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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송 세계지질공원 훑어보기]수락리 주상절리, 잘생긴 돌기둥
    컬처라인 | 2019-04-22 프린트 퍼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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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송세계지질공원 훑어보기

     

     

    수락리 주상절리, 잘생긴 돌기둥

     

     

    글. 박월수

     

     

     

     여중시절 친하게 지내던 아이가 있었다. 호랑이로 소문난 학생주임 선생님은 그 아이를 이름대신 ‘류군’이라 불렀다. 멀쩡한 여학생을 ‘군(君)’이라 호칭하는 주임 선생님의 태도엔 거리낌이 없었다. 심지어 류군을 부르던 선생님의 목소리에서는 동성을 향한 동지애마저 느껴졌다. 억지로 남자가 되고자 했던 제자의 안타까운 마음을 선생님은 보듬어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류군은 또래에 비해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천생 여자였다. 하지만 그녀는 보통의 여자아이들처럼 깔깔거리며 웃는 법이 없었다. 늘 빙그레 소리 없이 웃었다. 자연스럽지 못한 팔자걸음에다 상체는 걸음을 뗄 때마다 뒤로 젖혀졌다. 누가 봐도 남자처럼 보이기 위해 연습한 흔적이 역력했다. 한쪽 어깨에 불량스레 둘러맨 카키색 남학생 가방은 그녀의 속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습관처럼 교칙이 몸에 밴 나는 그 아이의 삐딱함이 마음에 들었다. 

     

     하절기가 되면 류군은 별에서 온 아이처럼 특별해졌다. 치마를 입은 아이들 사이에서 동복에만 허용되는 바지를 입고 다녔다. 엄청난 파격이었다. 교복 치마 길이가 조금이라도 짧으면 학생주임 선생님의 몽둥이가 예고도 없이 날아들던 시절이었지만, 류군만은 예외였다. 전교 학생들 사이에서도 바지만 입는 아이로 통했고 학교 운영위에서도 묵인해주는 눈치였다. 교칙이란 당연히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라 생각했던 나는 그 아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차츰 가까이 다가갔다. 

     

     

     류군은 딸 많은 집의 막내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사내아이를 간절히 원했지만 꿈을 이룰 수 없었다. 어린 류군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기도 전에 아버지의 뜻에 의해 사내아이처럼 길러졌다. 아들처럼 옷을 입고 아들처럼 말하고 아들처럼 걸었다. 온갖 멋을 부리는 언니들 사이에서 류군은 당연한 듯 막내아들 역할을 했다. 치마는 언니들에게나 해당되는 옷이었다.

     

     류군은 등교 전이나 하교 후에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자전거포에 들러 잔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가끔 지각을 한 류군의 얼굴에는 덜 지워진 기름때가 묻어 있곤 했다. 류군은 선생님께 혼이 나면서도 변명 따윈 하지 않았다. 그저 씩 웃으며 손바닥 몇 대를 맞고는 별일 아닌 듯 자리에 가 앉고는 했다. 곁에서 일을 돕는 씩씩한 막내를 아버지는 아들 대하듯 기특해 했고 류군은 그런 아버지를 보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다지고 있었다.  

     

     조회시간이면 류군은 어지간히 눈에 띄었다. 넓은 운동장 가득 치마 입은 여학생들 사이에서 쭉 뻗은 류군의 두 다리는 책에서 본 그리스 사원의 기둥처럼 듬직했다. 나는 가끔 그런 류군을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곤 했다. 내게는 없는 그 아이만의 고유한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젖어들었다. 그때의 나는 너무나 어렸으므로 그 아이가 택한 길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지 깊이 들여다 볼 염을 내지 못했었다. 

     

     

     언젠가 류군은 내 덩치만한 기타를 내게 빌려준 적이 있었다. 한 지붕 아래 언니들과는 격리 되듯 자란 그 아이가 유일하게 위로받은 것이 그 기타가 아니었을까. 그런 기타를 친구인 나와 공유하고 싶어서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몇 번 퉁겨만 보았을 뿐 고이 모셔두었다가 그냥 돌려주었다. 음악엔 통 소질이 없었기 때문인데 문득 삶의 모퉁이에서 기타와 마주칠 때면 사내아이처럼 살기로 마음먹은 후 류군이 겪었을 고통 같은 것들이 떠올라 가슴 언저리가 뻐근해지곤 했다. 

     여중을 졸업한지 꼬박 40년이 흘렀다. 그동안 바람결에도 류군의 소식을 들을 길 없었다. 나는 부러 여중동창생밴드에 가입하고 수시로 모임엘 나갔다. 어릴 적 친구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그때처럼 수다스러워서 옛날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보고 싶은 아이를 만나지 못하는 모임은 나를 그리 오래 붙들어두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덕댐 구경을 나섰다가 수락리 주상절리를 만났다. 호수는 조회시간 운동장에 정렬해 있던 여학생들의 치맛자락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오랜 다리미질로 인해 반들반들 윤이 나던 초록색 치마를 닮은 물빛이었다. 그 한쪽 가장자리에 다각형 기둥의 절리가 늘씬하게 뻗어있었다. 돌기둥이 치마 입은 아이들 사이에서 바지만을 고집하던 류군을 연상케 했다.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의 류군이 쭉 늘어서 있었다. 

     

     

     떠올리고 싶은 기억과 함께 만나는 사물은 뼛속까지 들어와 내 것이 된다. 수락리는 그날 이후 짬 날 때마다 찾아가는 장소가 되었다. 내가 사는 집과 가까이 있어서 더욱 자주 걸음했다. 흐린 날은 흐려서, 비 오는 날은 비가 와서, 맑은 날은 맑아서 찾았다. ‘수락’이라는 이름에서 풍기는 물 냄새가 나를 더욱 끌리게 했다. ‘시냇물이 폭포처럼 흐른다.’는 뜻을 가진 수락에 큰 호수가 생기고 댐이 조성된 건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가을이 깊었다. 현서면 수락리에도 붉은 빛이 가득하겠다. 수락으로 가기 위해 일찍 길을 나선다. 성덕댐은 우리나라에 있는 다목적댐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수려한 전망을 갖추었음은 말 할 것도 없다. 나는 주로 안덕마을을 거쳐 댐으로 가는 길을 택한다. 댐 정상에 올라서면 먼 데 있던 하늘이 성큼 다가와 손을 내민다. 그 하늘과 냉큼 악수를 하고 싶지만 댐으로 곧장 가지는 않는다. 입구에 있는 수달 캠핑장 팻말을 따라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는다. 나는 어느새 어린 시절 류군처럼 삐딱한 걸 좋아하게 되었다는 걸 절감하는 순간이다. 

      곧장 가는 길에서 삐딱하게 벗어나 마주치는 풍경은 때론 아늑하다. 캠핑장 한 쪽엔 조그마한 카페가 있다. 카페 주인이 직접 내려주는 커피는 향과 맛이 각별하다. 더구나 주인은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 카페엔 여러 가지 악기도 마련되어 있다. 운이 좋으면 그가 연주하는 음악을 덤으로 들을 수 있으니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카페 바깥에도 작은 무대가 마련되어 있어 주말 저녁이면 갖가지 공연이 펼쳐진다. 또한 맑은 물이 흐르는 시내와 아담한 축구장도 갖추고 있어 이곳 수달 캠핑장은 이미 캠핑족들 사이엔 꽤 알려진 명소다. 

     

     향이 좋은 커피를 음미하며 웅장하게 버티고 선 댐 위로 올라선다. 호수 곁에서 맡는 공기는 여느 곳과는 사뭇 다르다. 마중 나온 하늘과 미리 눈인사를 나눈 덕분인지 천상의 것처럼 귀하게 여겨진다. 물속을 들여다본다. 그 아래 사람이 다니던 길이 있었다. 갈고리 같은 손으로 화전을 일구던 사람들은 거의가 떠나고 더러는 더 깊은 골짜기로 터전을 옮겼다. 문득 그들이 내가 편애해 자주 찾는 수락의 주상절리를 얼마나 애착했을까 궁금해진다. 어떻든 그들이 두고 떠난 물빛은 여전히 맑고 쓸쓸해 보인다. 

     

     호수 주변으로 난 둘레길을 따라 걷는다. 좋아하는 것을 아껴뒀다가 보고 싶은 마음에 주상절리가 있는 수락2교까지 걷기로 한다. 마른 꽃 대궁이 지나는 이의 옷자락을 당기고, 물바람이 일 때마다 마른풀 서걱이는 소리가 들린다. 호수 양쪽엔 능선으로 길게 이어진 면봉산 자락이 붉게 물들었다. 가끔씩 지나는 차들이 단풍든 산과 호수를 구경하느라 속도를 늦춘다. 

     

     

     무계교를 지나 무계리란 팻말과 만난다. 지난 봄 이곳 산비탈에서 따 먹던 넝쿨딸기가 떠오른다. 비탈 하나가 발갛게 물들어 그저 지나칠 수 없던 풍경이었다. 가시에 찔리며 달콤함에 빠졌던 시간은 사라지고 계절은 날개를 단 듯 빠르게 도망간다. 풍경 속에 들어선 나도 돌아서면 금세 잊고 말지만 주변의 자연은 지나간 것들을 그들 몸 안에 차곡차곡 새기고 있다.  

     천천히 걸어 수락2교에 닿았다. 수락리 주상절리가 가장 잘 바라보이는 곳이다. 보현천 물이 흘러들어 이루어진 이곳 호수 아래에도 면봉산 칼데라 지형이 지난다. 동쪽 산기슭 호수와 맞닿은 곳에 펼쳐진 약1억 년 전의 시간과 대면한다. 잘생긴 돌기둥 전시장을 허락도 없이 훔쳐보는 셈이다. 안타깝게도 호수의 수위가 높아진 탓에 돌기둥의 아랫도리는 물에 잠겼다.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으니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 쭉 뻗은 돌기둥이 되지 못하고 떨어져 누워버린 너덜은 물속에 잠겨서 아예 볼 수가 없다. 눈으로 볼 수 없으면 마음으로 보면 될 터이다.

     

     중생대 백악기 함몰 칼데라에 속하는 면봉산 지역은 세월의 풍화를 거치면서 화구가 어디였는지조차 불분명해졌지만 칼데라의 중심이 수락리 주상절리인 건 밝혀진 상태다. 또한 이곳은 화산재가 쌓여서 굳어진 용결응회암으로 형성되었다. 뜨거운 화산재가 쌓이는 동안 높은 열과 압력으로 인해 서로 엉겨 붙었다가 식으면서 몸피는 줄어들어 다각형의 돌기둥이 된 보기 드문 절리다. 섬세한 재의 무덤이어서인지 여느 주상절리처럼 돌기둥의 결은 찾아볼 수 없다. 미끈한 몸통에는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켰음을 말해주듯 검은 줄무늬 얼룩이 물들어 있다.  

     

     나는 이곳에서 늘 그렇듯 여중시절 류군을 만난다. 내적인 갈등과 외부의 따가운 시선을 극복하고 아버지의 뜻대로 살기를 원했던 바지 입은 류군이 거기 있다. 가만히 읊조려 본다. ‘수락리 주상절리’ 류군은 주상절리를 닮은 남자로 사는 걸 수락했다. 참으로 적절한 비유다. 용암재 하나하나가 날아들어 돌이 되는 지난한 과정을 떠올리니 남자로 살기 위해 끊임없이 남자를 흉내 내던 류군이 보인다. 삐딱하던 그녀, 류군은 누구보다 속은 따뜻한 여자였다. 칙칙한 바지만 입고 지내던 그녀를 위로하는지 오늘따라 돌기둥 주변의 단풍이 유난히 붉고 곱다.  

     

     

     

     

     

  • 박월수 글쓴이 : 박월수 청송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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