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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의 역사인물_영주시]뮤지컬 ‘죽계별곡’으로 안축(安軸)의 경기체가 ‘죽계별곡’ 다시보기
    컬처라인 | 2019-07-15 프린트 퍼가기
  •  

     

     

    이야기가 있는 문화탐방

     

    뮤지컬 ‘죽계별곡’으로 안축(安軸)의 경기체가 

    ‘죽계별곡’ 다시보기 

     

     

      글. 안경애

     

     

    죽령의 남쪽 영가의 북쪽 

    소백산 앞에 천재흥망 일양풍류 

    왕자들의 태를 묻은 곳 

    이 경치 어떠하오?

     

    숙수루 복전대 숲속의 정자 

    초암동 욱금계 취원루가 솟았네 

    꿈인 듯 생시인 듯 꽃잎은 휘 날리네

     

    이 경치 어떠하오? 

     

     

     

    2018년 10월 9일과 10일 영주문화예술회관에서는 뮤지컬 죽계별곡 ‘연꽃 만나러가는 바람같이’ 공연이 있었다. 이 공연의 노래 가사는 안축의 죽계별곡(竹溪別曲) 1, 2장으로 영주지역의의 아름다운 풍광을 노래했다.

     

    죽령의 남쪽 영가의 북쪽 소백산 앞에 위치해있으며 천년을 두고 고려가 흥하고 신라가 망하는 동안 한결같은 풍류를 지니고 왕자들의 태(胎)를 묻은 곳이니 그 얼마나 성스럽고 아름다운 곳이겠느냐?

     

    숙수사(宿水寺)의 누각, 복전사(福田寺)의 누대, 승림사(僧林寺)의 정자. 초암동의 아름다운 욱금계곡(郁錦溪), 부석사의 취원루(聚遠樓)가 솟아있고 꿈인 듯 생시인 듯 꽃잎까지 휘 날리니 이 경치 어떠하냐? 

     

    마치 ‘여기가 무릉도원 아니겠느냐?’ 라고 얘기하는 것 같은 가사이다. 

     

    죽령의 남쪽 영가의 북쪽. 

    여기서 죽령(竹嶺)은 예나 지금이나 경상도와 충청도를 잇는 고갯길로 경북 영주시 풍기읍과 충북 단양군 대강면 사이에 위치해 있다. 영가의 북쪽 ‘영가(永嘉)’는 안동의 옛 지명이다.

     

    왕자들의 태(胎)를 묻은 곳. 

    옛날 왕가(王家)에서는 왕자의 태를 태우지 않고 항아리에 담아 명당을 찾아 안치했다. 태를 묻은 주위를 태봉, 태장이라 불렀다. 이러한 지명이 불려오고 있는 곳을 풍수지리에서는 명당으로 보는데 연천군 죽면 태봉마을, 가평군 상면 태봉부락, 원주시 태장마을과 소백산 앞마을로 현재 영주시 순흥(順興)에 태장마을 등이 있다. 순흥 태장마을에는 고려 충숙왕, 충목왕, 충렬왕 세 명의 임금 태가 묻히고 조선시대에는 왕비, 왕, 세손의 태가 이곳에 묻혔다. 세종대왕 부인 소헌왕후, 문종, 그리고 영조의 손자인 의소 세손의 태가 묻혔다고 전한다.

     

    숙수루 복전대 숲속의 정자.

    숙수루는 숙수사(宿水寺)의 누각을 말한다. 숙수사(宿水寺)는 현재 소수서원(紹修書院)자리에 있었다. 소수서원 입구 솔숲을 지나 오른쪽에 지금도 영주숙수사지당간지주(榮州宿水寺址幢竿支柱)가 우뚝 서있다.

     

    복전대는 복전사(福田寺) 누대(樓臺)다. 복전사는 순흥향교에 자리했다고 전한다. 순흥향교에는 불교유물 주춧돌이 있으며 석불대좌, 석등재 등이 남아있고 연화대좌는 향교 대성전초석과 계단석으로 사용되고 있다.

     

    숲속 정자는 승림사(僧林寺)의 정자다. 승림사가 있었던 곳으로 보는 순흥 석교리 160-2번지, 이곳에는 보물 제146호 ‘석교리 석조여래입상’이 있다. 향토사학계에서는 이곳을 승림사(僧林寺) 옛터로 보고 있다.

     

    초암동 욱금계 취원루가 솟았네.

    초암동(草庵洞)은 소백산 국망봉 남쪽 죽계구곡(竹溪九曲)에 있는 초암사(草庵寺)가 있는 동네를 말한다. 초암사는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하기 위해 절터를 보러 다닐 때 이곳에 임시로 초막을 지어 수도하며 기거하던 곳이라는 설(說)이 있다.  

     

    욱금계(郁錦溪)는 욱금계곡에 있는 비로사(毘盧寺)의 비로전(毘盧殿)으로,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전각(殿閣)이다. 비로사에는 보물 제996호인 석조아미타여래좌상과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진공대사보법탑비(경북 유형문화재 제4호), 영주삼가동석조당간지주(경북 유형문화재 제7호) 등이 있다. 

     

    취원루(聚遠樓)는 부석사(浮石寺)의 누각이다. 무량수전 서쪽에 있었는데 현재는 사라지고 없으며, 취원루 주춧돌로 추정되는 흔적이 남아있다.  안정구(安廷球, 1803~1863)가 쓴 재향지(梓鄕誌)에는 ‘금당(金堂) 서쪽에 취원루가 있는데 돌계단을 깎아질러 높이가 10여 길이나 된다. 남쪽을 바라보면 온 산이 모두 눈앞에 펼쳐지는데, 시력이 좋으면 3백리는 바라볼 수 있다고’ 하면서 우리나라 서원의 시초인 소수서원을 건립했던 주세붕 선생(周世鵬, 1495~1554)의 시를 소개하였다.

     

    소백산 앞 순흥(順興)을 일러서 ‘남순북송(南順北宋)’이라 하였다. 즉 ‘남쪽에는 순흥이 있고 북쪽에는 개성이 있다’고 할 정도로 이 곳 순흥이 개성에 버금 갈 정도로 학문과 문화가 번성한 땅이라는 것이다.

     

     

    뮤지컬 ‘죽계별곡’은 역사적 사건 계유정난(1453)과 정축지변(1457)을 배경으로 끊임없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꿋꿋하게 충절을 지켜온 민초들의 충절과 삶의 애환, 그 속에서 피어난 연꽃 같은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주인공 이보게(강성민 역)와 갖바치(김창남 역)의 가을 서정을 자극하는 주옥같은 대사는 관객들의 심금(心琴)을 울렸다. 그리고 윤씨 부인(신숙주 아내)과 기생 설리의 대사에서 여인들의 의기(意氣)가 느껴졌다.

     

    이보게: 오 내생의 마지막 바람이여 불어오라. 마른 갈대들이 쓸쓸히 흔들리는 죽계수 둑에 몸을 숨기고, 나는 그를 기다린다. 내 생의 마지막 칼을 받게 될 그를- 바람소리, 풀벌레 소리, 마른 수수대궁 서걱이는 소리, 저 산자락에 드리운 가을빛, 이 모든 것들은 내가 떠난 후에도 여기 남을 것이다. 사랑했으나 온전히 사랑하지 못했던 이 모든 것들을, 마지막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일의 쓸쓸함은 힘겹다.

     

    갖바치: 오호 피비린내 속을 온몸으로 지나가게 될 한 젊은 놈이 길을 잃고 내 품에 들어왔구나. 때로는 버릴 수도 무를 수도 없는 패가 있기 마련이지(한숨지으며) 그게 인생이지. 그게 운명이라는 거지. 휴우~~

     

    기생 설리: 나으리, 철도 모르고 눈 속에 핀 노류장화인 이 년이 세상이치를 알겠습니까만, 두 분 나으리께 바친 술은 선비주이옵고 세 분 나으리께 바친 술은 부귀주이옵니다. (두 분 선비께 공손히 절한다) 가시밭길로 떠나실 두 분들에게야 제 절을 바쳐야겠지만 꽃길로 가실 세분께 이 미천한 노류장화의 절 따위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일갈하고 나간다)

     

    윤씨 부인(신숙주 아내): 서방님, 어이 혼자 오시오? 스무 해를 벗했던 성 학사(성삼문)를 홀로 칼바람 속에 버려두고 어찌 혼자 오신단 말씀이오. 서방님의 그 푸르던 의기는 어딜 갔단 말씀이오? (밧줄을 목에 건다) 이 허약한 밧줄 하나면 뻘밭 같은 이 세상 쉬 건널 테지요. 이승에서는 다시 날 찾지 마셔요. 서방님 (목을 매단다) 

    - 뮤지컬 ‘죽계별곡’ 대사 中  -

     

     

    뮤지컬 ‘죽계별곡’의 모티브가 된 정축지변(丁丑之變)은 1457년 금성대군, 순흥부사 이보흠의 단종 복위 운동에 실패하면서 세조가 순흥부민을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내부 고변으로 단종의 복위 거사가 실패하자 세조는 영월 청령포에 유배중인 단종을 사사한다. 이후 역모를 주도한 혐의로 금성대군에게 사약을 내려 사사하고 모의에 가담한 이보흠을 참형에 처하였다. 이후 순흥부의 주민들을 처형한 뒤 순흥을 폐부하고 현으로 강등시켰으며, 순흥 인근 30리 지역 주민들에게도 혐의점을 뒤집어 씌워 처형하였다. 수많은 주민들을 학살하여 순흥부를 가로지르던 죽계천은 온통 피로 물들었고 그 핏물이 10여리를 흘러들어갔다고 한다. 흘러간 핏물이 끝난 곳 그 곳 마을이 피끝이다. 지금도 영주시 안정면 동촌리를 피끝, 또는 피끝마을이라고 부른다.

     

     

     

    죽계별곡은 고려 충숙왕(忠肅王) 때 강릉도(江陵道) 순무사(巡撫使)로 있던 근재(謹齋) 안축이 지은 경기체가(景幾體歌)이다. 전체 5장으로 근재집(謹齋集) 권2와 죽계지(竹溪誌)에 수록되어 있다. 작품의 배경인 죽계는 현재 영주시 풍기읍과 순흥면을 흐르는 시내이름이며, 순흥은 안축의 관향(貫鄕)인 동시에 고향이다.

     

    제1장은 죽계의 지역적 위치와 경관. 제2장은 누·대·정자 위에서 유흥하는 모습. 제3장은 향교에서 공자(孔子)를 따르는 유생들이 봄에 경서를 외고 여름에 현(絃)을 뜯는 모습. 제4장은 천리 밖에서 그리워하는 모습. 제5장은 성대(聖代)를 중흥하여 태평을 길이 즐기는 모습을 각각 노래함으로써, 고려 신흥사대부의 의욕에 넘치는 생활감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형식은 제2∼4장에서 정돈된 3·3·4, 3·3·4, 4·4·4조의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제5장은 앞부분 전체가 4·4·4조로 일관되고, 제1장은 4·3·4조의 파격(破格)을 보이며, 제4·5장의 일부에서는 ‘경기하여’가 탈락되기도 한다. 동시에 이두의 사용이 빈번하다. 정돈된 형식과 정돈되지 않은 형식의 뒤섞임에서 죽계별곡은 경기체가 장르의 형성과정을 보여준다. 

     

     

    죽계별곡(竹溪別曲)

     

    1장 

    竹嶺南 永嘉北 小白山前(죽령남 영가북 소백산전) 

    죽령의 남쪽과 영가의 북쪽 그리고 소백산의 앞에,

     

    千載興亡 一樣風流 順政城裏(천재흥망 일양풍류 순정성리) 

    천 년을 두고 고려가 흥하고, 신라가 망하는 동안 한결 같이 풍류를 지닌 순정성 안에, 

     

    他代無隱 翠華峯 天子藏胎(타대무은 취화봉 왕자장태) 

    다른 데 없는 취화같이 우뚝 솟은 봉우리에는, 왕의 안태가 되므로, 

     

    爲 釀作中興 景幾何如(위 양작중흥 경기하여) 

    아! 이 고을을 중흥하게끔 만들어 준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淸風杜閣 兩國頭御(청풍두각 양국두어) 

    청백지풍을 지닌 두연(杜衍)처럼 높은 집에 고려와 원나라의 관함을 지니매, 

     

    爲 山水淸高 景幾何如(위 산수청고 경기하여) 

    아! 산 높고 물 맑은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2장 

     

    宿水樓 福田臺 僧林亭子(숙수루 복전대 승림정자) 

    숙수사의 누각과 복전사의 누대 그리고 승림사의 정자, 

     

    草菴洞 郁錦溪 聚遠樓上(초암동 욱금계 취원루상)

    소백산 안 초암동의 초암사와 욱금계의 비로전 그리고 부석사의 취원루 들에서, 

     

    半醉半醒 紅白花開 山雨裏良(반취반성 홍백화개 산우이량)

    술에 반쯤은 취하고 반쯤은 깨었는데, 붉고 흰 꽃이 핀 산에는 비가 내리는 속에, 

     

    爲 遊寺 景幾何如(위 유사 경기하여)

    아! 절에서 노니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高陽酒徒 珠履三千(고양주도 주이삼천) 

    습욱의 고양지에 노는 술꾼들처럼 춘신군의 구슬 신발을 신은 삼천객처럼, 

     

    爲 携手相從 景幾何如(위 휴수상유 경기하여)

    아! 손잡고 서로 의좋게 지내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3장 

     

    彩鳳飛 玉龍盤 碧山松麓(채봉비 옥용반 벽산송록)

    산새는 채봉이 날아오르려는 듯, 지세는 옥룡이 빙빙 돌아 서린 듯, 푸른 소나무 우거진 산기슭을 안고, 

     

    紙筆峯 硯墨池 齊隱鄕校(지필봉 연묵지 제은향교) 

    향교 앞 지필봉(영귀봉)과 그 앞에는 연묵지로 문방사우를 고루 갖춘 향교에서는, 

     

    心趣六經 志窮千古 夫子門徒(심취육경 지궁천고 부자문도) 

    항상 마음과 뜻은 육경에 스며들게 하고, 천고성현을 궁구하며 부자를 배우는 제자들이여, 

     

    爲 春誦夏絃景 幾何如(위 춘송하현경 기하여) 

    아! 봄에는 가악의 편장을 읊고 여름에는 시장을 음절에 맞추어 타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年年三月 長程路良(연년삼월 장정로량) 

    해마다 삼월이 오면 긴 노정으로. 

     

    爲 呵喝迎新 景幾何如(위 가갈영신 경기하여)

    아! 큰소리치며 신임자를 맞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4장 

     

    楚山曉 小雲英 山苑佳節(초산효 소운영 산원가절) 

    초산효와 소운영이라는 기녀들과 동산 후원에서 노닐던 좋은 시절에, 

     

     

    花爛熳爲君開 柳陰谷(화란만 위군개 유음곡) 

    꽃은 만발하여 난만한데, 그대 위해 훤히 트인 버드나무 그늘진 골짜기로, 

     

    忙待重來 獨倚欄干 新鶯聲裏(망대중래 독의란간 신앵성리) 

    바삐 거듭 오길 기다리며 홀로 난간에 기대어, 새로 나온 꾀꼬리 울음 속에, 

     

    爲 一朶綠雲 垂未絶(위 일타록운 수미절) 

    아! 한 떨기 꽃처럼 검은 머릿결이 구름처럼 흘러내려 끊임없는데,

     

    天生絶艶 小桃紅時(천생절염 소도홍시) 

    타고난 천하절색인 소도홍(小桃紅)만한 때쯤이면

     

    爲 千里相思 又柰何(위 천리상사 우내하) 

    아! 천리 먼 곳에 두고 서로 그리워함을, 또 어찌 하겠습니까? 

     

    5장 

     

    紅杏紛紛 芳草萋萋 樽前永日(홍행분분 방초처처 준전영일)

    붉은 살구꽃이 어지러이 날리고, 향긋한 풀은 푸른데, 술동이 앞에서 긴 봄 날 하루놀이와, 

     

    綠樹陰陰 畵閣沈沈 琴上薰風(녹수음음 화각침침 금상훈풍) 

    푸른 나무가 우거진 속에 단청 올린 다락은 깊고도 그윽한데, 거문고 타는 위로 불어오는 여름의 훈풍, 

     

    黃國丹楓 錦繡靑山 鴻飛後良(황국단풍 금수춘산 홍비후량)

    노란 국화와 빨간 단풍이 청산을 비단처럼 수놓을 제, 말간 가을 밤 하늘 위로 기러기 날아간 뒤라, 

     

    爲 雪月交光景 幾何如(위 설월교광경 기하여) 

    아! 눈 위로 휘영청 달빛이 어리비치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떠합니까? 

     

    中興聖代 長樂大平(중흥성대 장락태평) 

    중흥하는 성스러운 시대에, 길이 대평을 즐기느니, 

     

    爲 四節 遊是沙伊多(위 사절 유시사이다) 

    아! 사철을 즐거이 놀아봅시다 그려. 

     

    -역해- 故 김창규 교수(전 대구교대)

     

    뮤지컬 죽계별곡에 출연하면서 안축의 경기체가 죽계별곡을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여고 은사님이셨던 故 김영하(전 영주여고 교장, 향토사학자) 선생이 죽계별곡을 강의 하시면서 부석사 취원루가 있었고, 사찰의 규모가 예전에는 훨씬 컸다는 것과 현 순흥향교는 소수서원처럼 사찰 터에 세워졌고 향교에 있었던 사찰이 복전사인 것 같다고 하셨다. 또, 석교리 석조여래입상이 있는 곳을 승림사(僧林寺) 옛 터로 보고 있다고도 하셨다. 필자는 1996년에 결혼 했는데 당시 영주향토사연구회 회장으로 계셨던 김영하선생이 주례를 하셨다. 필자는 당시 영주향토사연구회 회원 중 제일막내였다. 항일 독립운동가, 교육자, 향토사학자로 활동하셨던 선생은 지난 2015년 96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어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죽계별곡을 다시 찾아보며 은사님과 함께했던 시간들을 회상해본다.

     

     

     

     

  • 안경애 글쓴이 : 안경애 영주에서 다양한 문화활동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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