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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송 세계지질공원 훑어보기]절골, 그 깊고 아득한
    컬처라인 | 2020-06-15 프린트 퍼가기
  •  

     

    청송세계지질공원 훑어보기

     

     

    절골, 그 깊고 아득한

     

    글. 박월수

     

     

     

    어떤 만남은 실제보다 소문으로 더 진하게 기억된다. 절골은 내게 그런 곳이었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지만 언젠간 꼭 가 보아야 할 약속의 땅이었다. 다녀온 사람들 얘길 듣다 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고요가 살고 있을 것 같았다. 먼 데서 온 하늘이 편안하게 내려와 쉬는 곳이라 했다. 구름과 물이 한통속으로 껴안고 노니는 협곡이라고도 했다. 

     

    특히 오월의 절골은 하얀 쪽동백이 떨어져 눈처럼 길을 덮는다고 했다. 하얀 꽃잎이 물 위를 둥둥 떠가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사무치게 좋았다. 때죽나무꽃처럼 생긴 쪽동백이 눈처럼 떨어져 내린 골짜기를 떠올리며 오월이 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보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사는 일이 그리 녹록치 않아 그 꿈같은 풍경은 쉬이 만날 수 없었다. 

     

     

    구월의 절골은 둥근잎꿩의비름이 계곡을 환하게 밝힌다고 했다. 바위틈에서 자라는 키 낮은 식물이 분홍빛 자잘한 꽃등을 매달면 또 그렇게 예뻐서 눈을 뗄 수 없다고 했다. ‘둥근잎꿩의비름’ 가만히 그 이름을 읊조려 보면 몸이 동그랗게 오므라드는 것 같았다. 등이 따뜻해지다가 소름이 돋기도 했다. 어떻게든 구월엔 절골로 가야했다. 

     

    그렇듯 솔깃하고 황홀한 말을 들은 지 두 해가 지났다. 바람결만 달라져도 절골에 가고 싶어 몸살을 앓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시기를 딱 맞추어 가 본 적이 없다. 늘 좀 이르거나 늦어서 눈처럼 누운 쪽동백도, 계곡을 환하게 밝힌 둥근잎꿩의비름도 만나지 못했다. 누렇게 마른 꽃잎이 계곡을 덮은 걸 안타깝게 바라보았거나, 아직 꽃이 피기 전의 야생화를 애틋하게 만나고 왔을 뿐이다. 

     

     

     

    ‘그래’ 오늘 또 뜬금없이 절골을 향해 길을 나선 참이다. 가을 가운데서 절골을 향해가는 까닭은 아직까지 그곳 단풍을 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꽃보다 눈부시다는 그곳 단풍을 보고나면 쪽동백이나 둥근잎꿩의비름에 대한 미련도 좀 누그러지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하필이면 오늘이 일요일이다. 청운삼거리 초입부터 늘어선 차량 물결이 심상찮다. 옛날, 절이 있어 이름 붙여졌다는 절골을 향해 가는 내내 마음으로 절을 하는 심정이 된다. 

     

    청송사람 대부분이 드러내놓고 자랑하고 싶은 곳이 주왕산이라면 절골은 아무도 모르게 아껴가며 보고 싶은 곳이라고 했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주왕산을 지나면서부터 차량 물결이 표시 나게 줄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주변 경치가 눈에 들어온다. 주왕산면 천지가 붉은 사과밭이다. 길 가엔 사과를 파는 노전이 뜨문뜨문 보인다. 이른 가을사과 맛을 보기 위해 노전 앞에 차를 세운 이들도 더러 눈에 띈다. 나도 잠시 사과 향기나 맡을 겸 차에서 내려 쉬어 가기로 한다. 

     

     

    네 속에 든

    봄의 단비

    삼복 땡볕

    구월 달 부푸는 소리

    시월의 서릿발이

    너를 붉게 익혔다고

    말하지 마라

     

    푸른 골 농투성이

    너를 향한 손길 잦아질 때

    너는 

    단단하게 익어가는,

    새콤하게 물드는,

    푸진 꿀을 간직하는 쪽으로

    마음 굳혔음을

    사과나무는 안다

     

     <청송사과> 

     

     

    사과 향기 실컷 맡았으니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 주변 산이 온통 울긋불긋하니 가을의 절정에 들었음을 알겠다. 이렇듯 눈 시린 풍경 속을 오롯이 나 혼자 지나고 있음이 선물 같다. 주산지와 절골로 나뉘는 삼거리에서 방향을 결정짓지 못하고 허둥대는 차들의 무리를 본다. 이웃해 있으면서 똑같이 아름다운 명소를 두고 어디를 먼저 가야할지 헷갈리는 마음이 읽힌다. 

     

     

     

     

    절골 초입부터 밀려드는 차들로 길은 북새통이다. 한적함을 기대했던 마음에 잠시 파문이 인다. 유네스코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된 곳이란 걸 깜빡 잊었었다. 이곳에 오면 세상과 단절이라도 될 줄 알았던 착각에서 얼른 벗어난다. 길섶에 차를 두고 근처를 둘러보니 등산객들의 행렬이 단풍보다 더 곱다. 커다란 카메라를 옆에 낀 사람들도 제법 많이 눈에 띈다. 구름과 물을 벗 삼아 걷기에 좋은 곳이란 걸 나만 아는 게 아닌 모양이다.

     

     

     

    단풍 닮은 사람들 속에 스며들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다. 절골 주차장 바로 앞에 소박하게 나앉은 카페가 보인다. ‘바람 기억’이다. 카페 간판만 봐도 바람 냄새가 날 것 같은 그런 곳이다. 그림 그리는 여자가 이곳 주인이다. 커피와 라면과 부침개를 파는 카페 한쪽엔 그녀가 그린 정물과 누드도 주연처럼 버티고 있다. 그래서 여기서 마시는 커피는 눈으로 마신다. 손님이 없을 땐 이곳 토박이인 그녀가 들려주는 절골 얘기도 들을 수 있다. 

     

     

    탐방안내소에서 방문자명단에 기록을 하고 절골 입구로 들어선다. 훅 치고 들어오는 단풍 빛 사이로 농짝처럼 늘어선 협곡의 바위들이 방문객을 맞는다. 잠시 벌어졌던 입을 수습하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절골 초입에서는 늘 그렇듯 잘 생긴 바위들의 전시장을 보는 것 같다. 조금 더 나아가면 협곡 오른쪽 끄트머리 동그마한 바위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커다란 바위 위에 위태롭게 걸쳐진 그것은 어찌 보면 신의 보석함처럼 도도하다. 이곳 토박이들이 아주 어렸을 적에도 그 자리를 지켰다니 협곡의 불가사의가 아닐까 싶다. 

     

    단풍잎 떨어져 누운 물빛이 곱다. 한나절 앉아 쉬었으면 좋겠다. 너럭바위 어디쯤 퍼질러 앉아 물 보고, 구름 보고, 바람 보고, 단풍도 보고 그렇게 하루를 보냈으면 싶다. 나무데크에 서서 게을러지고 싶은 생각에 빠졌다 정신을 차리니 문득 배가 고프다. 단풍 빛은 사람을 허기지게 하는가 보다. 카메라 한 대와 달랑 물 한 병을 가져온 걸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바람기억’에서 부침개라도 한 장 먹고 올 걸 그랬다. 계곡 여기저기 도시락을 펼쳐놓고 제대로 된 소풍을 즐기는 이들이 부럽다. 

     

     

    골짜기 깊숙이 들수록 빛도 깊어진다. 십리가 훌쩍 넘는 협곡의 높이가 오십 미터가 더 된다니 빛이 오는 길이 보일 것만 같다. 계곡 초입, 신의 보석함 존재를 알고 있는 이곳 토박이는 어릴 적 이 깊은 협곡에서 회양목 베는 일을 했다고 한다. 가난하던 시절, 단단하기로 이름난 그 나무를 해다가 도장 파는 집에 가져다주면 돈을 쳐주었단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러 와서 다슬기를 잡고 물장구를 치며 놀던 어린아이를 떠올린다. 그때 아깝게 베어진 회양목은 얼마나 될까. 살림에 보탬이 되기는 했을까.

     

    허기가 든다는 건 식욕이 솟는단 말과 동일하다. 붉은 단풍 빛이 비어있는 위를 자극했으니 단풍을 눈으로 먹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더 가까이 식탐을 즐긴다. 식탐보다 먼저 지친 팔을 내려놓을 겸 카메라를 계곡 아래로 가져간다. 돌 웅덩이에 연한 흔들림이 전해진다. 바람 말고 무언가 살고 있다. 짐짓 무심한 척 살펴보니 투명한 물빛 사이로 더 투명한 버들치 무리가 놀고 있다. 손가락 하나 크기보다 작은 생명이 지나던 이들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만났으면 식재료로 느껴졌을 물고기가 이곳에선 우아하게 유영하는 관상어로만 보이니 신기할 따름이다.

     

    버들치 무리와 눈 맞추고 놀다보니 손차양 아래의 가을볕도 어느새 옅어졌다. 계곡 아래 푹 패인 곳, 억겁의 세월이 만져지는 하식동까지 보았으니 협곡의 뼈대는 본 셈이다. 눈으로 먹은 단풍만도 몇 끼니는 될 것 같다. 협곡의 끝부분에 해당하는 대문다리까지 가다 말고 그만 돌아선다. 주왕산 가메봉까지 등산을 하지 않는다면 어차피 돌아 나와야 하는 길이다. 내려가는 길에 ‘바람기억’에 앉아 그곳 커피나 눈으로 마시자. ‘바람기억’ 발코니에서 듣는 계곡의 바람소리는 남은 가을을 더 오래 기억되게 해 줄지도 모른다. 

     

     

     

    느럭느럭 

    계곡을 거닐면

    구름과 물이

    팔짱을 끼는 곳

    오월 쪽동백과

    바위틈 꽃불 밝히는

    둥근잎꿩의비름이 사는 곳

     

    먼데 하늘이

    협곡 사이로 내려와

    단풍 든 이마를 적시는

    아껴가며 보고 싶은 풍경

     

    세상에 없는 고요가

    궁금해지거든

    무언증 앓는 사람처럼

    주왕산 절골로 오라

     

    <절골, 그 깊고 아득한>

     

     

     

  • 박월수 글쓴이 : 박월수 청송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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