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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의 역사인물_영주시]소수서원에서 도동곡(道東曲)을 듣다.
    컬처라인 | 2019-09-23 프린트 퍼가기
  •  

     

    이야기가 있는 문화탐방

     

     

    소수서원에서 도동곡(道東曲)을 듣다.

     

    글 안경애

     

     

     사진. 영주시 제공

     

    봄눈 온 다음날 소수서원 솔숲 소나무는 찢어진 가지하나 없이 싱그러운 공기를 머금고 고요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솔밭이 끝날 즈음에는 이 곳이 옛날 절터였음을 알리듯 마주선 당간지주가 당당하다. 보물 제59호 영주 숙수사지 당간지주(榮州 宿水寺址 幢竿支柱)다.

     

    당간지주는 사찰입구에 세워져 절에 행사가 있을 때 당(幢)이라는 깃발을 걸어 행사를 알리는 역할을 했다. 소수서원은 숙수사라는 절터에 세워졌으며 당간지주와 주춧돌(초석) 등 다수의 석물들과 사찰의 흔적이 남아 있어 서원을 찾는 이들에게 마치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솔숲을 지나면 오른편으로 푸른 죽계천이 흐른다. 죽계천변 바위에는 ‘백운동(白雲洞)’과 붉은 글씨‘경(敬)’자가 새겨져 있다. 백운동은 소수서원의 옛 이름이다. 명종이 소수서원(紹修書院)이란 친필 현판을 내려 면세, 면역 등의 특권을 부여함으로써 사액서원의 시초가 되었다.

     

    소수(紹修)란 ‘무너진 교학을 다시 이어 닦게 하라’는 뜻을 갖고 있다. 바위에 음각(陰刻)해 흰색을 칠한 '백운동' 글씨는 퇴계 이황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敬’자는 주세붕의 글씨로 문성공(文成公) 회헌(晦軒) 안향(安珦) 선생을 선사(先師)로 경모(敬慕)하였음을 전하기 위해 새겼다.

     

    '敬‘자 바위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진다. 순흥 도호부에 유배와 있던 금성대군과 부사 이보흠의 단종 복위거사가 실패하면서 이곳 순흥 도호부민들까지 참화를 당한다. 희생당한 부민들의 시신이 이 죽계천에 수장된 뒤 밤마다 억울한 넋들의 곡소리가 그치지 않았고,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주세붕이 원혼을 달래기 위해 ‘敬’자에 붉은 칠을 하고 위령제를 지내자 울음소리가 그쳤다고 한다. 이곳 순흥에서 금성대군과 이보흠의 단종 복위운동거사가 실패하면서 세조에 의해 순흥 도호부민이 학살된 사건이 바로 정축지변(丁丑之變)이다.

     

    죽계천 ‘敬’자 바위 옆 누대는 취한대(翠寒臺)다. 꿈틀되는 듯 노송들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취한대는 당시 풍기군수였던 퇴계 이황이 이름 붙인 곳으로 ‘푸른 연화산의 산기운과 맑은 죽계의 시원한 물빛에 취하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긴다.’는 뜻이라고 한다.

     

    소나무는 학자수(學者樹)라고도 불렀다. ‘송백(松柏)은 세한지목(歲寒之木)이요 천세지송(千歲之松)’이라는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의 구절처럼 인생의 어려움과 시절의 흐름 속에서도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소나무처럼 지조를 잃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는 참 선비가 되라는 뜻이다.

     

      경렴정, 26X18cm, 한지에 수묵담채, 2010, 신태수 作

     

     

    서원 정문 옆 경렴정(景濂亭)은 유생들이 죽계천의 수려한 경관을 바라보며 시를 짓고 학문을 논(論)하던 정자다. 경렴은 북송의 유교 사상가 염계(溓溪) 주돈이(周敦頤)의 호에서 따왔다. 주세붕 선생이 백운동서원을 건립하면서 지은 정자로 우리나라 가장 오래 된 서원 정자 중의 하나이다.

     

    경렴정 내에는 초서(草書)의 대가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의 현판이 걸려있다. 황기로가 쓴 경렴정 글씨에는 ‘亭’자 마지막 획이 ‘亭’자를 휘감고 승천하는 용의 기운이 느껴져 일제 때 일본인들이 이곳에서 큰 인물이 날 것이 두려워 글씨꼬리를 잘랐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서원 정문 지도문(志道門) 앞 나지막한 제단은 성생단(省牲壇)이다. 예전 봄, 가을 서원 향사(享祀) 때 사용할 가축의 흠결을 살피고 잡던 터다. 높이가 낮고 푸른 잔디가 입혀져 있어 자칫 지나칠 뻔했다. 지도문을 들어서니 ‘白雲洞’이라는 현판이 걸린 명륜당(明倫堂)과 대면한다.

     

    유생들이 강의를 듣는 소수서원 강학당인 명륜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겹처마집으로 건물 사방에 1m 정도의 툇마루를 설치하고 가장자리에는 7㎝ 정도의 턱을 두었으며 기둥 네 모서리에 추녀를 받는 활주를 설치해 웅장하면서도 고색을 잘 간직하고 있다.

     

     

     

     

    명륜당 서편에는 문성공묘(文成公廟)가 있다. 사당(祠堂)에는 묘(廟)와 사(祠)가 있는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당을 사(祠)라 한다.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사당은 현충사(顯忠祠)이고 도산서원 제일 뒤편에 위치한 상덕사(尙德祠)는 퇴계 이황과 제자 조목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이다.

     

    묘(廟)는 조선역대 임금들을 모신 종묘(宗廟)가 있고 성균관에는 공자를 모신 문묘(文廟-공자의 존칭인 大成至聖文宣王廟의 줄임말)가 있다. 따라서 문성공묘(文成公廟)는 그 명칭만으로 조선시대에 건립된 수많은 사당중에서도 그 격이 특별함을 알 수 있다. 

     

    문성공 안향은 고려 말 중국으로부터 주자학을 최초로 도입하여 학풍을 진작한 공으로 동방주자학의 시조이자 안자(安子)로 추앙받았다. 문성공묘에는 안향을 주향(主享)으로 안축(安軸)·안보(安輔)·주세붕(周世鵬)의 위패를 함께 봉안하고 있다.

     

     

    오늘은 초정일(初丁日)로 소수서원 봄 제사 춘향제(春享祭)가 있는 날이다. 소수서원 명륜당과 문성공묘 사이 뜰에는 유복(儒服)을 입은 제관(祭官)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현재가 아니라 조선시대 소수서원의 어느 한 때를 보는 듯 착각에 빠져들게 했다.

     

     

    그 때 한 무리의 왁자지껄한 관광객들이 지도문을 들어서며 물색없이 “여 오늘 뭐해요? 영화촬영해요?”라고 묻는다. 때 마침 "개좌 아뢰오"라는 소리에 뜰에 제관들이 일제히 ‘白雲洞’ 현판이 걸려있는 명륜당으로 오른다. 명륜당 안 북쪽벽에 ‘紹修書院’ 현판이 걸려 있다. 

     

     

    명륜당에 오른 제관들은 도감이 "상읍례합시다"라고 하니 모두 '읍(揖)'으로 상견례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이어서 갓 쓰고 도포 입은 소수서원 원장의 인사말 후 유생경독(儒生經讀), 집사분정(執事分定), 사축(司祝), 봉중(奉遵), 진설(陳設) 등 향례(享禮)를 의논하는 모습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제사 때 각 소임을 담당할 집사를 선임하는 집사분정(執事分定) 한지(韓紙)가 일신재(日新齋)와 직방재(直方齋)앞에 나붙었다. 초헌관(初獻官) 송홍준(원장), 아헌관(亞獻官) 황병일, 종헌관(終獻官) 안도영 등 총 60명이 집사분정에 이름을 올렸다. 

     

    집사분정 한 한지를 붙여놓은 일신재는 ‘나날이 새로워지라’는 뜻으로 대학(大學)에서 따 왔다. 직방재는 ‘안과 밖을 곧고 바르게 하라’는 뜻으로 주역(周易)에서 따온 말이다. 11시가 되자 헌관(獻官) 등 모든 제관들이 도열하여 읍례 한 후 문성공묘로 입장했다.

     

     

    문성공묘에는 초헌관이 잔을 올리자 "회헌 안향 선생께 감히 고하나이다. 선생께서는 유학의 신봉과 교학진흥의 선구자로 길이 추앙 되었기에 희생과 폐백과 술과 서직을 드리옵고 문정공 안씨, 문경공 안씨, 문민공 주씨를 배향하오니 흠향해 주시옵소서." 라고 축(祝) 했다.

     

    축이 끝나자 2명의 제관(祭官)이 나와 도동곡 1, 2, 3장을 불렀다. 

     

    *1장

    “복희 신농 황제 요순 복희 신농 황제 요순 위 개천 입극 경기 하여(伏羲 神農  黃帝 堯舜 再唱 偉 繼天 立極 景幾 何如), 

    <해설>복희 신농 황제 요순이여, 복희 신농 황제 요순이여, 위대하도다! 하늘의 뜻을 계승하여 인도(人道)의 표준을 세우는 광경이 어떠한가?

     

    *2장

    인심 유위 도심 유미 유정 유일 윤집 궐중 위 쥬거니 밧거니 성인의 심법이 다몬 잇뿐니이다(人心 惟危 道心 惟微 惟精 惟一 允執 厥中 偉 쥬거니 밧거니 聖人의 心法이 다몬 잇뿐니이다), 

    <해설>인심은 오직 위태롭고 도심은 오직 미미하니 오직 정의롭고 오직 한결 같아야 진실로 그 가운데를 잡으리라 위대하도다! 주고받은 성인의 신법이 다만 이뿐이다.

    *3장

    우탕 문무 고이 주소 우탕 문무 고이 주소 위 군신이 상득 경기 하여(禹湯 文武 皐伊 周召 再唱 偉 君臣이 相得 景幾 何如)”

    <해설>우왕. 탕왕. 문왕. 무왕. 고도(皐陶). 이윤(伊尹). 주공단(周公旦). 소공석(召公奭)이여! 우왕. 탕왕. 문왕. 무왕. 고도(皐陶). 이윤(伊尹). 주공단(周公旦). 소공석(召公奭)이여! 위대하도다! 임금과 신하가 성인의 심법을 서로 얻은 광경이 어떠한가?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에서 도동곡 4, 5, 6장을 불렀다.

     

    *4장

     “하토 망망 커늘 상제 시우 하사 우정 대인을 수사우해 나리 오시니 위 만고 연원이 그츨뉘 업사삿다(下土 茫茫 커늘 上帝 是憂 하사 玗頂 大人을 洙泗우해 나리 오시니 偉 萬古 淵源이 그츨뉘 업사삿다),

    <해설>하늘아래 이 세상이 망망하거늘 상제께서 근심 하사 우정대인(공자)을 수수와 사수위에 내리시니 위대하도다! 오랜 세월! 영원히 그칠 까닭이 없으셨다.

     

    *5장

    안생사물 증씨삼성 앙고찬견 첨전홀수 위 학성망노 경기 하여(顔生四勿 曾氏三省 仰高鑽堅 瞻前忽後 偉 學聖忘勞 景幾 何如),

    <해설>안자는 네 가지 하지 말 것을 스스로 지키고 증씨는 세 번 반성을 하였도다. 우러러 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굳다. 앞에 계신 듯 바라보면 홀연히 뒤에 있도다. 위대하도다! 성인의 배움에 수고로움을 잊었으니 그 광경이 어떠한가? 

     

     

    *6장

    솔하리 천명지성 양하리 호연지기 솔하리 천명지성 양하리 호연지기 위 지성무식이야 본이니라(率하리 天命之性 養하리 浩然之氣 再唱 偉 至誠無息이야 本이니라)”

    <해설>쫓을 것은 하늘의 성품이요 기를 것은 호연지기로다. 솔 하리 천명지성 양 하리 호연지기, 위대하도다! 지극한 정성이 끊임없는 것이 근본이다. 

     

     

     

    종헌관이 세 번째 잔을 올리자 도동곡 7, 8, 9장을 불렀다.

     

    *7장

    “광풍제월 서일상운 광풍제월 서일상운 위 끄처진 낀날을 엇데하야 니 아신고 (光風霽月 瑞日祥雲 再唱 偉 끄처진 낀날을 엇데하야 니 아신고),

    <해설>비 그친 하늘에 달이 뜨니 대지는 밝고 바람은 시원한데 상서로운 해와 구름이로다. 광풍제월 서일상운 위대하도다! 끊어진 날 어찌하여 이으셨는고?

     

    *8장

    인욕횡류하야 호호도천일새 일천오백년에 회옹이 나삿다 경으로 본을 세워 대방을 맹가랏시니 위 계왕개래야 중니나 다라 시릿가(人欲橫流하야 浩浩滔天일새 一千五百年에 晦翁이 나삿다 敬으로 本을 세워 大防을 맹가랏시니 偉 繼往開來야 仲尼나 다라 시릿가),

    <해설>사람의 욕심이 넘쳐흘러 하늘까지 덮었는데 일천오백년만에 회옹(주자)이 나셨다.

    경(敬)으로 근본을 세워 큰 제방을 만드시니 위대하도다! 지나간 성인의 심법을 잇고 미래까지 전하였으니 그 공이 공자나 다르시겠는가? 

     

    *9장

    삼한 천만고애 진유랄 나리오시니 소백이 여산이요 죽계가 염수로다 흥학위도난 소분의 일리 어니와 존례 회암이 그 공이 크삿다 위 오도동래 경기 하여(三韓 千萬古에 眞儒랄 나리오시니 小白이 廬山이오요 竹溪가 濂水로다 興學衛道난 小分의 일리 어니와 尊禮 晦菴이 그 功이 크삿다 偉 吾道東來 景幾 何如)” 

    <해설>한국역사 천만고에 참된 선비를 내리우시니 소백산이 여산이요 죽계수가 염수로다.

    도를 일으킨 것은 분수적은 일이어니와 회암을 높이 예우하는 그 공이 크셨다. 위대하도다! 우리 도가 동으로 온 광경이 어떠한가? 

     

     

    이후 소수서원 문성공묘에서는 음복수조(飮福受胙), 망예례(望瘞禮·축문을 땅에 묻는 예) 순서로 2019년 소수서원 춘향제(春享祭)는 모두 끝났다. 도동곡은 주세붕선생이 풍기군수로 부임한 1541년(중종36)경에 지은 경기체가(景幾體歌)로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 제례(祭禮)에 불리어지는 악정(樂正)이다. 주세붕선생이 편찬한 죽계지(竹溪誌)에 실려 있으며 선생의 무릉잡고(武陵雜稿)에도 실려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례 때에 악(樂)을 부르는 것은 종묘(宗廟)와 문묘(文廟)를 제외하고 소수서원이 유일하다. 주세붕선생이 쓴 죽계지(竹溪誌) 행록후(行錄後)에 백운동서원(소수서원) 제례 법식(祭式)을 보면 ‘아동이 죽계사(竹溪辭) 3장을 노래한다.’ ‘아동이 도동곡 수장(首章) 3장을 노래한다.’ ‘아동이 도동곡 중장(中章) 3장을 노래한다.’ ‘아동이 도동곡 종장(終章) 3장을 노래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근래 영주시는 소수서원·선비촌일대에서 ‘영주한국선비문화축제’를 열고 있다. 죽계지 행록후 백운동서원 제례법식에는 도동곡을 아동이 나와 노래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 근거하여 영주한국선비문화축제에 영주지역 어린이들이 축제에 참가해 도동곡 경연대회를 펼쳐 우승한 어린이(2명)가 소수서원 춘추향제에 도동곡을 부르게 하는 것이 어떨까? 경기 하여(景幾 何如 : 그 광경이 어떠한가?) 

     

      

     

    ❏참고문헌 : 죽계지(竹溪誌), 도동곡 자료조사 보고서(2009년 영주문화원 발간)

     

     

  • 안경애 글쓴이 : 안경애 영주에서 다양한 문화활동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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