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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를 걸으며]오지인지 길지인지 알 수없는 반야골 이야기
    컬처라인 | 2019-08-12 프린트 퍼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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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가 있는 문화탐방

     

    오지인지 길지인지 알 수없는 반야골 이야기

     

     

    글. 류명화

     

     

     

    ‘오지’로 꼽자면 봉화는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는 꼽아줘야 섭섭지 않은 고장이다. 그런 봉화에서도 최고의 오지를 꼽자면 단연코 석포면 ‘반야골’이 아닐까 싶다. 해서 내륙의 가장 깊은 속살 같은 석포면 ‘반야골’을 소개해볼까 한다. 석포면은 읍내에서 약60km 떨어져 있으며 승용차로 이동해도 1시간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작은 면소재지다. 소개하려는 ‘반야골’은 석포에서도 동쪽으로 7km 더 들어간 곳에 위치해 있으며 강원도 삼척과 울진을 경계하는 경북의 최북단에 위치해 있다. 처음 ‘반야골’이라는 지명을 들었을 땐 불교 용어인 반야(般若) 즉 만물의 실상을 깨닫고 불법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의 경지인 반야로 어쩌면 이곳에 큰절이 있거나 큰 부처가 있어 붙어진 이름이라 지레짐작 했었다. 게다가 반야골의 북쪽 골짜기가 불심골이고 백병산에서 내려오는 골짜기 이름도 불심골이라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반야로 가는 길은 좁디좁은 오솔길을 따라 붉은 소나무들이 울울창창 늘어 서 있어 마치 한 폭의 그림 속으로 빨려드는 듯하다. 이 길을 따라 3km 정도 걷다가 마주치는 끝없는 배추밭에 다시 한 번 깜짝 놀라 눈을 의심하게 된다. 큰 밭 사이로 뜨문뜨문 심겨진 대추나무는 경계 구분을 위해 심었던 것이 이제는 고목이 돼 넓은 밭 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운치를 더해준다. 

     

     

     

    흩어져 있는 집 몇 채가 전부인 나래기마을을 지나 노루목재에서 오른쪽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내륙의 가장 깊은 속살, 보석처럼 맑은 반야계곡이 나온다. 기암절벽 사이로 수천 년을 흐르며 깎아 만들어진 이 계곡은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이라 느껴질 만큼 빼어난 절경이다. 폐교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반야초등학교 아이들은 봄, 가을마다 성지바위가 있는 이곳으로 소풍을 왔었다. 지금은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출입을 엄격히 통제해 접근이 불가하나 우렁찬 폭포수와 장엄한 기세로 우뚝 선 성지바위는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노루목재를 돌아 동쪽으로 내려가면서부터 반야마을이 시작되고 십여 년 전만 해도 이 재는 매우 험준해 겨울이 되면 완전히 고립 돼 봄이 올 때까지 출입이 힘들었던 곳이기도 하다. 

     

     

     

    길은 다시 소나무 숲길을 따라 이어지고 조그마한 예배당을 중심으로 몇 집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마을에 도착하게 되는데 여기가 바로 오늘의 목적지인 반야마을이다. 첩첩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 안에 이렇게 큰 마을이 있다는 사실이 다소 신기하기만 하다. 소반 같이 평평하고 들이 넓다 해서 반야(盤野)   또는 ‘너래들’로 불리는데 넓은 땅에 비해 몇 가구가 안 되지만 예로부터 이 마을은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 마을로 알려져 있다. 이유인즉 이곳은 들이 넓어 굶어죽는 사람이 없었고 언제나 깨끗한 물이 흐르니 전염병이 없었으며 하늘을 찌를 듯 첩첩 산으로 둘러 싸여 전란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니 반야는 오지라고 부르기보다 길지(吉地)라고 불러야 옳을 것 같다. 

     

     


     

    해방 전 이곳으로 이주해 온 김령 김씨들이 대부분 이 마을에 살고 있으나  현재는 몇 세대만 남아 이 지역의 주 작물인 고랭지채소를 재배하며 소득을 올리고 있다. 60~70년대 산판이 성행하던 때는 60여 가구가 넘었으며 목도꾼들이 외지에서 들어와 자리 잡으면서부터는 이 산골마을에도 큰돈이 움직이는 부촌이었다. 그러다 68년도 울진삼척 공비사건과 화전민 이주정책으로 인해 주민들이 대거 마을을 떠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나마 마을에 남아서 고랭지채소밭을 가꾸며 살았던 주민들마저도 자녀들 교육을 위해 하나둘 마을을 떠나게 됐고 끝내 1996년 3월 1일 반야초등학교는 개교 이래 186명의 졸업생을 배출해내고 그 해 폐교 됐다. 이후 학교는 민중미술 화가로 탄광촌 주민들의 삶을 화폭에 담아내어 광부화가로 잘 알려진 황재형 화백이 들어와 지금까지 작업실로 쓰고 있다. 이 마을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지 오래고 이제는 운동장 가운데 우뚝 선 소나무만이 그 때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마을에 남은 사람들도 대부분 연로해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인근 태백이나 석포 사람들이 경작지를 임대해 고랭지채소를 생산 출하하고 있는 실태다. 

     

    계곡을 따라 한참을 걸어 올라가다 보면 막바지에 면산과 백병산으로부터 내려오는 물줄기가 합수되는 지점에 샘터마을이 위치해 있고 다시 샘터마을에서 왼쪽 임도를 따라 올라가면 석개재로 이어지고 오른쪽 임도를 따라 올라가면 울진군 소광리가 나온다. 그러니 이곳 샘터마을은 삼척과 울진으로 나눠지는 삼거리에 위치한 마을이다. 이즈음에 주막집이 있어 줘야 말이 되겠다 싶어 마을 사람에 여쭤보니 합수지점 인근에 허물어져 뼈대만 남아 있는 집이 예전 주막집이었다고 한다. 한 때는 제법 시끌벅적 잘되는 주막이었다고 한다. 여름이면 시원하고 겨울이면 따듯해 물맛이 아주 좋은 우물이 있어 이 마을을 샘터마을이라고 하는데 그 물의 양은 비가 오나 가물거나 상관없이 항상 똑같은 양을 유지했다고 한다. 그렇게 좋다고 소문난 샘터마을 물맛도 보지 못하고 다시 반야마을로 내려 와 이 마을 어르신을 통해 진한 향수가 묻어나는 반야골 이야기를 들었다. 

     

     

     

    반야골은 예나지금이나 유난히 겨울이 긴 지역이다. 그렇지만 겨우내 먹을 양식과 김장만 장만해 놓으면 완전히 고립된다고 해도 그 어느 곳보다 따뜻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시절 코꾼지불(*고콜불)을 밝혀 놓고 이웃들과 아랫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밤새도록 싸시래기 소리를 했다고 하는데 그 싸시래기 소리가 뭔지 궁금해 하성락(72)씨께 여쭤 보니 화투놀이라고 일러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스톱이나 민화투가 아니라 싸시래기 소리를 하며 노는 화투놀이는 48장의 화투장 중에서 24장만 가지고 노는 화투놀이인데 본디 태백시 동점에서 목도꾼들이 즐겨하던 화투놀이로 목도소리와 합해져 새로운 노랫말들과 가락으로 자리 잡게 됐던 것이다. 원래 ‘싸시래기’는 경북지역에서 집들이나 초상집에서 친구들이 모여 놀던 놀이라고 하는데 반야에서는 화투를 칠 때 불렀던 노래를 ‘싸시래기’라고 했던 모양이다. 싸시래기는 한시에서 운을 띄우면 운에 맞춰 상대가 즉흥적으로 시를 만들어 읊조리는 것처럼 화투패에 따라 운을 띄워 노래를 만들어 불렀던 것이다. 예를 들어 1월을 상징하는 송학(松鶴)이 패로 나오면 일어나라 날 샌다~  2월을 상징하는 매조(梅鳥)가 나오면 이 사람들아 집에 가세~ 이렇게 화투패 12장으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며 놀았는데 화투판에 모인 사람에 따라 고사성어를 인용해 고상한 노랫말이 나올 때도 있는가 하면 또래 친구들끼리 모여 음담패설이 난무하게 오가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노름빚으로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많던 시절 불시에 순경들이 노름판에 들이닥치는 일들이 허다했고 이를 피하기 위해 운을 띄워 노래를 부르며 화투놀이를 한데서 유래된 싸시래기를 그저 투기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이 또한 산골마을의 유희적 문화라 생각하며 곡해 없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런 문화도 이제 잊혀져간 옛 이야기가 돼버렸지만 김연석(85)옹의 싸시래기 소리를 들으며 그 때 그 시절을 추억해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이렇게 골이 깊고 넓다보니 골골마다 전설처럼 숱한 이야기가 묻어나는 반야골 이야기는 지면을 핑계 삼아 이즈음에서 마무리 하며, 이곳이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자연을 바탕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준 말 그대로의 반야(般若)의 공간이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고콜불 : 관솔불을 올려놓을 수 있도록 벽에 뚫어 놓은 구멍에 끼워 놓고 켜는 불

  • 류명화 글쓴이 : 류명화 1972년 청명한 식목일 오후 2남7녀 중 아들이길 바랐던 부모님의 서운한 마음과 상관없이 일곱째 딸로 태어났다. 똑똑하진 않지만 나름 삶을 즐길 줄 알고 퉁퉁한 아랫배와 홀쭉한 주머니 사정에 스트레스 받지 않는 건강한 여성이다. 지금은 봉화의 아름다운 자연자원을 바탕으로 숲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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