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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이 있는 풍경_영양군(2)]나방약수(螺方藥水)
    컬처라인 | 2019-12-30 프린트 퍼가기
  •  

     

    마을이 있는 풍경

     

    나방약수(螺方藥水)

     

    글 김범선

      

     

    영양읍의 북쪽, 봉화로 가는 중앙로(918번도로)를 따라 직진하면 주치재, 좌측으로 가면 도뭇골로 가는 갈림길에 투방걸이 있다. 투방은 관아에서 흙과 나무로 만든 투방(토방)으로 영양읍에서 일월면을 지나 봉화로 가거나, 수비를 거쳐 울진을 가는 보부상이나 과객들이 하룻밤 묵고 가는 여각이었다. 

    토방은 주막집 봉놋방에 묵어 갈 노자가 없는 가난한 과객들을 위해 관아에서 하룻밤 자고 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임시 거처였다. 읍민들은 이곳을 투방걸, 또는 투방꺼리(거리)라고 불렀다. 투방의 관리는 바로 옆 주막집, 마음이 바보같이 착한 손발노가 했다. 조선 영조 임금 때였다. 삼월 삼짇날 자정이 지나 발노가 투방을 열어보니 남루한 과객 한 사람이 냉기가 가득한 투방의 멍석바닥에 누워 있었다.

    과객의 복색은 남루하고 얼굴은 꾀죄죄하나 남다른 품위가 있었다.

     

    “보소, 손님은 어디로 가세요?”

    주막집 발노가 과객에게 물었다.

    “청기 정족으로 가는 길이외다.”

    “정족은 왜?”

    “혹시 정족동 나방을 아시오?”

    “나방, 잘 알죠. 거긴 약수 먹으로 해마다 가는데.” 발노가 말하자 과객은 화들짝 놀라 자리를 고쳐 앉으며,

    “정말 나방약수를 먹어봤소?” 

    “에헤이, 이 양반 속고만 살았나, 내일 나방약수탕에 갑시다, 데려다 주리다.”하고 말했다. 과객은 마음이 착한 손발노의 두 손을 덥석 잡으며,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나.”하며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런데 손발노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마주잡은 과객의 손이 농사꾼의 손과 달리 여자 손처럼 곱고 여렸다. 그래서 손발노는 

    “선비님은 뉘시오?”

    “한양 북촌에 사는 박씨라 하오.”

    “한양 사시는 분이 어찌 여기까지?”

    “나는 세상구경이나 하는 사람이오,” 하고 덤덤하게 말했다.

    손발노는 의아해하며, 이런 남루한 모습으로 세상 구경을 하러 다닌다니 별 사람이 다 있구나 생각했다.

    “나방은 왜 가시려고?”

    “내가 배탈이 나서 열흘이나 설사를 심하게 했다오. 안동에서 국풍(國風)을 만났는데.”

    “국풍, 뭐하는 사람이요?”

    “국장도감(國葬都監)에 몸을 담고 있는 지관(地官)이지요. 왕손이 상을 당하면 매장할 장지를 국풍이 전국을 다니며 명당을 찾아 기록을 한다오. 그 명당에 백성들은 절대 묘를 쓰지 못하오.”

    “그런 자리를 보았소?”

    “안동 송천에 명당자리를 하나 찾았다고 하더이다. 나는 배탈이 나고 몸이 아파 그 양반과 둘이서 의원을 찾았더니 위장병이라 하오. 그 말을 들은 국풍이 나방약수를 먹으면 고칠 수가 있다고 했소. 그래서 예정에도 없는 여길 왔다오.” 

    과객은 다급한 소리로 말을 하며 바짝 다가앉았다. 손발노가 과객을 보니 귀골이나 병색이 완연했다. 

    “하긴 나도 배탈이 나면 나방약수를 먹으로 간다오.”

    “나 좀 데려다줄 수 있소?”

    “그럽시다, 그런데 저녁은 드셨소?”

    “아직.”

    “저런 안즉 저녁도 못 드셨구나. 보소, 선비님요, 우리 주막집에 봉놋방이 비었으니 글로 가시죠.”하고 권했다. 선비는 아픈 몸을 이끌고 손발노를 따라 나섰다.

    오십 중반의 선비가 투방걸 주막집 봉놋방으로 들어가자 멍석을 깔아놓은 방바닥은 한증막처럼 후끈하고 관솔 등잔불은 가물거렸다. 선비는 눈을 감고 눕자 피곤해서 잠에 곯아떨어졌다.

        

     

    이튿날 하늘이 파랗게 맑아지자 손발노는 선비 박씨와 함께 쌀가루로 만든 백설기 두덩어리와 딱딱한 조청 엿을 베보자기에 싸들고 참남배기로 올라갔다. 

    두 사람이 반나절이나 걸려 흥림산 탕건봉을 넘어 숲이 우거진 험지의 고지대 마른 개울가에 도착하자 붉게 변색이 된 바위 틈새로 솟아나는 약수를 볼 수가 있었다. 두 사람은 목이 말라 허리에 차고 있던 조롱박 바가지로 번갈아 약수를 퍼서 마셨다. 손발노는 베보자기에 싸가지고 간 백설기와 조청 덩어리를 펴놓았다. 발노가 조청 덩어리를 작은 돌로 깨자 선비는 엿 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연시 약수를 퍼 마셨다. 배가 부르자 선비가 소피를 보려고 일어서는데 허리춤에서 동그란 구리패가 하나 뚝 떨어졌다. 그 동그란 구리 패에는 전면에는 말이 두 마리 그려져 있고 뒷면에는 무슨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약수터 건너편 소나무 밑에 소피를 보고 선비가 돌아오자 손발노는 동패를 내밀며,

    “이거 선비님 꺼 아니오?”하고 구리패를 내밀었다. 선비는 몹시 당황하며 그 패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이게 뭔지 아시겠소?”하고 물었다.

    “그거 선비님 노리게 아니요?”

    “노리게라, 어허허.” 선비가 호탕하게 웃으며 아주 좋아 했다.

    “이보시오 주인장, 우리 이걸로 장난 한 번 합시다.”

    “무슨 장난?”

    “주인장이 그걸 들고 어사를 하고 내가 죄인을 하리다.”

    “어사요?”

    “예, 어사요”

    “어사는 무섭다는데 난 그건 싫소.”

    “주인장은 어사 자격이 있소. 그걸 들고 어사 출도야 하고 크게 외치시오.”

    “어사출도야 이래?”

    “더 크게.”

    “어사출두야!”

    “예~잇” 선비가 손발노 앞에 무릎을 꿇고 납작 엎드렸다. 

    “그 다음 뭐라 그래요?” 손발노가 묻자 선비는 큰소리로 “네 이놈, 네 죄를 알렸다.”하고 호통을 치라고 했다. 손발노는 선비가 시키는 대로 “네 이놈 네 죄를 알렸다!”하고 호통을 치자 선비는 어쩔 줄을 모르며 손발노 앞에 납작 엎드려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며 이렇게 말했다. 

    “어사님, 소인이 부덕하여 병이 들어 목숨이 위급할 때 어사님을 만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요. 이제 목숨을 구했으니 명이 다 할 때까지 어사님의 뜻을 받들어 위국안민 하겠나이다.” 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싹싹 빌었다.

    5일후 그 과객은 병이 완쾌되어 손발노에게 고맙다고 극구 치하를 하며 내성(봉화)으로 간다고 하며 길을 떠났다. 사람들은 그 후 나방약수를 ‘어사약수’라고 불렀다. 당시 그 어사는 박문수라는 말도 있고 춘향전 이몽룡의 실존 인물인 성이성이라는 말도 전해진다.   

     

     

    흥림산(興霖山766m) 아래 고지대에 나방(螺方)이라는 곳은 영양군 청기면 정족리에 속한다. 정족리(正足里)는 신선봉과 두리봉, 그리고 패방산이 무쇠가마솥의 3개의 발처럼 둘러싸고 있어 정족(鼎足,正足)이라고 불렀다. 정족리에서 나방으로 가려면 흥림산 탕건봉 밑 아주 경사가 심한 산길을 올라가야 한다. 나방은 소라처럼 길이 꼬불꼬불 하나 마을은 오목한 작은 분지에 있어 나방이라고 불렀다. 나방은 아랫나방과 윗나방이 있는데 약수는 윗나방 고지대 마른 개울가에 있다. 

    영양읍에서 나방약수터로 가는 길은 도뭇골에서 참남배기로 흥림산을 넘어 가는 옛길이 있었는데 지금 그 길은 산악 험지로 등산로가 없어 폐쇄되었고, 차편으로 청기면 정족리로 가서 윗나방으로 올라가야 약수터로 가는 길이 있다. 

     

     

     

    옛날부터 나방약수는 소화기나 순환기 계통에 좋은 약수로 알려져 있으나 흥림산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 개발이 힘들고,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그 때문이었을까?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진 약수는 점점 더 신비를 더해갔고, 태초의 자연을 간직한 영양이 숨겨 놓은 보물 중에 하나가 되었다. 약수의 맛을 보면 자연스럽게 마패를 들고 아옹다옹 했을 선비와 손발노가 떠오르거나 동요 속에 등장하는 졸린 토끼와 숨바꼭질하는 노루가 생각나 슬며시 웃음이 난다. 

     

    계절이 열릴 때 마다 자연의 본연을 고스란히 드러내 문명 속 우리를 안심시키는 영양. 그 속에서도 아직 손 타지 않은 나방약수가 졸졸 거리며 흐르는 것이 고맙게 느껴지는 건 비단 흥림산 속의 생명들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닌 듯하다. 

     

     

     

     

     

     

  • 김범선 글쓴이 : 김범선 김범선(소설가)

    경북고등학교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한국문인협회문단윤리위원
    국제펜클럽한국본부회원
    한국소설가협회중앙위원

    작품
    눈꽃열차, 비창1,2권. 황금지붕, 개미허리의 추억(상, 하권), 킬러밸리. 노루잠에 개꿈, 당콩밭에 여우들, 영혼중개사, 협곡열차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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