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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송 세계지질공원 훑어보기]주산지의 노래
    컬처라인 | 2019-10-07 프린트 퍼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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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송세계지질공원 훑어보기

     

     

    주산지의 노래

     

    글. 박월수

     

      사진. 조영래 

     

    사과꽃 피는 계절입니다. 집 앞 너른 들에 붉고 흰 꽃을 매단 사과나무가 그저 보기 미안하도록 눈부신 풍경을 펼쳐놓습니다. 애써 가꾼 적 없는 이맘 때 나만의 정원입니다. 수분수 역할을 하는 꽃사과 나무는 큰 키에 붉은 꽃을 뭉텅이로 매달았습니다. 열매를 맺어야 할 나무는 가지마다 하얀 꽃을 두르고 고만고만한 키로 섰습니다. 바람이 불면 색깔이 다른 꽃술의 합방을 위해 나무는 또 얼마나 분주할까요. 아름다운 풍경을 공으로 보는 저는 수고로운 나무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으로 그 값을 대신합니다.

     

     만개한 꽃이 열매 맺을 준비를 하는 동안 환대 받는 바람에 비해 비는 반갑지 않은 손님입니다. 나무가 맘껏 목을 축일 여유는 열매를 위한 준비가 끝이 나야 비로소 주어집니다. 요즘은 비가 내리지 않아도 지하 관정에서 연결된 숨은 수로를 통해 나무는 원 없이 뿌리를 적십니다. 너른 들 어디를 다녀도 예전과 같은 개방 된 수로는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저는 오늘 청송유네스코세계지질공원 수리명소에 이름을 올린 인공호수, 주산지를 보러갑니다. 하늘만 바라고 농사를 짓던 시절 물을 가두기 위해 만들었던 곳입니다. 이 무렵의 주산지는 물거울에 비친 연두의 향연이 시리게 아름답습니다. 

     

    사진. 조영래 

     

     호수를 향해 가는 내내 사과꽃 물결이 나부낍니다. 이곳 역시 사과 주산지로 알려진 곳이지요. 올해부턴 행정구역명도 개칭을 했습니다. 지금껏 불려오던 부동면 이전리란 이름을 지우고 주왕산면 주산지리가 되었습니다. 이젠 주산지란 이름을 들으면 이곳 사과가 떠오를 것도 같습니다. 세계적인 수리 명소의 물을 먹고 자란 사과는 좀 더 달콤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과를 파는 노점을 지날 땐 내 집의 사과를 두고 이곳 사과 맛을 보고 싶은 유혹에 가끔 시달립니다. 

     

     

     주산지 주차장에 다다르니 꽃마차를 매단 커다란 당나귀와 앙증맞은 크기의 말이 손님을 기다립니다. 상식을 뒤집는 당나귀와 말의 몸체가 이채롭습니다. 언젠가 의병공원이 있는 꽃밭등 길에서 화려한 옷으로 치장한 두 마리 짐승을 실은 트럭이 막 주산지 쪽으로 방향을 트는 중이었습니다. 멋스런 모자가 어울리는 주인장은 탐방객이 줄을 잇는 주산지 왕버들길에 나귀와 말을 데리고 출근을 한 모양입니다. 자신이 보듬고 아끼는 동물을 남에게 선보이려는 사람의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저는 특별한 체험거리를 앞에 두고도 괜스레 짧은 다리를 가진 말이 가련해 보입니다.

     

     저수지로 가기 위해 평평한 흙길을 걷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잦은 탓인지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 하얀 길입니다. 잠시 맨발로 걷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물안개 잦은 계절이 아니어서 느긋하게 나선 걸음입니다. 시간을 다투지 않으니 저수지를 향해 가는 발걸음도 여유롭습니다. 주변 숲에도 눈길을 보냅니다. 몽밀한 연초록향이 마음을 적십니다. 숲길을 벗어나니 기다렸다는 듯 쏟아지는 빛에 눈이 부십니다. 챙 넓은 모자를 눌러쓴 채 온몸 가득 감미로운 빛의 세례를 즐깁니다. 이내 산속에 폭 싸인 신비로운 호수가 제 모습을 드러냅니다. 

     

     

     주산지는 돌그릇에 담긴 호수입니다. 주왕산 자락에 매달린 별바위가 호수를 낳을 때부터 호수 아래엔 압력솥 바닥 같은 삼중구조의 돌그릇이 있었습니다. 뜨거운 화산재가 엉겨 붙어 만들어진 용결응회암은 치밀하고 단단해서 맨 아래에 자리를 잡고 그 위층엔 조금의 틈을 두고 비용결응회암이 누워있었습니다. 또다시 그 위로 퇴적암이 놓여있어 호수는 스펀지처럼 물을 품었습니다. 아무리 가물어도 바닥에 머금었던 물을 조금씩 흘려보냈으므로 지금껏 한 번도 물이 마른 적 없었습니다. 산위에 우뚝 선 별바위도 제가 낳은 신비로운 호수를 날마다 흠모하듯 내려다보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산지의 기원은 별바위입니다. 혹여 참말로 바위가 호수를 낳았다고 믿는 건 아니겠지요.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은 별바위에서 흘러내린 물을 가두고 둑을 쌓았습니다. 조선조 경종 임금 때 일이라니 벌써 삼백년 전입니다. 호수 초입에는 저수지를 만드는데 공을 쌓은 이들을 기리는 비가 있습니다. 만인에게 혜택을 베푸니 그 뜻을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 한 조각의 돌을 세운다고 새겨져 있습니다. 소박한 비석에 담긴 뜻이 고와서 저는 그 앞에 한참을 머무릅니다. 비석 주변으로는 금줄이 쳐져 있어 매년 주민들이 모여 기원제를 지내겠거니 짐작해 봅니다.

     

     천천히 제방을 걷습니다. 멀리 우뚝 솟은 별바위가 마주 보이고 아늑한 호수를 한눈에 조망하기 좋은 곳입니다. 왕버들과 하늘과 산을 품은 호수가 참으로 편안해 보입니다. 호수는 자기를 보낸 별바위를 향해 순하게 엎드린 듯도 합니다. 이즈음 저는 마음 안에 청하지 않은 소리통 하나 들어있어 한시도 고요할 수 없었습니다. 둑에 서서 호수를 그윽이 바라보는 동안 시나브로 소란은 사라지고 평온이 스며듭니다. 그런 잠시 지나던 바람이 물비늘을 일으킵니다. 물에 빠진 산이며 나무며 하늘은 자취를 감춥니다. 마법 같은 풍경입니다.  

     

     물안개 핀 주산지를 떠올립니다. 자연의 법칙에는 동정심이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둑새벽부터 제 덩치만한 카메라를 챙겨 주산지를 향해 달려 본 사람들은 압니다. 절경은 쉽게 볼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말입니다. 호수를 가득 채운 물안개는 여간해선 놓치기 십상이어서 저도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간절히 원하는 건 늘 쉬이 가지기 어려웠습니다. 물안개를 보려고 바삐 뛰느라 주산지 왕버들길에 핀 들꽃이나 수려한 나무들을 그냥 지나치는 일은 행운을 만나기 위해 행복을 버리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했습니다. 

     

    사진. 조영래

     

     저보다 먼저 다녀간 글 선배는 주산지의 물안개 핀 모습을 두고 “막 비등점에 다다른 끓는 솥 마냥 제 속의 열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하다.”고 했더군요. 얼마나 절묘한 표현인지요. 딱 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쉼 없이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보고 있자니 누군가 수면 아래서 불이라도 지펴놓은 것 같았습니다. 분명 바닥에 엎드린 돌그릇은 오래 전 끓었다 식어버린 용암이란 걸 알면서도 말이지요. 어떻든 물안개가 호수 위를 나다니는 풍경은 오래 만지고 쓰다듬고 싶은 비경이었습니다.

     

     주산지 주변을 거닐며 버드나무의 왕이라 불리는 왕버들을 만납니다. 백오십 년째 멱을 감느라 호수 밖으로 나온 적 없는 경이로운 나무입니다. 맑게 씻긴 오래 묵은 나무가 여기저기 상처를 품었습니다. 부러진 둥치며 뒤틀린 몸통이 보는 이를 아프게 합니다. 고르게 퍼진 햇살이 연초록 이파리를 매단 늙은 나무를 매만집니다. 햇살 옷을 걸치고 물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빗질하는 왕버들은 여전히 푸르고 어여쁩니다. 다가가 등이라도 가만히 쓸어주고 싶습니다.

     

     늙은 왕버들이야 발등이 부르트든 말든 그로 인해 주산지는 빛이 납니다. 품어주고 지탱해주는 땅을 버리고 물을 택한 왕버들로 인해 손꼽히는 ‘아름다운 하천’이라는 이름도 얻었습니다. 움켜쥘 수 있는 의지처를 버리고 물속에 빠져 사는 왕버들을 보며 사람들은 하나같이 절경이라 입을 모읍니다. 쓰러져가는 둥치에 어린 새잎을 피워 올리는 나무를 배경으로 추억을 남기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순서를 기다려 지키고 선 긴 줄이 끝날 줄을 모릅니다. 

     

     참선하듯 몸 담근 늙은 나무에게 저는 불현 듯 수다를 떨고 싶어집니다. 사무치도록 물이 좋아도 이제 그만 물 밖으로 나와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래야 살 수 있다고 나무의 몸통에 대고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습니다. 이미 속은 다 곪았을지 모른다 생각하니 자꾸만 측은해 보입니다. 물에선 숨 쉴 수 없는 왕버들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는 까닭이 궁금해서 사람들은 꾸역꾸역 몰려드는 걸까요? 저도 왜 제가 이곳 주산지에 빠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 심장이 떨리기 전에 눈이 우선 홀리고 말았으니까요. 심장이 떨리기 전에 눈이 우선 홀리고 말았으니까요.   

     

    사진. 조영래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왕버들은 물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익혔습니다. 발아래 실처럼 가는 호흡근을 빽빽하게 키웠습니다. 그 실타래의 부피를 자꾸만 부풀려 수면 가까이로 올려 보냈습니다. 물속에서도 튼튼하게 뿌리 내리고 살고 싶은 절절함이 주산지 왕버들을 지탱하게 했습니다. 사지에서 살아낸 나무 덕분에 우리는 마음의 쉼터로 삼을 고운 풍경 하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을 애착하는 나무에게 자꾸만 마음이 기웁니다. 

     

     너무 자주는 말고 가끔씩 왕버들의 안부가 궁금하다는 핑계를 대며 다니러 오면 좋겠습니다. 어지간한 일은 다 들어줄 것 같은 품 넓은 나무 하나 친구로 둔다는 건 마음 든든한 일입니다. 호수와 나무가 한 몸인 듯 끌어안고 주고받는 그들만의 언어를 슬쩍 훔쳐보는 일도 은밀한 즐거움일 것 같습니다. 사과꽃 향기 날리는 날 주산지가 풀어내는 연초록 세상을 만나러 모른 척 걸음 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산과 하늘과 나무와 바람 소릴 담아갈 넉넉한 마음 보따리 하나 챙겨 가지고서 말입니다. 

     

     주산지를 조망하고 돌아 서는 길 문득 내 마음에도 바닥이 든든한 호수 하나 통째로 들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떠한 해작질에도 마르지 않는 속 깊은 호수 하나 마음 안에 살고 있었으면 합니다. 그 속에 스스로 숨 쉬는 뿌리 튼튼한 나무 몇 그루 심고 싶습니다. 사계절 푸른 호수와 시들지 않는 나무가 마음 안에 살고 있었으면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악다구니 같은 세상에 부대껴도 지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선 마음 호수에 물을 길어줄 별바위 닮은 사람 하나 곁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 박월수 글쓴이 : 박월수 청송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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