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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 거니는 상주]솟대 두 그루
    컬처라인 | 2020-01-23 프린트 퍼가기
  •  

     

    시로 거니는 상주

     

     

    솟대 두 그루

     

     

    글 황구하

     

      어느덧 가을도 끝자락입니다. 해도 짧아지고 아침저녁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안개가 잦습니다. 늦가을은 우수의 유전자를 품고 있는지, 요 며칠 마음의 그늘이 짙었습니다. 자잘한 일이 얽히고 머리가 지끈거려 만사가 심드렁했습니다. 사는 게 그렇다고, 하루하루 다 그렇게 건너가는 거라고 당신은 덤덤하게 말했지요. 

     

      저녁답에 남은 햇볕이라도 좀 쬐어야겠다 싶어 나선 길, 사벌 들녘은 가을걷이가 한창이었습니다. 벌써 타작을 끝낸 논에는 커다란 볏짚묶음이 듬성듬성 놓여 있었습니다. 들깨를 털기 위해 모아놓은 들깨더미에서 싸한 들깨 향이 훅 끼쳐오고요. 

     

      너른 들의 원흥리(元興里) 마을 입구, 여린 햇살 받으며 서 있는 향나무 솟대와 몸통 굵은 왕버드나무가 아련했습니다. 마침 길 아래 밭에서 일하고 계시는 동네 김판식(73세) 어르신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요. 밭에는 배추며 무, 당근, 파 등의 채소가 푸르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어르신은 “이곳이 동네 마트라요. 집에서 먹을 건 시시만큼 농사 지니께 온갖 채소가 여개 다 있어여.”라며 이곳이 습지라서 채소 농사가 잘 된다고 했습니다.

     

     

     

     

      원흥리는 본래 세천(외서천)과 동천(구리내)이 합치는 곳에 있었는데 약 200여 년 전 큰 홍수가 나서 마을 집들이 모두 떠내려갔다고 합니다. 그 후에도 몇 번의 홍수를 거치면서 제방을 만들고 모래가 많은 곳에 터를 잡아 사리(沙里), 새리라 불리는데요. 마을 근처에 왕버드나무숲이 있었다고 합니다. 성역인 소도(蘇塗)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삼한시대 때 일정한 장소에서 질병과 재앙을 쫓기 위해 제사를 지냈는데 그 장소를 소도라 하고 거기에 솟대[立木]를 세웠다고 합니다. 제를 지내는 중에는 죄인도 처벌하지 않았답니다. 이곳 소도는 보통 사람들은 출입을 삼가고 몹쓸 병(마마)이 심하여 사람이 죽으면 왕버드나무숲에서 풍장을 하던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왕버드나무숲이 일상의 삶에서 홍수와 질병 등 제방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지요.

     

      중학교 2학년 때 우리 마을에도 큰 홍수가 있었습니다. 장맛비로 온 세상이 시끄러웠는데요. 그때 네 살 난 사촌동생 지은이가 불어난 물에 떠내려가 죽은 일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두 오빠와 남동생, 또 한동네 같이 살던 사촌 남동생들 틈에서 외로움을 일찍 알아버린 나에게 사촌 여동생 지은이는 큰 선물이었습니다. 비가 오니 제 오빠와 물장난, 흙장난을 하다가 비가 잠시 그친 사이 하필 냇가에 나갔다고 합니다. 집에서 손을 씻고 해도 되는데 왜 냇가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학교를 다녀오니 집안은 무거운 침묵 속 울음천지였지요. 세찬 물살에 빨려 떠내려가던 지은이는 몇 시간 뒤 발견되었는데요. 물이 돌아 다시 굽이돌아가는 이웃마을 냇가 한쪽, 왕버드나무가 어린 주검을 안고 있었다고 합니다. 왕버드나무는 사촌동생에 대한 기억으로 옹이진 지 오래인데 소도로 신성시하는 위상에 뭉클합니다.

     

      숲을 이루던 원흥리 왕버드나무는 다 사라지고 지금은 몇 그루뿐입니다. 그러나 그 수형(樹形)이나 덩치는 묵직합니다. 왕버드나무 사잇길 향나무 솟대 두 그루도 의연합니다. 솟대는 장승과 함께 마을을 지켜주고 질병을 막아주며 풍농을 기원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매개물인데요. 솟대는 대부분 나무를 세우고 새 모양의 조형물을 얹습니다. 나무는 신이 내려오는 길이며 나무 꼭대기 새는 심부름꾼입니다. 그런데 원흥리 솟대는 새가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향나무를 한 쌍으로 세운 것도 특이하지만 고목이 어떻게 그 오랜 세월을 지탱하고 있는지 신기합니다. 지금의 솟대는 다른 곳에 있다가 1934년 홍수 때 멀리 떠내려간 것을 다시 찾아 지금의 장소에 세웠다고 합니다.

     

     

      지금도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솟대 앞에 제물을 차리고 동제를 지내는데요. 옛날에는 상신당과 하신당으로 나뉘어져 동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마을에서 좀 떨어진 동구나무에 지내던 상신당 제사는 없어지고 하신당인 솟대에서만 제사를 지내지요. 동제를 지내기 위해서는 지극히 정성을 들이고 엄격한 규율이 있습니다. 제관은 한 가정을 이루는 성인남자로 부정 없는 사람으로 정해지고 마을대표 두 사람이 집사를 하도록 합니다. 동제를 앞둔 며칠 전부터 제관은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도 근신을 하고 외지인의 출입도 금합니다. 보통 풍물을 올리고 제를 지내는데 이곳은 침묵 속에서 치러진다고 합니다. 그해 제관은 동답(洞畓)을 부치고 1년 동안 남의 큰일, 궂은일을 보지 않고 근신한다는데요. 가난한 시절엔 동답 부치는 걸 감사히 여기고 1년 동안의 근신을 위한 불편을 기꺼이 감수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멀리 출타할 때나 큰일이 있을 때 솟대 앞에 무탈과 안녕을 기원하며 치성을 드린다고 합니다. 

     

      재작년 ‘시에문학회’의 문인들이 상주 문학기행을 하면서 이곳도 들렀습니다. 솟대 두 그루를 보고는 제각각 한마디씩 거들었는데요. 문인들다운 상징이 있었습니다. “지게 같다, A자다, 들 입(入)자다, 뒤에서 보니 결국 사람 인(人)자다, 두 개를 세운 건 음양의 이치다, 조형물 없이 나무만 세운 건 소도의 뜻이다, 소도의 기록에도 새가 나오지 않으니 이곳 역시 재앙을 쫓는 신성한 지역이다” 등의 이야기였습니다. 

     

      솟대는 사람살이에서 재앙을 막고자 하는 간절한 신앙의 증표입니다. 재앙(disaster)이라는 말이 별(astro)이 없는(dis-) 상태라는 걸 감안하면 대낮같이 밝은 밤을 살아가는 지금 여기가 이미 재앙을 짊어진 ‘지게’의 세상일 것입니다. ‘별’은 단순히 ‘별’이 아닐 것이고요. 살면서 잊고 있는, 잃어버리고 있는 원시의 그 무엇, 자연과 하늘을 섬기는 본연의 ‘사람됨’이 아닐는지요. 

     

     

      솟대 두 그루 모양 ‘A’는 소도의 측면에서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소설 『주홍 글자』를 생각하게 합니다. ‘죄인’으로 상징하고 규정한 ‘A’가 ‘천사(Angel)’의 ‘A’로 반전되는 접점으로 볼 수 있겠지요. ‘죄’로 들었다면 눈물겹게 참회하지 않고 어찌 세상 속으로 나아갈 수 있겠는지요. 규정되고 억울한 ‘죄’ 역시 풀리지 않는다면 영영 갇힌 삶이 될 것입니다.

     

      솟대는 가장 원초적인 삶의 기도입니다. 자연에 순응하고 감사하며 하늘을 우러르는 마음입니다. 고요히 귀 기울이고 눈여겨보면 이 세상 모두 솟대 아닌 게 없습니다. 별, 달, 풀, 꽃, 새…. 거기에 간절한 마음 걸어놓으면 모두 솟대입니다. 그래서 푸른 하늘을 우러르며 붉은 감을 매달고 있는 감나무도 이 계절의 솟대입니다. 시(詩) 역시 그렇습니다.

     

     

    ‘풀린다’라는 말 

    그 소리에는 길이 열린다 

    핏줄처럼 따뜻하게 이어진 길 

    길가에 오목조목 냉이 꽃다지 

    앙징스런 꽃들이 하늘거린다 

    바람이 꽃대궁을 흔들고 간다 

    산과 들을 깨우며 가는 바람의 노래 

    노래로 밝아오는 세상 

    한 시대를 옭아맸던 끈이 

    실개천같이 누워있다 

    ―박찬선 「풀린다」 전문(『현대문학』, 1994년 5월호)

     

      심호흡하며 조용히 눈을 감고 “풀린다, 풀린다” 속삭이면 머릿속이 맑아집니다. 기운이 솟습니다. ‘풀린다’는 말에는 ‘풀린다’는 믿음이 들어 있습니다. 안개가 둘둘 걷히면서 길이 보입니다. “풀린다, 열린다, 하늘거린다, 간다”라는 말을 읊조려봅니다. 너와 나의 빗장 걸린 마음이 풀리고, 이웃과 사회의 복잡한 일이 풀리고 나아가 역사적 사슬, “한 시대를 옭아맸던 끈이” 소르르 풀립니다. “바람이 꽃대궁을 흔들”어 길가의 낮은 꽃들로부터 “산과 들을 깨우”니 온 세상이 노래가 됩니다.

     

      솟대 두 그루의 사람 인(人)자 형상이나 들 입(入)자 형상처럼 세상 만물은 모두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입니다. 모두 음과 양의 이치 속에 깃들어 있습니다. 사람살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질서와 무질서, 문명과 야만, 해와 달, 산과 강, 당신과 나 모두 그렇습니다. 그러니 재앙이 있는 곳에 구원도 함께 있겠지요. 얽히면 반드시 풀리고요.    

     

      가을도 깊을 대로 깊었습니다. 연보라 구절초도 허리가 굽었습니다. 곧 서리가 내리고 겨울이 들이닥치겠지요. 눈이 내리고 또 봄이 올 것이고요. 사는 게 그렇습니다. 늦가을 원흥리 향나무 솟대에 그렁저렁 마음 한 자락 걸어놓고 그렇게 또 오늘을 건너갑니다.(♣)

     

     

     

  • 황구하 글쓴이 : 황구하 충남 금산에서 태어났다. 영남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동양철학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2004년 『자유문학』으로 등단하였다. 시집 『물에 뜬 달』이 있으며 현재 반년간지 『시에티카』 편집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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