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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이 있는 풍경]흙냄새, 사람냄새 담은 신명과 화합의 소리, 예천통명농요
    컬처라인 | 2019-05-07 프린트 퍼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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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이 있는 풍경

     

     

    흙냄새, 사람냄새 담은 신명과 화합의 소리, 예천통명농요’

     

     

    글 황경순(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푸른 들판이 펼쳐진 농촌의 풍경과 그네들의 구수한 인심은 현대인에게 그리움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텁텁한 여름 공기와 서운한 도시의 인심을 뒤로 하고, 땀과 흙내음 어우러져 사람 냄새나는 민요의 고장 통명마을. ‘노티기’·‘웃마’·‘동쪽마’·‘골마’·‘황계골’·‘딸골’ 등 6개의 자연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통명의 들판은 곡식을 사람에게 내어주기 위해 타작 후 한가한 모습이다. 아마도 여름 내내 햇볕과 물, 거름과 함께 농부의 정성을 듬뿍 받은 모가 들판을 황금으로 물들였을 것이다. “농사꾼은 계절 변화를 잘 알아야 하고, 거기에 맞춰서 부지런히 일해야 해요. 기다릴 줄도 알아야 되고요. 농작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필요한 만큼 뿌린 대로, 일을 한만큼 거두어들일 수 있어요.” 결코 쉽지 않은 농사이건만 최근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바로 농사의 정직함 때문이리라. 햇볕에 잔뜩 그을린 안승규 통명농요보존회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 톨의 볍씨가 만 갑절의 열매를 맺기까지 아낌없이 정성을 기울였을 농민들의 마음을 느껴본다. 먹을거리가 풍족해진 오늘날, 가치를 잠시 잊고 있었던 ‘기름지고 찰진 밥’의 존재가 새삼 고맙게 여겨진다.    

     

     

     

     

    자연을 통해 ‘귀가 스스로 익힌’ 일노래 

    통명사람들은 평생을 농사일에 묻혀 살았다. 어려서부터 그것이 일이자 삶이었다. 전답 몇 뙈기가 고작인 스물여덟의 노총각은 학교라곤 가 본 일 없이 줄곧 어른들을 따라 농사일을 하며 소리를 익혔다. 그런가하면 중농(中農) 소리를 듣는 부모님 아래에서 농사일을 배워 상일꾼 소리를 듣던 소년은 15세에 처음으로 통명 들판에서 앞소리를 메긴 이후로 80여 년간 농작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왔다. 어디서 저 많은 가락을 뽑아낼까 싶을 만치 막힘없는 사설과 맑은 음색으로 이름난 앞소리꾼 이상휴 보유자의 소리도 통명의 들판이 만들어 주었다. “이때꺼정 소리하면서 한 번도 막히거나 끊킨 적 없어요. 어릴 때 부텀 농사지면서 해오던 거니 하루 종일 소리하라 해도 할 수 있지요.” 풍물가락과 소리로 농사를 지어온 것이나 다름없다는 안용충 보유자를 비롯한 통명농요보존회원들. 이들에게 소리와 풍물을 누구한테 배웠냐고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배우긴 누구한테 배워요? 풍물도 그렇고 그냥 일하다가 어른들이 부르는 대로 하는 대로 따라 하면서 알게 됐지요.” 별도로 배우지 않아도 일터에서 ‘귀가 스스로 익힌 것’일 따름이라는 거다. 이처럼 삶의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익히고 터득하여 대대로 이어지는 것이 건강한 전승일 터. 그러고 보면 통명마을에서 누대(屢代)로 농사를 지으며 풍물과 함께 노래해온 마을 사람들 모두가 통명농요의 지킴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농부, 희망을 노래하다 

    노래와 함께 한다지만 농부에게 들판의 사계절은 여유를 부릴 만큼 낭만적이지 않다. 특히 논매기철인 음력 7월은 더위가 극에 달해서 더욱 그러하다. 한여름 땡볕 아래 논바닥에 엎드린 마냥 호미질을 하면 이내 숨은 거칠어져 목 끝까지 차오르고, 비 오듯 흘러내린 땀으로 온 몸이 범벅이 되어 삼베자락은 몸에 찰싹 달라붙는다. 주름진 얼굴을 타고 내려오는 쌀뜨물 같은 땀을 아랫입술을 내밀어 ‘푸! 푸!’ 입바람 소리를 내어 떨쳐 버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이럴 때 앞소리꾼은 ‘의사마다 병 고치면 북망산천 왜 생기고, 사람마다 선비 되면 농사지을 사람 누구인고~’ 하며 소리를 메긴다. 오곡을 마련한 *신농씨도 부럽지 않을 만큼 농부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게 하여 일의 능률을 올려주는 기지를 발휘하는 것이다. 이처럼 앞소리꾼은 상황에 맞추어 적절한 사설로 노래해야 하기에 그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앞소리꾼에 답하듯이 일꾼들은 ‘아아~부레~이~~수~나’하며 뒷소리를 받아낸다. 남성들의 선후창(先後唱)으로 이루어져 후렴구가 독특하게 발달한 통명농요. 앞소리의 끝에 뒷소리의 일부분이 불리어지며, 앞소리가 끝이 날 때에 뒷소리가 겹치면서 이어져 마치 이중창처럼 노래된다. 

    한나절 일을 하다보면 제아무리 체력 좋은 장정이라도 지치기 마련이다. 남아 있는 일에 한숨이 절로 나올 무렵, 앞소리꾼은 벌건 대낮 논에서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하기 시작한다. 이는 신명을 끌어 올려 일의 고됨을 잊어버리게 하려는 부추김이자, 성적인 노래는 모의 생명력을 자극하여 성장을 촉진시킴으로 사람에게도 농작물에도 좋은 작용을 한다. 모내기, 논매기 등 농사일의 진행에 따라 노래도 바꾸어 부르는데, 일을 지시하거나 독려하고 이에 화답하는 통명 농부들의 노랫말을 보면 시인이 따로 없다. 이처럼 일노래는 단순히 일을 신바람 나게 하는 구실만 하는 것이 아니라 농사일에 대한 기대와 세계관이 공유되는 통로이기도 하다. 그래서 통명의 일노래는 농부들에게 금싸래기를 가져다주는 희망의 노래다.

     

    신농씨(神農氏) : 중국 고대 전설상의 제왕. 삼황(三皇)의 하나로, 농업ㆍ의료ㆍ악사(樂師)의 신, 주조(鑄造)와 양조(釀造)의 신이며, 또 역(易)의 신, 상업의 신이라고도 한다.

     

     

    기술의 이기(利己) 속에서도 들판을 휘감아 온 통명농요

    1940년대 이후 농사짓는 방법이 크게 바뀌었다. 풍물소리, 일노래를 듣고 자라던 농작물은 이앙기와 트랙터 소리에 익숙해 졌으며 잡풀과 분뇨, 재를 섞어서 자연에서 만들어진 거름을 먹고 자랐던 모는 화학비료와 농약에 체질을 맞추게 되었다. 집집마다 돌아가며 어울려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지던 논매기는 제초제의 등장으로 아예 하지 않아도 된다. 두레와 같은 집단 노동이 필요치 않아 개별적으로 농사짓는 일이 가능해 졌으니 아무리 농촌이라 해도 마을 사람 간에 어울릴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켕마쿵쿵’ 풍물소리와 함께 노래가 울려 퍼져 들썩들썩하던 농촌의 풍경은 사라져갔다. 통명마을에서는 다행히 1980년대까지 논매기를 끝낸 음력 7월 3일경 마을사람들이 모여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고 한바탕 노는 농부들의 노동절 ‘풋구(백중놀이, 호미씻이)’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었다. 풋구 때 ‘마당놀이’를 하면서 부르던 일노래를 토대로 하여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1985년) 되었으니, 통명의 사회·문화적 기반이 오늘의 ‘예천통명농요’를 만든 셈이다. 하지만 들판에서 자연스럽게 전승되던 일노래는 농사짓는 여건이 달라져 별도로 가르치고 배우지 않으면 그 맥을 이어가기 어렵게 되었다. 게다가 농촌의 인구감소는 통명마을도 비껴가지 못해서 마을 사람들로 구성된 통명농요보존회원들의 수도 해마다 줄어들고 고령화되고 있는 형편이다. “옛날에는 논에서 일을 하믄, 노래하고 춤이 신명나게 절로 나왔어요. 어깨도 들썩거리고 엉덩이춤도 추고, 다리도 높이 들고 흥이 나서 어쩔 줄을 몰랐지요. 요즘에는 막걸리 한잔 썩 안하믄 신명 내기 어려워요.” 한창 시절을 추억하며 상기된 이상휴 보유자의 얼굴에 어느새 그늘이 드리워진다. 오랜 세월 기술의 이기 속에서도 들판을 휘감아 온 예천통명농요. 이제는 농사의 풍년은 물론 젊은 전승자들이 늘어나 사람농사도 대풍(大豊)이 들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 컬처라인 문화메신저 글쓴이 : 컬처라인 문화메신저 경상북도 북부권 11개 시군의 문화예술 관련 정보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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