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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이 있는 풍경]가문의 위상과 성리학적 이념이 머무는 공간, 함포재사
    컬처라인 | 2020-04-20 프린트 퍼가기
  •  

     

    이야기가 있는 문화탐방

     

    가문의 위상과 성리학적 이념이 머무는 공간, 함포재사 

     

    글. 황지해(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유교의 효는 조상과 후손이 연속성을 갖는다는 믿음에 기반하여 조상숭배를 위한 건축을 만들어냈다. 종묘, 가묘, 재실 등의 유교건축물이 그것이다. 마치 조선왕조가 종묘라는 최고의 제례시설로 새로운 유교적 통치이념의 구심점으로 삼았듯이 문중에서는 재실을 통해 조상숭배를 실천하고, 향촌사회에서의 위상을 드러내고자 했다. 재실은 조상제례의 지속으로 오늘날 가장 활발하게 이용되는 유교건축물이면서도 꾸준히 건립되고 있기에 미래적 가치가 주목된다.   

     

     

     

    안동 권씨 제곡 문중과 함포재사

    조선은 성리학을 기본이념으로 삼고 조상제사를 효(孝)의 연장으로 보았다. 이에 4대 조상까지 모시는 사당(祠堂)을 종가(宗家) 내에 설치하고, 토착성씨의 시조나 입향조부터 5대 조상까지의 제를 지내기 위해 시조묘 근처에 재실(齋室)을 건립하였다. 안동, 예천, 봉화, 영주지역 등에 유독 많은 수의 재실이 세워진 것도 수많은 토착성씨들이 일찍이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이 지역이 조선조 성리학의 본향(本鄕)이 되면서 토성들은 전국적인 유력가문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입향조 뿐만 아니라 점차 중시조(中始祖), 또는 파시조(派始祖)까지 위선(爲先)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안동 권씨 제곡 입향조인 야옹 권의(野翁 權檥, 1475-1558), 심언(審言, 1502~1574), 시(時,1552~1612), 욱(旭, 1556~1612), 담(曇, 1558~1631) 등 3대의 묘소를 수호하고 제를 지내기 위한 재실 함포재사가 예천 용문면 맛질길(제곡)에 건립되었다. 건립시기는 망와(望瓦)의 명문에 나타난 건륭(乾隆)37년 임진년(1772)을 전후한 시기 또는 연구자에 따라 더 이른 시기인 1567년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층집 누(樓)재실로서 함포재사의 품격과 위상

    안동, 예천을 비롯한 인근지역은 한국 유교문화의 산실답게 재실건축이 잘 발달되어 있다. 큰 규모는 물론 누각과 함께 전개되는 건축적 구성은 다른 지방 재실과 크게 구별된다. 이들 지역에서 묘제를 위한 재실을 각별히 ‘재사(齋舍)’라 명명하는 이유도 ‘재실’에 비해 규모가 크고 고급스럽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함포재사도 ‘재실’이 아닌 ‘재사’라 명명하였으니 규모가 크고 고급스러운 건축양식을 지녔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함포재사의 전반적인 건축모습은 몸채와 부속채 등이 중앙의 마당을 중심으로 연결된 폐쇄적인 ‘ㅁ’자형이다. 이는 이 지역 상류주택의 건축공간 구성방법과 매우 흡사하다. 타 지역에 비해 유교적 사회윤리와 가치관을 가진 안동문화권의 건축 내용과 형식이 잘 반영된 결과이다. 특히 재실은 제례를 위한 엄숙한 공간이자 가문의 사적인 공간이기에 폐쇄적인 공간 구성을 이루게 되었다. 

    재사건물은 '一'자형 평면(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팔작지붕 기와집이며, 서재는 '一'자형 평면(정면 4칸, 측면 1칸)이다. 누각은 2층(정면 4칸, 측면 1칸)으로 되어 있는데, 아래층은 높은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아래층에서 위층까지 1개의 부재로 된 둥근 통재기둥을 세웠다. 이 밖에 2칸 규모의 대문채가 자리하고 있다.  

     

    이와 같은 함포재사의 건축구성은 안동문화권에서 보이는 누재실 건축의 원칙을 잘 따르고 있다. 특히 대지의 높고 낮은 차이와 기단의 높낮이를 이용하여 전면의 누가 후면보다 높지 않도록 계획하였고, 이로써 ‘ㅁ’자 마당의 폐쇄적 공간감을 경감시키는 지혜가 돋보인다.

     

    17세기 중반 이후로 전국적으로 재실건립이 확산되는데 재실 중에서도 누재실은 문중의 경제적 여건과 사회적 위상이 동시에 확보되어야 가능한 건축이므로 조선후기 사대부가에서 선호된 재실건축 양식이었다. 안동지역에서 재실에 누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기는 17세기 후반이며, 이 시기에는 향촌사회에서 가문의 지위를 확고히 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었다. 누(樓)가 강당으로서의 공간적 기능은 물론 의장적인 측면에서도 완결성을 가지고 있는 형태이므로 문중의 경제력과 세력기반, 위선사업(爲先事業)을 통한 결집력을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경향을 두고 보면 함포재사가 누재실로서 지니는 특이한 공간감과 품격, 그리고 위상은 곧 안동권씨 제곡 문중의 품격이자 위상을 반영하였을 것이라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함포재사 공간기능의 효율성과 위계성

    유교건축의 아름다움은 절제된 단순미로 꾸밈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그 어느 건축보다도 ‘질서’가 조영의 기본개념으로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엄격한 유교적 제례절차와도 같이 격에 따라 위계성을 지닌 질서체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재실에도 질서의 미가 나타나는데 바로 축선사용과 균형을 통해서이다. 함포재사 역시 공간의 효율성과 위계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주요건물인 재사와 누를 1축선 상에 배치하고, 서재와 문간채를 정대칭으로 배치함으로써 정적이고 장중한 유교적 분위기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 그러하다. 동시에 묘제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데에 동선을 고려하여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하였다.

     

    대문채에서 재사와 서재 뒤편으로 토담을 둘렀고, 누각 왼쪽 전면의 협문을 사이에 두고 관리사가 자리하고 있다. 재사 왼쪽 뒤로는 묘소로 통하는 협문이 있다. 일상출입구-대문채-서재-대청-누마루-의례용 출입구로 배치함으로써 건물 내의 의례 동선을 나갈 때와 들어올 때의 입구를 달리하여 동선의 효율성뿐만 아니라 위계성도 반영하였음을 보여준다.  

     

    묘제(墓祭), 재실건축의 필수 프로그램

    지역에 따라 재사, 재각 등으로 불리는 재실은 묘제를 위한 제수를 장만하고 제례절차를 논의하며 멀리에서 온 참배객의 숙박공간은 물론, 평소 문중의 모임이나 서재와 같은 강학기능도 담당한다. 그러나 재실은 묘제를 위한 용도로 건립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묘제가 지속되는 한 재실건축의 존속은 보장된다고 볼 수 있으며, 이를 바꾸어 말하면 재실 건축이 담아야할 절대적인 프로그램이 바로 묘제라 할 수 있다.

     

    순수하게 묘제의 기능을 위해 지어진 함포재사의 공간기능은 크게 제사준비를 위한 의례공간, 참제인들의 숙식공간, 제사용품의 수장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례적 공간의 중심은 대청마루와 누마루이다. 대청에서는 유사의 주관 아래 상차림을 하고 원로들의 실무적인 회의가 열린다. 누마루는 음복례나 비올 때 묘제를 대신 치르는 장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또한 종손을 중심으로 한 문중교류의 장소이며 밤에는 참제인의 숙박장소로도 쓰이는 다양한 기능을 담은 공간이다. 제사용 수장공간으로는 대문채를 통해 상차림에 필요한 제수와 제기를 보관한다. 

     

    이처럼 함포재사는 묘제의 절차와 행위를 수용할 수 있는 기능적 조건을 갖춘 동시에 향촌사회에서 가문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성리학적 이념을 실천하는 구심적 기능을 담당했다. 과거에만 머물지 않고 묘제를 통해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이 공존하며 안동 권씨 제곡 문중의 결집력을 공고히 하는 구심점의 하나이기도 한 함포재사, 재실건립의 역사만큼 여러 차례 보수를 거듭하였음에도 문화재(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55호)로 지정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올해 7월에 한국의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접하던 때, 향교와 재실, 종가 건축이 동시에 뇌리를 스쳐갔다. 서원의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상대적으로 관심이 미미했던 유교건축물의 살아있는 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주목받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 컬처라인 문화메신저 글쓴이 : 컬처라인 문화메신저 경상북도 북부권 11개 시군의 문화예술 관련 정보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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