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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이 있는 풍경]의성 단촌을 새롭게 보는 방법 단촌역에서 고운사까지 가는 길
    컬처라인 | 2020-06-01 프린트 퍼가기
  •  

     

    의성을 가다

     

     

    의성 단촌을 새롭게 보는 방법

    단촌역에서 고운사까지 가는 길

     

     

    글 이미홍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 단촌역

    단촌은 붉은 돌이 많아서 단촌이다. 1940년에 중앙선이 개통하면서 단촌역이 들어섰다. 단촌은 마을과 시장이 있고, 대구와 부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이 들어서기 좋은 위치에 자리했다는 건 그만큼 교통이 편리하단 이야기이기도 하다. 단촌은 마을의 중앙을 중앙선이 통과하는데 이어 거제∼중강진간의 5번국도가 남북으로 통과하며, 동부에는 단촌∼망호간, 단촌∼점곡간의 군도가 나 있으며, 현재는 상주~영덕간 고속도로 북의성IC가 위치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1940년 중앙선 개통 초기에는 일반 기차역으로 출발하였지만, 2007년 화물량 감소로 화물 수송을 중지한 데 이어 승객수가 현저하게 줄어들면서 2008년 12월 1일을 기점으로 여객 이용마저 중지되어 지금은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이 되었다. 

     

    단촌역사

     

    10월의 한갓진 주말에 찾은 단촌역에는 깔끔하게 단장한 사람들이 모여서 시를 읽고 있었다. 마침 단촌역사에 들어서는 입구에는 짙은 갈색의 나무판에 ‘단촌역’이라는 시가 간이역을 찾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단촌면 김해영 부면장님의 말에 따르면 매년 10월 첫째 주나 둘째 주 주말쯤 의성의 배롱나무주부독서회 사람들을 중심으로 김용락 시인의 시가 있는 이곳 단촌역사 마당에서 책 낭독도 하고 시낭송회도 가진다고 했다. 역사 뒤로 돌아들어가서 창문 너머로 역사 안을 들여다보니 깨끗이 청소된 공간에 덮개를 채 벗기지 않은 새 소파며 책상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면사무소에 들러 만난 부면장님은 조금 있으면 증기기관차 모형도 들여오고 또 의성군에서는 단촌역을 카페 겸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하신다.

     

    단촌 간이역을 지나는 철길

      

    철로로 나가는 개찰구의 흔적을 보니 김용락 시인이 쓴 ‘단촌역’ 시 속으로 들어간 듯, 아침마다 역무원 마주사가 끊어준 기차표를 들고 역사를 급히 나가곤 했을 교복 입은 까까머리 학생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나물 팔러 장에 가는 아주머니도, 아들네 보러 서울 가던 할배도, 큰일에 참석하러 두루마기와 한복을 차려입고 나섰을 어르신들도 어김없이 이 개찰구 앞을, 개찰구를 지키던 마주사를 거쳐 갔을 터이다. 단촌사람 김용락은 시 속에서 안동 50리길을 중학교 3년 내내 기차통학 하면서 단촌역의 역장님 이름은 기억하진 못했지만, 단촌역 회색빛 뒤편 변소 입구의 측백나무와 다리를 약간 저는, 표찰기로 꼼꼼히 기차표를 끊어주던 마주사는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시인의 기억 속 단촌역에는 대구로 고등학교 유학을 하던 시절 일요일 저녁이면 대구로 가는 기차를 타러 가는 아들을 배웅하고 돌아서서 점점이 멀어져가던 어머니의 뒷모습도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대구로 유학 나와/

      일요일 저녁이면 쌀자루 둘러메고/

      멸치조림 봉지 옆 허리에 꿰차고 대합실을 나설 때/

      점점이 멀어저 가던 어머니의 아련한 뒷모습/’           

     

    - 김용락의 ‘단촌역’ 중 일부

     

     

     

     

    단촌장터와 삼미통닭집 할머니

    장터가 있는 하화2리는 중앙선이 개통되고 단촌역사가 들어서면서 통운관리인 손기한씨가 정착하여 독가촌으로 이어오다가 1947년 이곳에 시장이 개설되면서 마을이 형성되고, 1953년에 세촌리에 있던 면사무소가 이전해오면서 세촌리와 더불어 단촌면의 중심지가 되었다. 5일과 10일에 장이 서는 단촌장은 마늘도 많이 거래했지만 일찍부터 고추장터로 유명했다. 단촌 고추하면 지금도 알아주지만 농협 공판장이 생기고 의성 읍내 장을 찾는 장사꾼들이 많다보니 예전만 못하다. 그래도 고추를 수확하기 시작하는 즈음부터 여름 추수가 끝나고 추석 무렵까지 장날이 되면 비록 소규모이나 여전히 아침 일찍 고추장이 선다. 장날이라고 해도 예전처럼 따로 고추장이 서지는 않는다고 하니 이제 흥성했던 단촌 고추장터 풍경을 다시 보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장터에는 여전히 장날 인심이 살아있고, 장날이면 요즘도 시골할머니들이 가을걷이한 농산물들을 들고 와 앉아 팔고 또 오랜만에 만난 이웃, 그리고 한 잔 술과 먹을거리가 있다고 단촌 토박이 하화식당 주인아저씨는 말한다. 

     

     


    단촌 장터에는 유명한 통닭집도 있다. 그 곳에 가면 꼭 한번쯤 들러보라고 사람들이 권했던 삼미통닭집이다. 오래전부터 단촌장을 찾는 장꾼들을 상대로 의성 마늘을 넣고 조린 닭을 팔아온 삼미통닭 주영자 할머니 가게다. 장날이 아닌 무싯날 갔는데도 앞에 두 팀이 좁은 삼미통닭집 안과 밖에서 주문한 통닭을 앉거나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차례가 되어 한 마리를 주문을 하고 할머니 사진을 한 장 찍어도 되겠느냐고 묻자,   

    “또 어디서 왔는데? 사진은 찍어 가가 뭐할라고?”

    그러면서 주방으로 들어가 버리신다.

    “어느 날 방송국인지 어딘지 누가 와서 먹어보고는 맛있다고 취재해 가더니 사람들이 몰려와. 유명해졌는동 어쨌는동 나는 모르는데 어떻게 알고 오는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와서는 시시만큼 시키고는 저들끼리 친절하니 어째니, 앉을 자리가 있니 없니 그래.” 

    퉁명스레 군 게 미안하셨는지 앞서 마늘통닭 두 마리를 시킨 손님들이 나가고 차례가 되어 주문한 통닭을 건네주면서 툭 던지듯이 해명삼아 한마디를 건네시는 할머니다.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다더니 할머니가 딱 그랬다. 언제 부턴가 삼미통닭을 찾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더니 그 수가 늘어만 갔다.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던 탓이지만 할머니로서는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평생 장터에서 의성마늘을 넣은 조림통닭을 팔면서 살아왔던 할머니는 촌동네 장터에 갑자기 몰려오는 손님들도 이상했고 좁은 가게에 들이닥쳐 주문하는 손님들 때문에 더운 불앞에서 마늘통닭을 쉼 없이 만들어내야 하는 것도 버거운데 이것저것 묻는 손님들 때문에 정신이 사나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삼미통닭집에는 할머니와 손님들 간에 보이지 않는 룰이 생겼다. 전화주문은 되도록 받지 않는다. 통닭이 먹고 싶으면 직접 찾아와야 한다. 와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과 전화로 주문한 사람들과의 순서 다툼할 필요 없이 가게 안에 들어온 순서대로 주문을 받는다. 그리고 메뉴는 마늘통닭 한 가지로 통일이다. 단 할머니가 가게 안에 안계시면 식탁 위에 써놓은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면 된다. 시간과 마리 수에 상관없이 주문받은 순서대로 통닭을 만들어준다. 그마저 입소문을 탔는지 지켜보자니 손님들도 직접 찾아와 주문을 하고 군말 없이 기다렸다가 통닭을 받아간다. 아마도 이것이 무뚝뚝한 경상도 장터 통닭집 할머니가 정신 사납지 않게 나름대로 할머니의 속도를 지키면서 장사를 계속해가기 위해 생각해내신 방법이 아닌가 싶다.  

     

    삼미통닭이 유명해지면서 지금은 일손도 한 사람 더 보태졌고 가게 간판에 할머니 이름을 따서 주영자 통닭이라고 적은 바람에 일렁이는 입간판이 하나 더 세워졌다. 그러나 오래된 이름인 삼미통닭을 찾는 이들이 여전히 많아 간판이 두 개가 되었다. 이래 찾아오나 저래 찾아오나 단촌장터에 들어서면 한눈에 들어오는 통닭집이 할머니네 집이라고 보면 된다. 바람길을 만드시듯 통닭을 내어줄 때면 한결같이 뚜껑 한쪽을 연채로 포장을 해서 들려주시는 할머니다. 그렇게 받아온 할머니표 마늘통닭은 정말 맛이 있어서 앉은 자리에서 먹어치우고 다음날 고운사 단풍 사진 때문에 다시 갔다가 나오면서 더 먼 길임에도 장터가 있는 읍내로 돌아 할머니집에 들러 마늘통닭 한 마리를 또 안고 왔다.   

     


     미천둘레길

     

    단촌을 물길 따라 걷는 미천 둘레길

    미천은 옥산면·점곡면·단촌면을 관류해 단촌면 세촌리와 안동시 일직면, 남후면을 거쳐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하천으로 옥산, 점곡, 단촌 3개 면의 관개용수가 되고 있다. 단촌면을 동서로 관류하는 미천을 따라 넓고 비옥한 평야가 펼쳐지며 예부터 벼농사를 비롯해 사과와 고추 산지로 유명하며 미천을 따라 마을들을 끼고 트래킹 코스길이 만들어져 있다. 다듬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물길 따라 들길 따라 단촌을 찾아가는 새로운 둘레길이다. 미천변 트래킹 코스는 세촌리 세촌교에서 시작해서 미천을 따라 가며 종점인 송내교까지 9㎞가 이어진다. 단촌면 세촌교-농협 단촌지점-단촌장터, 단촌면사무소-대진교-굴다리-북촌교-목촌교-용굴(용문소나무숲쉼터)-후평교-농내교-송내교(9.0㎞)까지 길이다. 관덕교를 건너 관덕리로 들어가 삼층석탑을 보고 마을을 돌아나와서 다시 미천을 끼고 종점까지 걷는 것이 미천둘레길을 즐기는 첫 번째 방법이다. 또 하나는 후평교를 지나면서 미천을 따라 가지 않고 곧장 사익재가 있는 후평리 마을을 지나 구계리로 넘어가 최치원문학관과 고운사로 가는 방법도 있다. 길을 걸으며 마을로도 갔다가 들로도 들어갔다 나왔다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둘레길의 매력중의 하나다. 관덕리 삼층석탑을 보기 위해 미천을 건너 잠시 관덕리에 들어갔다 나오기로 한다.  

     

     

    관덕리 느티나무

     

     

    관덕리 삼층석탑과 가을 사과

    관덕리 삼층석탑을 찾아가려면 미천둘레길을 따라 올라가다 목천교를 건너는 방법과 자동차로 단촌 읍내에서 굴다리를 지나가다가 큰 길을 버리고 왼쪽 강둑길로 올라서 목천교를 건너는 방법이 있다. 미천 둘레길 표시가 있는 강둑길과 목천교가 만나는 지점에서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서니, 마을 앞 느티나무가 차가워진 가을바람을 맞으며 서 있고 바로 앞 과수원에서는 붉게 익은 사과를 따는 손길이 분주하다. 석탑으로 가는 길을 묻자 길을 가르쳐 주시며 알이 굵은 잘 익은 사과를 따서 과수원 철책 너머로 건네신다. 사과 따는 모습을 찍고 싶다고 하니 “이런 건 찍어 뭐 하게, 찍고 싶으면 찍어.” 하시며 돌아올 때 시간되면 섰다 가라 하신다. 그리곤 무심히 사다리에 올라 부지런히 사과를 바구니 안에 따 넣는다. 무심한 말투와 손끝에서 우리네 어머니들의 무던한 정이 묻어난다. 

     

    과수원을 지나 동네 안으로 돌아드는데 문득 담벼락이 눈길을 끈다. 작은 돌과 자갈들이 기다란 하얀 담장을 따라 점점이 박혀 있는 것이 골목안 사람들의 손길을 느낄 수 있게 해 소담하면서도 정겹다. 그 담벼락길이 끝나는 곳에서 왼쪽으로 꺾어들어 외길을 따라 얼마쯤 올라가니 현대식 절이 하나 보이고 그리고 관덕리삼층석탑을 가리키는 안내판이 나오는데 그 앞에 옛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낡은 재사(齋舍)가 무심히 서 있다. 추녀 아래 현판의 글씨는 아직도 선명한 데 마루와 서까래는 낡아 삐그덕 거리며 지나가는 길손을 지켜본다. 절을 지나 선비를 추모하던 재사가 있고 그리고 그 재사 뒤로 돌아드는 곳에 삼층석탑과 석조불상이 있다. 일찍이 불교가 흥성한 이래 유교가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절이 있던 자리에 정자나 재사가 들어서는 경우가 많았다. 관덕리 깊은 골짜기 안에서 세월 속에 변하고 흘러가며 삼층석탑과 공존하던 목재로 지은 재사는 이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몸채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돌탑은 천년 세월을 견디고도 거뜬히 그 자리를 지키고 섰다. 

     

    관덕리 삼층석탑

    관덕리 재사


    보물 제188호인 관덕리 삼층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몸돌을 올린, 전체적으로 소박하면서도 각 부분의 장식이 아름다운 통일신라시대 하대의 석탑이다. 같은 신라시대라도 앞선 시기의 탑이 웅대한 기상이 있다면 탑의 각 부에 많은 부조상을 조각한 신라 하대의 탑들은 조형미가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원래 상층기단 윗면 네 귀퉁이에 암수 두 마리씩 돌사자 네 마리가 있었던 것이 일제 강점기에 찍은 사진에 보이는데,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어 오던 잘생긴 두 마리는 1940년 도난당하고, 훼손되어 남아있던 두 마리는 국립대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마모되고 닳아 훼손이 된 덕분(?)에 도난당하지 않고 보물 202호로 귀하신 몸이 된 것은 좋으나, 깊은 골짜기 자연 속에서 우주만물과 소통하던 돌사자들은 인연 모를 곳에 갇혀 지내게 되었다. 귀해지면 가까이 만나기 어려운 것은 사람이나 석상이나 매한가지인 듯하다.

    동네 어른들 말에 따르면 옛날에 이 골짜기에 "사운사(思雲寺)"라고 불리는 큰절이 있었다고 한다. 절이 폐사되고 오랫동안 방치되어 한때 불상의 머리를 도난당했다가 찾아왔다고 한다. 삼층석탑과 함께 그야말로 유구한 세월을 함께 자리를 지켜온 관덕리 석조보살좌상은 비와 바람과 햇볕과 시간 속에서 마모되어 석탑 뒤에 전각을 지어 고이 모셔 놓았는데, 석조보살좌상을 모셔 둔 전각에는 깊은 산 속 홀로 모셔 둔 보살상을 보호하느라 자물쇠가 굳게 채워져 있다. 닳아가는 것도 서러울진대 전각 속에서 누구와도 온기를 나눌 수도, 만날 수도 없이 그저 거기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존재의 의미를 증명하고 있는 것 같다.   

     

    고목이 지키고 서 있는 후평리 사익재

     

    사익재를 품은 후평리 길

    관덕리를 다시 돌아 나와 미천을 건너 후평리로 길을 잡아들었다. 그 길이 최치원문학관과 고운사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고운사로 그냥 넘어가기가 아쉬워 마을 안쪽에 큰 느티나무가 지키고 선 후평리 버스정류장에 잠시 차를 세웠다. 느티나무가 마을 앞을 지키고 뒤로는 나트막한 산이 동네집들을 둘러 감싸고 있는 것이 안온하기 그지없다 싶은데 사익재 안내판이 눈에 들어와 골목을 따라 들어가 보았다. 넓게 두른 담벼락을 따라 가니 유장한 고목 두 그루가 사익재를 지키고 서 있다. 집은 비어있고 곳곳에 낀 세월의 때가 느껴지는데 이제 수리를 하는 참인지 무너진 안쪽 담장을 새로 세우고 쪽문을 새로 단 흔적이 보인다. 

    사익재는 조선후기에 건립한 주택으로 일제강점기 때인 1932년 김동주가 매입했고. 1995년 화재로 안채가 소실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조선후기 주거사 및 건축사 연구에 좋은 자료로 판단되어 2013년 의성군 문화유산 제9호로 지정되었다. 사익재 이웃집 할머니 말에 따르면, 내력이 있는 집인데 사익재를 관리하던 어른들이 돌아가시고 한참을 그냥 비워두다가 집이 팔렸다는 소리가 들리더니 요즘엔 사람들이 드나들며 집을 새로 고친다고 한다. 집이 앉은 자리며 집을 지키는 나무의 기상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사익재는 이대로 스러지지 않고 다시 기둥을 받치고 집의 생명을 이어갈 준비를 한다. 사람은 바뀌어도 집은 그렇게 또 새 손길이 더해져 온기를 머금는 중이다. 다음해 봄 새순이 돋을 때쯤 다시 가서 사익재에 든 새 주인에게 차 한 잔을 청하고 싶다.  

     

    최치원문학관

     

    고운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최치원문학관

    점곡 사촌마을로 가는 길에서 벗어나 왼쪽 산등성이로 후평교회를 끼고 돌아 고개를 넘으면 구계리로 넘어간다. 옛길의 흔적이 남은 이끼 낀 구계교를 건너 고운사 가는 길을 타고 올라가니 얼마 안가 가을햇살이 내려앉은 공원이 보이는가 싶더니 새로 지은 집 냄새가 배어나오는 한옥 건물이 산등성이를 뒤로 길고 널찍하게 자리를 잡고 섰다. 최치원문학관이다. 다행히 올 연말 정식 개관을 앞두고 임시개방을 하고 있어서 문학관 내부를 둘러볼 수 있었다. 아직 내부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라 손길들이 분주했지만 맘먹고 나선 길이라 전시관에 들러 고운사와도 인연이 깊은 신라 시대 문장가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선생의 문학과 인생을 잠시 엿본다. 마침 인연이 있는 직원이 상주하고 있어 교육과 강의가 진행될 교육관과 하룻밤 묵으면서 강의도 듣고 체험과 더불어 힐링도 할 수 있는 연수관 내부도 보았으니 고맙기 그지없다. 문학관 앞에 조성된 고운사 문화공원에서 유교·불교의 공간과 길을 햇살과 바람과 함께 천천히 걸어본다. 유교와 불교를 나란히 그려놓았지만 이곳은 고운사로 통하는 길목, 주인공은 아무래도 의상대사로부터 시작해서 이곳에 화엄경을 전파한 법통을 새겨놓은 법계도림과 그 모습을 따라 땅위에 꽃과 나무를 심어 비로자나불 부처를 만나러 가도록 만든 길이 아닌가 싶다.

     

    고운사로 가는 길목의 노란 은행나무길

     

    최치원문학관을 뒤로 하고 은행나무들이 노랗게 곧게 뻗은 길을 지나면 등운산고운사라 쓰인 문이 나온다. 고운사의 단풍을 제대로 즐기려면 차를 두고 여기서부터는 걸어올라 가는 것이 좋다. 일제강점기에 세운 보안림표지석이 세워진 입구를 지나 곱게 물든 단풍과 크고 작은 나무들이 잘 어우러진 호젓한 숲길을 따라 올라가노라면 단풍도 단풍이려니와 구비진 길 따라 고운사의 내력을 알려주는 최치원과 선승들의 흔적도 만날 수 있다. 호젓한 길 끝에 넓은 터가 보이면  승려들이 화엄경을 공부하는 도량인 화엄승가대학이 있고 그리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걸어가노라면 고운사 일주문 앞이다. 불교신자가 아니어도 그 문을 넘어 들어서는 순간 저절로 경건해지게 만드는 문이 일주문이 아닐까 한다.  

     

    고운사 일주문

    고운사 가운루


    고운사(孤雲寺) 경내에 들어서면서 일주문을 지나 제일 먼저 만나는 전각 가운루는 나한전과 함께 최치원이 여지, 여사 두 대사와 세웠다는데 고운사 제일 앞자리에서 숱한 발길들을 맞고 보내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제일 먼저 계절을 맞고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단풍 사이로 고아한 자취를 드러내는 가운루 마루를 조심스럽게 오르면 오래 전 고운사를 찍은 흑백사진들이 부침을 견디며 명맥을 이어온 고운사의 어제와 오늘을 이야기해 준다.     

    단정한 맵시를 자랑하는 고운사 삼층석탑, 신라 말 선각국사가 조성한 석가여래좌상, 염라10왕이 모셔져 있는 명부전 등이 있다.

     

    고운사 나한전

     

    신라 신문왕 때인 681년에 창건된 고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로 의성, 안동, 영주, 봉화, 영양 등에 산재한 60여 대소 사찰을 관장하는 큰 절이다. 새로 중수한 건물과 오래된 건축물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부산스럽지 않고 조용하다. 대웅보전이 마주하고 선 오른쪽 숲 언덕길을 찾아 들어가면 오래전 고운사의 흔적을 오롯이 간직한 채 묵묵히 서 있는 삼층석탑과 원래의 나한전을 만날 수 있다. 가을이 내려앉은 고운사 경내를 돌아 나오는데 일주문 직전 속세로 나가는 인도교 앞에 동네 할머니 한 분이 앉아 쪄서 말린 고추며, 가을대추, 도라지, 나물들을 팔고 계셨다. 아랫동네에 사신다는 데 가을 한 철 날씨가 좋으면 수확한 농산물을 들고 나와 판다고 하신다. 고운사 절에 다니는데 스님들이 가타부타 탓하지 않고 봐주시는 모양이다. 엄마 생각이 나서 쪄서 말린 고추를 팔아드리고 싶었지만 입구에 차를 두고 와 빈 주머니라 죄송하다고 하니 괜찮다고, 본인은 해 빠지기 전에 내려갈 참인데 어디까지 가는지 탈 없이 잘 가라고 하신다. 빛은 고와도 바람은 쌀쌀해져 가는데 고운사를 나서는 길이 아련하면서도 따뜻하다.    

     

    계절이 깊어가는 고운사 골짜기

     

     

     

     

       

     

  • 컬처라인 문화메신저 글쓴이 : 컬처라인 문화메신저 경상북도 북부권 11개 시군의 문화예술 관련 정보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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