛간채, 안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붕은 안채와 사랑채는 팔작지붕이고, 나머지 부속 건물은 맞배지붕이다. 대문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이다. 중앙의 대문은 솟을대문으로 만들어 가옥의 위엄과 웅장함을 살렸다.

    그리고 대문에 딸린 행랑채는 양쪽에 각각 1칸 반의 방과 광, 화장실로 구성하였다. 건물 밖에서 대문채를 보았을 때 왼쪽 끝 반 칸이 화장실이고 오른쪽 끝 반 칸이 광이다. 행랑채의 방과 화장실에는 각기 문을 설치하였으나 광에는 문을 설치하지 않고 개방하였다.

    사랑채는 본채의 동편에 위치하며 높이 60㎝ 정도의 막돌 허튼층쌓기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았고, 사각기둥을 세웠다. 크기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이다. 앞면 반 칸에는 난간을 두른 누마루를 설치하였다. 누마루 측면은 판벽을 하였으며, 누마루에 출입할 수 있도록 판문을 설치하였다.

     

    누마루로 올라서면 왼쪽에 2칸통인 사랑방이 있고 오른쪽에 1칸의 마루방이 있다. 마루방 앞면에 사분합을 설치하여 누마루와 연결하여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마루방 측면에는 쪽마루를 설치하였다. 사랑채 어칸 문 위에

    「송암종택중수기(松巖宗宅重修記)」 현판이 걸려있다. 사랑채 옆은 중문이다. 중문 옆에는 안채에서 출입할 수 있도록 한 광이 차례대로 2칸 있다.

     

    안채의 정면은 5칸의 크기이다. 안마당의 바닥과 기단은 시멘트로 처리하였으며 기단의 높이는 60㎝ 정도이고 홑처마로 되어있다. 안채의 동편에 2칸통인 대청이 있으며, 대청의 오른쪽 칸은 우익사(안마당에서 볼 때)와 연결하여 2칸통을 사용하는 방이다. 이 방 아래의 익사는 부엌, 방, 방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익사의 끝방은 사랑방과 장지문을 두고 출입할 수 있게 하였다. 대청의 왼쪽은 1칸 반통을 사용하는 방인데, 대청과 면한 부분을 반 칸 정도 물려서 마루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방은 좌익사의 주방과 면하고 있다.

     

     

     

    송암 권호문

    송암 권호문 선생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본관은 안동이고 자는 장중(章仲), 호는 송암(松巖)으로 퇴계선생의 문인이다. 선생은 1561년(명종 16) 30세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3년 후 모친상을 당하자 벼슬을 단념하고 청성산(靑城山) 기슭에 연어헌(鳶魚軒)을 짓고 유연자적하였다. 15세에 퇴계선생의 문인이 되어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선생과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선생 등과 동문수학하였고, 이들로 부터 학행을 높이 평가받았으며, 만년에 덕망이 높아져 찾아오는 문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타고난 천품이 남달라 스승인 퇴계선생은 그를 가리켜 ‘소쇄산림지풍(瀟灑山林之風)’이 있다고 했고, 벗인 서애선생도 ‘백세(百世)의 사표(師表)요, 강호의 고사(高士)’라 칭송했다. 

    저서로는 『송암집(松巖集)』이 있으며, 작품으로는 경기체가의 변형 형식인 독락팔곡(獨樂八曲)과 연시조인 한거십팔곡(閑居十八曲)이 송암집에 전한다. 독락팔곡은 현존하는 마지막 경기체가(景幾體歌) 작품으로 제목은 8곡이나 7곡만 문집에 수록되어 있고, 작품 전반에 은일한 선비의 격조가 담겨 있다. 

     

    자연에 묻혀 산 선생의 삶은 그가 남긴 연시조 ‘한거십팔곡(閑居十八曲)’에서 담담하게 펼쳐지고 있다. 모두 19수에 이르는 이 노래는 벼슬길과 은거생활의 갈등에서 부터, 속세에 연연하지 않고 강호의 풍류를 즐기며 살아가는 심회를 담담하게 읊조리고 있다. 그러나 강호한정을 노래한 일반적인 시조들과 달리, 이 작품에는 벼슬길에 올라 입신양명하는 삶에 대한 미련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즉, 선생의 벼슬길과 자연에 은거하는 삶 사이의 현실적인 내적 갈등을 보여 준다 하겠다.

     

     

     

     

     

     

     

     

     

  • 박장영 글쓴이 : 박장영 현 안동민속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전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 콘텐츠연구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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