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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를 걸으며]노비의 몸 시인의 머리
    컬처라인 | 2020-02-10 프린트 퍼가기
  •  

     

    이야기가 있는 문화탐방

     

    노비의 몸 시인의 머리

     

    글. 류명화

      

    늦은 가을 추수가 끝난 빈들에 때 아닌 소나기가 쏟아진다. 

    묵직한 빗방울 소리에 놀라 창밖을 내다보니 잎 떨어진 가지에 누런 모과 몇 덩이를 달고 선 고목의 몸을 타고 청승스레 빗물이 흐른다. 이유 없이 쓸쓸한 이 계절 비는 창밖에 내리는데 안에서 바라보는 내 가슴부터 젖어드는 이유는 무얼까. 

     

     春雨梨花白 (춘우이화백) 봄비 내리자 배꽃이 하얗고

     東風柳色黃 (동풍유색황) 봄바람 불자 버들개지 노랗네 

     誰家吹玉苖 (수가취옥적) 옥피리를 누가 부는가

     搖揚落梅香 (요양락매향) 매화향기 흩날리누나

     

    지극히 자연스럽게 오가는 계절이지만 시인은 꽃피는 봄날 매화 향이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글로 표현했던 것처럼 나와 함께 있다면 그녀는 지금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혼자만의 상상에 빠졌다가 비 그치기를 기다려 설죽(雪竹)의 흔적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설죽은 닭실마을 권벌의 손자인 석천(石泉) 권래(權來)의 시청비(侍廳婢:여종)로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을 산 실존 인물이라는 사실에 매료돼 이야기의 배경인 ‘청암정’과 ‘석천정사’를 찾아오게 됐다.  

     

    일 년에 두어 차례씩 찾는 이곳을 굳이 금쪽같은 휴일 오후 혼자서 찾아 나선 까닭은 그녀와 내가 느낄 시대적 괴리감이 어쩌면 같은 공간 속으로 들어가 봄으로 좀 더 줄어들까 하는 기대감에서 인지도 모르겠다. 

    주단을 깔아 놓은 듯 폭신하게 깔린 솔잎을 밟으며 약 450년 전 그녀 나이 15세 총명하고 어여뻤던 그 때를 상상하며 그녀가 수없이 걸었을 이 길을 따라 그녀의 주인 석천이 경영하던 석천정사로 들어선다. 

     

    (석천계곡 소나무숲길)

     

     

    석천정사는 물야에서 내려오는 내성천 원류와 창평천이 만나 합수되는 지점에서 창평천을 따라 약 2km쯤에 위치해 있다. 

     

    석천계곡은 봉화읍내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위치해 있어 시내에서 걸어 2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계곡수와 소나무숲길은 인적이 드문 깊은 산중처럼 고요하고 한적한 곳이다. 

     

     

    몇 해 전 이원걸 박사의 강의 ‘조선 삼대 여류시인 설죽’을 통해 설죽이 이곳 석천정사의 주인인 석천 권래의 시청비였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곳 닭실마을을 배경으로 그녀의 유년시절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충재 권벌 선생과 조선역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시인이라고 평가 받던 권필 선생과 함께 했다. 신분이 비천한 시청비였으니 정식으로 글을 배우지도 못했을 것이며 감히 글을 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탄받고 욕이 될 수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비록 몸종의 신분이었던 그녀가 글을 익히고 쓸 수 있었던 건 늘 글 읽는 소리와 글 쓰는 모습을 접할 수 있었던 환경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녀의 신분은 솔거노비로 남주(男主)에 딸린 시청비였다. 시청비는 대개 비첩(婢妾)으로 주인의 성적 대상이 되거나 주악(奏樂), 가무(歌舞)로 정서적 충족을 위해 봉사하는 노비였다. 지금은 오디오와 텔레비전이 설죽과 같은 시청비 역할을 대신해주지만 예전엔 노래와 춤을 사람이 직접 했던 모양이다.  

     

    설죽의 시는 원유(遠遊) 권상원(權尙遠)의 시문집 『백운자시고』에 166수가 깊이 잠들어 있던 것을 이원걸 박사에 의해 알려지게 됐으며, 이 외 『청장관전서』에 남아있던 한편을 더해 총 167수가 남아 있어 조선시대 천재 여류시인으로 재조명 받게 됐다. 그녀의 시는 이원걸 박사에 의해 번역 되었고 논문을 통해 학계에 소개 되었으며, 봉화문화원에서 발간한 『설죽의 생애와 시』를 통해 그녀의 시와 기구한 삶이 다시금 일반인들에게 전해질 수 있게 되었다. 

     

    조선시대 여류작가를 손꼽자면 황진이, 허난설헌, 매창을 꼽지만 시의 양적인 측면에서 보면 허난설헌과 설죽의 순으로 손꼽아야 할 만큼 설죽은 이제 역사 속 인물로 재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허난설헌과 설죽은 시대적 배경이 비슷하나 허난설헌은 허균의 누이였고 명문가의 딸로 태어나 큰오빠 허성으로부터 글을 익힌 그녀의 문학적 재능은 멀리 중국에까지 미칠 정도였다. 그에 비해 설죽은 비참하기 그지없는 시청비로 어떻게 한자를 익혀 당대 문인들과 마주하고 시로 교유할 수 있었는지 알 길이 막연하다. 또한 귀천을 따지지 않고 그녀의 문학적 재능을 아껴 시문집에 실었던 권 씨 집안의 문학적 가치관이 어쩌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그녀의 존재와 시들을 기록에 남김으로서 역사적 유물로 재조명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석천 권래의 친척이었던 권필(權韠)은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으며 석전(石田) 성로(成輅)와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둘은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제자로 동문수학한 친구였으며 홍길동전을 쓴 허균과도 친분이 남달랐다. 그런 관계로 인해 석전은 친구 권필을 만나기 위해 봉화를 자주 찾았고 그러던 가운데 재기발랄하고 미모가 출중했던 설죽을 만나게 된다. 

     

    석천의 시청비였던 설죽은 어려서부터 영리하고 재주가 빼어나 문 밖에서 글 읽는 것을 몰래 엿듣고 익혀 문장과 시구의 의미를 습득하였다고 하니 정말 천부적인 재주를 타고 났다. 글 짓는 재주는 물론이고 미색까지 겸비했으니 어린 설죽을 처음 본 순간 권필의 친구 석전은 그녀에게 빠지고 말았다. 일찍 상처하고 외로웠던 처지에 그가 설죽에게 관심을 갖자 그와 어울리던 사대부들은 장난기가 발동해 석전 성로가 죽었을 때 부를 만시(輓詩)를 지어 좌중을 울게 한다면 오늘 밤 석전 성로와 잠자리를 허락하겠다는 조건을 건다. 석전의 호이면서 한양 서호정(西湖亭)의 주인이었던 서호(西湖)를 운자로 그녀가 즉석에서 시를 지어 좌중을 울게 했으니 석전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寂寞西湖鎖草堂 (적막서호쇄초당) 서호정 초당 문은 닫혀서 적막한데

    春臺無主碧桃香 (춘대무주벽도향) 주인 잃은 봄 누각에 벽도향만 흩날리네

    靑山何處埋豪骨 (청산하처매호골) 청산 어는 곳에 호걸의 뼈 묻으셨는지

    唯有江流不語長 (유유강류불어장) 오직 강물만 말없이 흘러가네

     

    문호 석전이 죽었어도 무심히 흐르는 강물은 세월 앞에 자유로울 수 없음을 자리한 사대부들도 알고 있었기에 인생 무상함을 느껴 흘린 눈물이 아니었을까? 나이와 신분을 뛰어 넘어 두 사람은 깊은 사랑에 빠졌고 이런 석전의 마음을 헤아려 친구 권필은 석천에게 설죽을 석전의 첩으로 줄 것을 청해 두 사람은 한양으로 올라가 서호(西湖, 지금의 양화나루) 근처에서 10년을 함께 살았다. 

     

    (석천정사 앞 강가에는 백석량(白石梁)이라 쓰여 진 흰 바위가 자연스레 징검다리를 이루고 있다.)

     

     

    우연하게도 석전의 스승이었던 송강 정철과 기생 자미의 이야기도 나이와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로 유명했던 것만큼이나 석전과 설죽 또한 그러했었다. 하지만 당대 대문호였던 송강 정철도, 또 그의 애제자 석전도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책임져 신분으로부터 해방시켜줄 수는 없었다. 이 두 여인은 각자 천부적 재능과 미색을 겸비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비와 기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기구한 삶을 살아야만 했다. 몸은 비록 노비의 몸으로 태어났으나 시인의 머리를 가졌으니 삶이 어찌 순탄할 수 있었겠는가. 까막눈에 무지렁이로 살았더라면 현실과 이상으로부터 오는 내적 갈등은 덜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신분이 미천한 여인들만 모진 세월을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석전은 정세가 혼란해 당쟁의 희생양이 되어 오랜 세월 귀양살이를 해야만 했던 스승 정철과 절친했던 친구 권필마저 광해군 때 필화사건으로 귀양길에 생을 마치자 세상을 한탄하며 자신의 시를 모두 불태워 그 흔적마저 없애려했다. 잔혹한 현실을 향한 분노로 세상과 담을 쌓고 세월을 한탄하며 술로 남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임진왜란과 광해군 통치, 인조반정과 병자호란에 이르기까지 질곡의 세월을 살아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겨운 일이었겠지만 당파의 소용돌이에서 선비의 삶을 고집하기엔 너무도 가혹한 세월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세월 덕에 당대 최고의 문인과 교유했던 여성들이 드러났다. 송경 삼절로 유명했던 서경덕과 황진이가 그러했고 소설 홍길동전을 쓴 허균과 매창, 송강 정철과 자미 그리고 정철의 애제자였던 석전과 설죽. 이 여성들의 신분은 비록 미천하였으나 문학적 재주가 뛰어나 당대의 학자들에게 글과 삶의 인연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풍랑의 세월을 딛고 그들은 신분과 성, 차별을 뛰어넘어 서로를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역사를 통틀어 여류작가로 손 꼽혔던 몇 안 되는 여인들 가운데 설죽은 이곳 닭실마을이 그녀의 문향(文鄕)이었다. 

    석전이 죽고 가난을 면치 못했던 설죽은 훗날 관기가 되어 충청도와 전라도를 떠돌며 살다가 꿈에도 그리던 석천정사 서쪽 마을로 돌아와 생을 마감했다고 전해지나 그녀의 기록은 167편의 시와 함께 석천정사와 청암정을 배경으로 유년 시절을 보냈음을 짐작할 뿐이다. 그저 무심히 흐르는 강물처럼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져 안타깝기 그지없다.

     

    시대를 달리 하고 있어, 그녀의 석천정사와 내가 기억하는 석천정사의 추억은 다르나 같은 곳에서 나고 자란 동향인이자 같은 여성으로서 바라본 설죽의 삶과 문학은 남다른 애정과 애도의 마음을 갖게 한다.

     


     

    오늘따라 비 그친 계곡은 티 없이 맑고 그 안에 담긴 가을 하늘빛마저 청아한데 그녀도 한 번쯤 이 광경을 보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 온다. 비록 몸은 노비였으나 천재 여류시인 설죽이 봉화에 살았었다는 것을 기억해 줬으면 하는 바람과 이 아름다운 봉화를 배경으로 앞으로 더 많은 문학인과 예술인이 배출되기를 희망해본다.   

     

     

     

  • 류명화 글쓴이 : 류명화 1972년 청명한 식목일 오후 2남7녀 중 아들이길 바랐던 부모님의 서운한 마음과 상관없이 일곱째 딸로 태어났다. 똑똑하진 않지만 나름 삶을 즐길 줄 알고 퉁퉁한 아랫배와 홀쭉한 주머니 사정에 스트레스 받지 않는 건강한 여성이다. 지금은 봉화의 아름다운 자연자원을 바탕으로 숲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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