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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진지방 생활문화]울진 포구사람들의 곡진한 삶 덥혀주던 달큰구수한 ‘메르치국’
    컬처라인 | 2020-03-23 프린트 퍼가기
  •  

    동해연안의 생활문화

     

     

    울진 포구사람들의 곡진한 삶 덥혀주던

       

    달큰구수한 ‘메르치국’

     

     

    글. 남효선

     

     

    울진사람들의 식생활은 생업과 각별하게 연결되어 있다. 농촌사람들은 논이나, 밭에서 나는 작물로, 산촌사람들은 산야에서 철마다 나는 나물로, 해촌 사람들은 네 계절을 주기로 찾아드는 고기떼로 삶을 꾸리며 식생활 문화를 축적해 왔다.

    ‘메르치(멸치의 울진지방 방언)’는 1960~70년대 울진사람들을 먹여 살린 주요 어종이었다. 때문에 울진 해촌의 각 포구에서는 ‘후리질’어법이 매우 발달했다.
    1960~70년대 울진지방의 해촌에서는 망종이 드는 6월부터 추분인 9월까지 울진 앞바다를 찾아드는 멸치 후리질로 눈코 뜰 새 없는 바쁜 나날을 보냈다.

     
    당시 후리질로 주로 잡는 어종은 ‘메르치’와 ‘앵미리(양미리)’였고, 울진사람들이 하던 후리질은 ‘물가후리질’과 ‘배후리질’ 두 가지 방식이었는데 주로 ‘물가후리질’로 멸치와 앵미리를 잡았다. 당시 ‘물가후릿그물’의 규모는 둘레가 약 300m 크기였으며 주로 해안에서부터 150m 내외에서 조업을 했다.

     

     

     

     

    물가후리질을 하기 위해서는 ‘짬(바다속 바위군락; 울진 자연산 미역 자생지)’이 없고 ‘불(백사장을 일컫는 울진지방 방언)’이 넓게 펼쳐진 곳이 적당했다. 울진 북면지역에서는 ‘흥부 불가’나 ‘내평들 앞 불가’에서 주로 행해졌다.

    후리질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해류를 따라 이동하는 멸치 떼를 정확하게 관찰하는 일이다. 당시 멸치 떼의 이동을 관장하는 사람을 ‘망잽이’라고 불렀다. 망잽이는 오늘날 ‘어군탐지기’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해양생태계에 대한 경험적 지식이 풍부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여든 일곱의 이종철옹은 “옛날 망잽이는 바다날씨나, 해류의 방향, 바다온도 등을 잘 아는 사람이 맡았어. 요즘 같으면 해양박사지.”라며 망잽이를 치켜세운다.


    당시 망잽이는 갈매기 떼의 이동 변화를 관찰해 고기떼의 이동 시점과 경로를 파악했다고 한다. 멸치 떼를 발견한 망잽이가 ‘후리야’하며 큰 소리로 외치면 포구의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바가지나 함석, 물동이 등의 도구를 들고 백사장으로 내달아 후릿그물을 둘러치고, 옷을 입은 채로 바다에 뛰어들어 들고 온 함석 물동이와 바가지로 새하얗게 몰려오는 멸치 떼를 백사장으로 퍼냈다.

     

     

    이렇게 잡은 멸치는 주로 네 가지 방식의 조리법으로 울진사람들의 식탁에 올랐다. 후리질로 잡은 멸치 중 가장 싱싱하고 훼손이 덜 된 멸치는 싱싱한 ‘회(膾)’로 조리돼 포구 사람들의 입맛을 살렸고, 나머지는 ‘메르치국’과 ‘메르치된장찌개’의 주재료가 되거나 ‘메르치간수(젓갈)’로 만들어 졌다.

    메르치국은 배춧잎과 궁합이 잘 맞는 음식이다.
    멸치 후리질이 주로 행해지던 시기는 6월부터 9월경으로, 이 무렵이면 김장하기 위해 집집마다 배추를 재배했으므로 배춧잎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메르치국 조리는 먼저 ‘파지멸치(멸치 몸체가 심하게 훼손돼 횟감이나 상품으로 활용할 수 없는 상태)’라고 부르는 생멸치의 비늘을 일일이 제거하는 재료 손질로 시작된다. 멸치 대가리와 뼈도 모두 제거하고 깨끗이 씻어둔다. 그런 다음 된장을 물에 풀어 다듬은 배춧잎을 함께 넣고 끓여 국물을 낸다. 넣은 배춧잎이 푹 익도록 끓으면 손질해 두었던 멸치를 집어넣고 한소끔 더 끓인다. 이어 손질해 놓은 파와 고춧가루를 넣고 한소끔 더 끓이면 ‘달큰하고 구수한’ 메르치국이 탄생한다. 고된 바닷일을 하고 귀가한 어부에게 뜨끈하면서 구수하고 달큰한 메르치국은 보약 못지않은 값지고 맛 나는 먹거리였다.

     

     

    메르치된장찌개는 건멸치로 조리하는 음식이다.
    울진지방에서는 주로 보리 팰 무렵이나 가을에 멸치가 많이 잡혔다. 늦봄에서 초여름에 잡히는 멸치는 주로 ‘멸젓’이나‘ 메르치간수’를 담는데, 이때 멸치를 말려 놓았다가 겨울에 찌개거리로 사용했다. 생멸치와 마찬가지로 건멸치도 모두 대가리를 떼어 내고 배를 따서 내장을 뺀 뒤에 썰어 넣고 된장을 풀어서 끓였다. 또 건멸치는 국수용 육수를 만드는데 요긴하게 사용했다. 건멸치를 통째로 넣어 끓이면 달큰하면서도 구수한 육수로 탄생했다.

     

    울진사람들은 젓갈을 ‘간수’라고 부른다.
    젓갈을 간수라고 부르는 까닭은 ‘젓갈에 포함된 물에 간이 벤 물’을 뜻하기 때문이다. 간수를 달리 ‘젓국’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간수는 저장해서 오래두고 양념이나 밑반찬으로 사용하는 먹거리이다. 울진사람들은 주로 이렇게 저장해 두고 양념으로 사용하는 간수를 멸치나 메가리(전갱이새끼), 꽁치로 담았다. 울진사람들은 이 중에서도 ‘꽁치간수’를 최고로 쳤다.

     

    메르치간수는 주로 가을철에 담았다.
    간수를 담그는 일은 매우 까탈스러워 주의를 기울여한다. 간수를 잘못 담그면 금방 벌레가 생기기 때문이다. 간수를 담글 때 가장 주의를 기울여하는 것은 ‘간’을 잘 맞추는 일이며, 물이 들어가지 않게 보관하는 일이다. 먼저 옹기 바닥에 멸치를 한 켜 깔고 그 위에 웃소금을 뿌린다. 또 그 위에 멸치를 한 켜 깔고 소금을 뿌리는 방식으로 차곡차곡 담은 뒤 옹기 주둥이를 단단하게 싸맨다. 그 위에 나무를 태운 재를 한 움큼 뿌려 둔다.
    이렇게 싸 맨 옹기는 비가 들어오지 않는 응달에 둔다. 그러면 간수가 적당히 익으면서 멸치의 형태가 허물어지고 간수물이 생긴다. 간수는 장기간 보관이 가능했기 때문에 가을철에 담근 간수는 다음 해 가을에 새로 메르치간수를 담을 때까지 양념이나 밑반찬으로 요긴하게 먹었다.

     

    전통사회의 대가족 단위가 붕괴되고 소가족 단위로 한국사회가 재편되면서 전통사회를 버팀 해 준 먹거리 양상도 급격하게 변했다. 특히 인스턴트식품이 범람하면서 많은 손길을 요하는 전통 먹거리는 역사의 뒤 안으로 사라진지 오래다. 인스턴트식품이 우리들의 식탁을 차지하면서 가족과 이웃 중심의 모듬살이 전통도 이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누대에 걸쳐 전해져 온 전통 먹거리의 맛이 그리워지는 이유이다. 
     

     

  • 남효선 글쓴이 : 남효선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안동대학교 대학원에서 민속학을 공부하였다. 1989년 문학사상의 시 부문에서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하였다. 한국작가회의, 경북작가회의, 안동참꽃문학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으로 『둘게삼』이 있다. 현재 시민사회신문의 전국본부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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