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 블로그

CL포커스

문화메신저

  • 쑤세미
  • 류명화
  • 남효선
  • 박장영
  • 유태근
  • 편해문
  • 컬처라인 문화메신저
  • 권혁만
  • 김상현
  • 컬처라인 문화메신저
  • 고성환(高性煥)
  • 컬처라인 문화메신저
  • 강병철
  • 박원양
  • 김상현
  • 안경애
  • 정창식
  • 안경애
  • 김범선
  • 박월수
  • 김상진
  • 오공환
  • 안종화
  • 임은혜
  • 황구하
  • 엄원식

지난연재

  • 김종우
  • 최혜란
  • 남정순
  • 이효걸
  • 혼다 히사시(本多寿)
  • 장호철
  • 송성일
  • 이종암
  • 김만동
  • 남효선
  • 남정순
  • 강병두
  • 엄순정
  • 허지은
  • 엄순정
  • 장호철
  • 안상학
  • 류준화
  • 김현주
  • 이선아
  • 송성일

문화포커스

>CL포커스>문화포커스

  • 게시판 상단
    [지역의 역사인물_영주시]성학십도(聖學十圖) 판목(版木) 품은 괴헌고택(槐軒古宅), 그 흔적과 기억
    컬처라인 | 2020-04-06 프린트 퍼가기
  •  

     

    이야기가 있는 문화탐방

     

     

    성학십도(聖學十圖) 판목(版木) 품은 괴헌고택(槐軒古宅), 

     

    그 흔적과 기억 

     

    글. 안경애

      

     

    괴헌고택(槐軒古宅·국가민속문화재 제262호)은 영주시 이산면 두월산자락 비스듬한 대지에 맑은 시내 내성천을 앞에 두고 지은 집이다. 이 집은 연안 김씨 영주 입향조(入鄕祖) 김세형(金世衡)의 8대손인 김경집(金慶集)이 정조3년(1779)에 지은 집으로 외풍을 막아주고 낙엽이 쌓여 재물이 모인다는 소쿠리형 명당터에 자리 잡았다. 남서방향으로 나지막한 세 개의 봉우리를 가진 삼태봉이 고택의 안산(案山)이다. 고택과 삼태봉 사이로 금빛모래 반짝이는 맑은 내성천이 흐른다.

     

     괴헌고택 원경 (사진. 안경애)

     

    이 고택은 김경집이 ㅁ자형 살림집으로 지은 이후 고종8년(1871) 증손인 김복연이 일부 중수하였고 1972년 수해로 앞에 있던 정자 월은정(月隱亭)과 행랑채가 붕괴돼 행랑채는 복원하고 월은정은 편액만 남아있다. 1990년에 안채를 보수하였다. 이 고택은 김영(金塋)이 부친에게 살림집으로 물려받은 이후 8대에 걸쳐 대대손손 꾸려오고 있다. 괴헌(槐軒)이란 당호(堂號)는 김영이 괴(槐)나무(회화나무)가 가득하다는 뜻에서 이 가옥의 당호를 ‘괴헌(槐軒)’으로 짓고 이를 호(號)로 삼았다.

     

     괴헌고택(사진. 문화재청)

     

    괴헌고택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 앞에 ㅁ자형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붙어있고 동쪽 뒤편 높은 곳에는 사당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랑채는 중문이 있는 안채와 붙어있어 평면상으로는 한 채의 집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높은 기단 위에 계자난간을 둘러 누마루처럼 짓고 팔작지붕을 올려 날아 갈 듯 멋스럽다. 두 칸이 방이고 한 칸이 대청인 사랑채 앞으로는 반 칸 규모의 툇간(덧 달아낸 칸)을 두었는데 이 툇간을 기둥 밖으로 한 뼘 넉넉히 빼내어 일반적인 툇간 보다는 넓다.

     

     괴헌고택(사진. 문화재청)

     

    월은정 현판

     

    사랑채의 중앙에는 월은정(月隱亭)이라는 현판이 걸려있고 우측에는 관수헌(觀水軒), 좌측에는 어약해중천(魚躍海中天)이라 쓴 편액을 걸었다. 월은정 현판은 수해로 붕괴된 정자(亭子)의 현판이고 관수헌이 사랑채의 당호(堂號)다. 사랑채 당호 관수헌은 사랑채에서 주변 경관이 아름답고 맑은 시내 내성천을 바라다볼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어약해중천은 ‘물고기가 바다에서 뛰어 하늘로 오른다’는 뜻으로 인재(人材)가 세상에서 자신의 뜻을 펴는 모습을 의미한다.

     

     괴헌고택 안채 마루 (사진. 문화재청)

     

    고택 안채는 상방 한 칸과 상방윗방 한 칸을 겹집처럼 전후로 배치하고 북측에 부엌 한 칸과 안방 두 칸을 뒀다. 상방과 안방사이에는 대청 두 칸을 두고 남측 상방 앞으로 한 칸 반을 달아내어 맞배지붕을 올려 광(倉庫)을 드렸다. 안방과 부엌 뒤 동측으로는 각각 한 칸씩 늘여 부섭지붕(눈썹지붕)을 달아 안방 공간을 확장시켰다. 특히, 안채 대청에는 요즈음 보기 힘든 제작년도 미상의 오래된 성주단지(성주의 신체(身體)로 여겨 집안에 모셔 두는 단지)가 온전히 보존돼 있다.

     

    방의 상부(上部)는 고미다락으로 만들고 광과 부엌 아궁이 칸도 위에 고미반자를 얹어 공간 활용을 극대화시켰다. 이 뿐만 아니라 안방 문 위와 사랑채 마루 위, 대청마루 앞과 뒤, 처마아래 곳곳에 시렁과 선반을 만들었다. 특히, 방의 상부에 고미반자를 설치해서 이층의 공간을 만들었는데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고서적, 고문서, 목판 등의 유물을 보관했다. 이 유물을 주손 김종국씨는 2004년 소수박물관에 기증했다. 당시 기증한 유물의 양이 1톤 트럭으로 세 대 분량이었다.

     

    성학십도 판목 (사진. 문화재청)

     

     

    그 엄청난 양의 기증품 중에는 보물급으로 평가받고 있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17호 ‘성학십도 판목’이 있다. 이 성학십도(聖學十圖) 판목(版木)은 영주시 이산서원(伊山書院)에서 소장하던 5매의 판목(앞뒤 10판)으로 대원군 때 서원이 훼철되자 서원을 관리하던 문중이 돌아가며 관리하다가 형편이 여의치 않자 최종적으로 연암김씨 괴헌고택에서 오랜 기간 관리해 왔다. 성학십도는 퇴계 이황이 68세 때 평생의 학문을 정리하여 새로 등극한 어린 선조에게 지어올린 것이다.

     

    성학십도 본래의 명칭은 진성학십도차병도(進聖學十圖箚幷圖)로서 퇴계문집 내집과 퇴계전서에 수록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진(進)·차(箚)·병(幷) 글자를 생략하고 성학십도로 불려진다. 그 내용은 새로 등극한 17세의 어린 선조 임금에게 성학(聖學)의 요체(要諦)를 밝혀 성군(聖君)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頥), 횡거(橫渠) 장재(張載), 회암(晦菴) 주희(朱熹)등 저명한 유가(儒家)의 제설(諸說)중에서 중요한 것을 택하여 도판(圖版)과 해설을 붙인 것이다.

     

    성학십도의 구성은 1장 태극도(太極圖), 2장 서명도(西銘圖), 3장 소학도(小學圖), 4장 대학도(大學圖), 5장 백록동규도(白鹿洞規圖), 6장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 7장 인설도(仁說圖), 8장 심학도(心學圖), 9장 경재잠(敬齋箴), 10장 숙흥야매잠도(夙興夜寐箴圖)로 되어있다. 성학십도는 병풍용과 서적용의 두 종류로 판각되었는데 이 성학십도 판목은 임진왜란 이전에 영주에서 판각하였다가 산실(散失)된 후 1750년 전후에 다시 판각한 병풍용 판목으로 추정되고 있다.

     

     괴헌고택 사랑채 마루방 내부 (사진. 문화재청)

    괴헌고택 사랑채 상부 (사진. 안경애)

     

    이외 괴헌고택 기증유물로는 괴헌 김영의 문집(文集)인 괴헌집(槐軒集)이 있고 괴헌고택에서 퇴계 이황,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 등과 교류한 서찰(書札)인 간찰첩(簡札帖) 12권이 있다. 이 간찰첩은 조선후기 영남지역 학자들의 서신(書信) 왕래를 엿볼 수 있는 학술적으로도 매우 귀중한 자료들이다. 이 밖에도 2004년 소수박물관에 기증한 유물로 고서적 1,700여 권, 고문서 8,000여 점 등이 있다. 또 민속품으로는 대형 갓, 가마, 어사화, 관복, 호패 등을 기증했다.

     

    괴헌가(槐軒家)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술과 음식이 있다. 배꽃이 필 때 담근다 해서 이화주라 불리는 술은 봄에 찹쌀과 멥쌀만으로 누룩을 빚어 발효시킨 후 가을에 먹는데 원액에 물을 타서 마신다. 여기에 꿀을 첨가하기도 한다. 특히 이 술은 몇 년을 묵혀도 본래의 맛이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음식은 쇠고기를 곱게 다져 졸인 육말, 대구포를 뜯어 보슬보슬 무쳐낸 보푸람, 칼등으로 곱게 다진 잣을 넣어 뽀얗게 우려낸 국물에 계란을 통째 익혀서 띄우는 수란이 있다. 

     

     서원십영도 (사진. 문화재청)

     

    예전 영주문화를 연구하는 단체에서 괴헌고택을 방문했었다. 두루마기를 갖춰 입은 주손 김종국 어르신은 안채 대청마루에서 괴헌가의 내력을 설명하던 중 몸을 돌려 안방 문 위 액자 서원십영도(書院十詠圖)를 가리키며 “저 액자 뒤에 출입문이 있는데 저 곳이 비밀 피난처 다락방입니다. 해방직후 좌우익이 대립하던 시절 좌익, 우익 가리지 않고 위급한 사람을 저기에 숨겨줬고 일제 때는 독립투사들도 여럿 숨어있던 곳이지요. 그 당시에는 큰 삿갓으로 가려놓았었지요”라고 하셨다.

     

    현재 괴헌고택은 흔적과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4대강사업의 일환인 영주댐 건설로 큰비가 내리면 수몰될 수 있다하여 괴헌고택을 비롯해 덕산고택, 장석우 가옥 등 지정 문화재 열다섯 곳이 새로 조성된 문화재단지(영주시 평은면 금광리 381)로 이건(移建)중이다. 우리전통주택은 제 위치에 있을 때 가치를 갖는다. 풍수와 풍광을 고려해 터를 잡아 집을 짓기 때문이다. 괴헌고택은 낙엽이 쌓여 재물이 모인다는 소쿠리형 명당 터 금빛모래 반짝이는 내성천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자리했었다. 

     

     

     

     

     

  • 안경애 글쓴이 : 안경애 영주에서 다양한 문화활동에 힘쓰고 있다.
 
코멘트 영역
글에 대한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