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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이 있는 풍경]예천 용문사가 품은 또 하나의 보물, 괘불탱
    컬처라인 | 2019-11-18 프린트 퍼가기
  •  

     

    이야기가 있는 문화탐방

     

    예천 용문사가 품은 또 하나의 보물, 괘불탱 

     

    글. 황지해(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용문사 (사진. 서희태)

     

    “두운선사(杜雲禪師)가 범일국사(梵日國師)를 모시고

    당나라에서 배운 불법을 전파하기 위해서 다니던 중에 용문사 입구에 들어서자

    두 마리의 용이 나와 환영해 이곳에 초막을 짓고 두운암이라 하였다.

    이후 고려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리(統理)하기 위해 남쪽지방을 정벌하러 가던 중

    두운선사의 명망을 듣고 두운암을 찾아 헤매다 운무가 자욱하여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였을 때,

    어디선가 청룡 두 마리가 나타나 길을 인도하였다.

    이에 태조는 산 이름을 용문산이라 하고 두운암을 용문사라 하였다.”

     

    이 이야기는 경북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에 자리한 용문사(龍門寺) 창건설화이다. 실제로 용문사는 870년(신라 경문왕10)에 두운선사가 창건하였다. 1171년(고려 명종1)에 명종이 태자의 태실을 안치하였고, 조선 세종의 비인 소헌왕후와 문효세자 두 분의 태실을 봉안한 곳으로서 왕실의 보호와 후원 아래 불사가 이루어진 유서 깊은 사찰이다. 1165년(고려 의종19) 조응선사에 의해 현재의 가람과 같은 대규모의 중창이 이루어졌고, 전란으로 소실된 가람을 17세기에 이르러 복구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윤장대 (보물 제684호)

     

    용문사가 품고 있는 익히 알려진 첫 번째 보물은 제684호로 지정된 대장전 윤장대이다. 전국 여러 사찰에서 본떠 많은 모형들이 만들어질 정도로 불교 목공예품으로 장엄한 자태를 보여주고 있다. 고려 1165~1179년 중창 때 자엄(資嚴)대사가 윤장대 2좌를 대장전에 설치하고 큰 법회를 열어 불력으로 호국을 기원하였다는 사실은 중수용문사기(重修龍門寺記)와 중수상량문(重修上梁文)의 기록에 잘 나타난다.

     

     

     

      용문사 대장전 (보물 제145호)

     

    한편 윤장대를 품고 있는 대장전도 보물 제145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장전(大藏殿)은 본래 부처님의 가르치심인 대장경을 봉안하기 위해 지은 사찰 건축으로, 법보(法寶)인 대장경을 봉안하고 있다하여 법보전(法寶澱)이라고도 한다. 윤장대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소규모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격식을 갖춰 지어졌다.  

     

     

     

    영산회괘불탱 (보물 제1445호)

     

    이처럼 용문사의 유명한 보물 외에 숨겨진 보물들이 또 있으니 바로 불화이다. 1705년 괘불도를 시작으로 용문사는 천불도와 팔상도 등 22점이 조성되었는데, <용문사사적유용건(龍門寺事蹟有用件)>편의 <속용문사적기(續龍門事績記)>에 1608년부터 1688년까지 조성되었던 대장전, 명부전, 일주문 등의 전각과 대장전의 금당아미타삼존불과 아미타후불 목각탱, 명부전의 지장삼존상과 시왕상 및 권속들, 사천왕상 등의 불상을 조성한 기록이 있다. 용문사가 품고 있는 세 번째 보물은 바로 이들 불화 중에서 보물 제1445호로 지정된 ‘영산회괘불탱’이다. 괘불탱은 괘불, 괘불도 등으로도 불리는데, 야외 법회에 참석한 사람이라면 어느 자리에서나 볼 수 있도록 제작되었기에 전각 안에 봉안된 불화와는 달리 규모가 상당하다. 폭 5~8m, 높이 12~14m로 아파트 4층에 육박하는 크기에, 무게가 100~180㎏에 달하니 슈퍼사이즈의 회화다. 평소에는 함에 넣어서 고이 보관하다가 특별한 야외법회를 열 때에 비로소 만날 수 있다.

     

    ‘떠들썩하고 시끄러운 모습’을 일컫는 ‘야단법석’(野壇法席)은 원래 사찰 법당 밖에 단을 만들어 설법을 펴는 것을 의미하는 불교용어다. 원래의 뜻으로 보면 야단법석의 주인공은 단연 부처님, 즉 괘불이다.

     

    조선후기에 활발히 조성된 괘불은 현재 120여점 가량이 전해지고 있다. 괘불화의 형식은 석가불도, 삼세불도, 삼신불도, 삼신삼세불도, 아미타불도, 미륵불도 등으로 구분된다. 이처럼 괘불이 전각의 성격에 따른 불화를 봉안하는 경우와 달리 도상적으로 복합적인 면을 띠고 있는 이유는 여러 재의식에 의식용으로 다양하게 쓰였기 때문이다. 용문사의 괘불도는 석가불도로, 석가불과 문수보살, 보현보살 삼존에 가섭존자와 아난존자 등 다섯 인물이 등장하며, 높이가 10m에 이른다. 화기에 *‘영산회상’(靈山會相)의 장면을 표현하였으며, 용문사의 옛 이름인 창기사에 봉안되었던 불화이다. 입상의 석가불을 중앙에 크게 표현하고 석가불의 머리 좌우에는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작게 배치시켰다. 석가불은 오른손에 활짝 핀 연꽃을 들어 올린 모습을 하고 있는데, 연꽃을 든 부처의 표현이 매우 특징적이다. 이것은 석가모니불과 가섭존자 간의 미소에 의한 선법의 종지를 전했던 내용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용문사 괘불도가 조성될 18세기 불교계의 상황은 선불교가 성행하여 불법의 전승을 경전이나 교리보다는 *‘不立文字 以心傳心’에 두면서 *‘法統說’을 강하게 내세우던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취산에서 꽃을 들어 보이던 부처의 모습을 영산회상의 모습으로 도상화한 것이 가장 적절한 소재였을 것이다.

     

    괘불은 불교회화 연구자료는 물론 조선후기 민중의 신앙심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전통시대에 사용된 안료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기준 자료를 제공해준다는 면에서도 각별한 문화재다. 그런데 큰 덩치와 종이, 섬유 등 재료적 특성 때문에 각종 재해와 훼손에 노출되기 쉽다는 큰 약점을 갖고 있다. 괘불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영산재(靈山齋), 수륙재(水陸齋), 천도재(遷度齋), 기우재(祈雨齋) 등 불교행사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수많은 괘불이 불교의식의 간소화와 소멸로 인해 함 속에서만 세월을 보내고 있다. 문화재는 박제되어 있을 때보다 현장에서 본래의 용도로 쓰일 때 빛이 난다. 괘불의 소임은 야단법석의 현장에서 신앙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불교의식의 전승이 보장되어야만 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용문사 괘불이 재의식을 통해 길이 보존되기를 바라본다.

     

    *영산회상(靈山會相) : 영산회상은 본래 불교음악인데 영산은 영취산을 가리키며 그곳은 석가여래가 중생을 구도하고자 설법하던 곳이다. 불자들이 영취산에 모여든 것을 가리켜 영산회라 했다. 이 영산회에서 불보살의 자비와 성덕을 찬양한 가사 〈영산회상불보살 靈山會相佛菩薩〉에 곡을 얹어 부른 것이 영산회상이다.

    *불입문자 이심전심(不立文字 以心傳心) : 불도의 진리를 깨달음은 언어나 경전에 의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

    *법통설(法統說) : 조선 후기인 17세기 성리학의 도통론(道通論)의 영향으로 성립된 한국 선종 승려의 전법(傳法) 계보를 말한다.

     

     

     

  • 컬처라인 문화메신저 글쓴이 : 컬처라인 문화메신저 경상북도 북부권 11개 시군의 문화예술 관련 정보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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