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 블로그

CL포커스

문화메신저

  • 쑤세미
  • 류명화
  • 남효선
  • 박장영
  • 유태근
  • 편해문
  • 컬처라인 문화메신저
  • 권혁만
  • 김상현
  • 컬처라인 문화메신저
  • 고성환(高性煥)
  • 컬처라인 문화메신저
  • 강병철
  • 박원양
  • 김상현
  • 안경애
  • 정창식
  • 안경애
  • 김범선
  • 박월수
  • 김상진
  • 오공환
  • 안종화
  • 임은혜
  • 황구하
  • 엄원식

지난연재

  • 김종우
  • 최혜란
  • 남정순
  • 이효걸
  • 혼다 히사시(本多寿)
  • 장호철
  • 송성일
  • 이종암
  • 김만동
  • 남효선
  • 남정순
  • 강병두
  • 엄순정
  • 허지은
  • 엄순정
  • 장호철
  • 안상학
  • 류준화
  • 김현주
  • 이선아
  • 송성일

문화포커스

>CL포커스>문화포커스

  • 게시판 상단
    [마을이 있는 풍경]의성에 공룡발자국을 보러 가다
    컬처라인 | 2020-07-28 프린트 퍼가기
  •  

     

    의성을 가다

     

     

    의성에 공룡발자국을 보러 가다

     

     

    글 이미홍

     

     

    의성에 공룡발자국을 보러갔다. 아이가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숙제를 한다고 다녀오기도 했던 것 같다. 아이가 크고 더 이상 공룡이름을 기억하지 않게 되면서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의성에 공룡발자국이 있는 걸 아느냐고 누군가 물었을 때, 가까이 있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모습이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들어서 아는 것이지 실은 잘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온 세상이 코로나로 막혀 답답하던 봄날 눈도장이라도 찍으리라는 마음으로 마스크를 쓰고 의성 금성면 제오리로 공룡발자국을 찾아 나섰다. 공룡발자국을 눈으로 확인하러 가는 김에 공룡발자국이며 화석암이며 그 지형적 특질들이 모여 빚어진 곳이라는 빙계계곡까지 돌아보고 오기로 하고 나서는 길, 바람이 길을 잡아 앞장을 섰다.  

     

    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천연기념물 제 373호)

     

    제오리에서 만난 공룡발자국 화석

    안동에서 대구방면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가다 의성읍에서 금성면 방면으로 길을 잡아 지방도를 따라가다 보면 왼편에 금성면 만천리로 들어서는 좁은 길이 나온다. 철길건널목을 지나 둔덕을 넘어서 가노라면 얼마 안 지나지 않아 금성면 권역에 들어섰다고 표지판이 알려준다. 갈림길에서 사곡으로 가는 왼쪽 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틀어 한 번 더 우회전을 하니 얼마 안가 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이 나타난다. 천연기념물 373호로 지정된 제오리공룡발자국화석이다. 중생대 백악기 초엽에 이곳 강가 뻘밭을 걷다가 남긴 발자국들이다. 아스팔트 포장길 옆 산비탈에 300여개의 공룡발자국이 새겨진 화석이 가로 세로로 길게 보호막이 덮인 채로 백악기부터의 1억년의 세월을 증거하며 거기 그렇게 서 있다. 저만치 차를 세우고 볼 때만 해도 그저 그런 화석인가 보다 싶었다. 그런데 가까이 가면서 보니 과연 공룡발자국 같은 자국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고, 나도 모르게 철책 난간에 한 발을 딛고 고개를 안으로 숙여 손이 닿을 듯 바싹 다가서니 커다란 공룡발자국들이 아래로 위로 옆으로 길게 흔적을 남기며 뛰놀던 흔적 그대로 찍혀 있었다. 발자국들이 빛에 따라 때로 선명하게 보이다가 희미해지기를 반복하며, 다시 빛 속에 드러나면서 그곳에 공룡들이 살았던 시절이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증강현실로 만난 백악기에 제오리에 살았던 공룡1

     

    시골 동네 길섶에 요란하지 않게 그저 언덕처럼 서 있는 제오리의 공룡발자국 화석은 그러나 알고 보면 일찍이 인간들이 존재하기 전부터 억겁의 세월 동안 존재하며 백악기 시대를 살았던 존재들이다. 공룡화석 옆에 세워진 안내표지판을 그냥 지나치면 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을 반만 본 것이다. 표지판 아래를 보면 증강현실을 통해 제오리화석에 발자국을 남긴 그 당시 이곳에 살았던 공룡의 모습을 만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스마트폰을 꺼내어 앱을 실행시키고 표지판에 있는 공룡모습에 갖다 대자 화석터를 발굴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러다가 다음 순간 목이 긴 공룡과 이빨이 사나운 공룡이 차례로 고개를 들고 다가오는 모습이 선명하게 재현된다. 짧은 순간이지만 고개를 드는 순간을 포착해 캡처를 하니 사진으로 저장도 된다. 순진한 생각인지 모르지만 이 길을 지나는 아이들이 모두 이걸 보고 갔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재현공간이 더 확장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의성군에서 추진하고 있는 제오리공룡발자국화석과 금성산 일대를 비롯한 화산 지형과 유적들에서부터 빙계계곡에 이르는 지형적 특질을 엮어 지질공원으로 조성하는 계획이 실현된다면 그런 날이 오는 것도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증강현실로 만난 백악기에 제오리에 살았던 공룡2

     

    실제로 경상북도와 의성군은 2022년‘의성 국가지질공원’인증을 목표로 광역시‧도의 지질전문가를 초청해 지질공원 후보지 신청을 위한 검토‧자문을 거쳐 지질공원후보지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외부전문가들도 의성군 전역이 지질학적 가치가 높아 인증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의성 국가지질공원은 금성산, 제오리 공룡발자국, 구산동 응회암 등 7개의 지질명소와 금성산 고분군, 낙단보 등 지질분야 이외에 역사․문화․생태적으로 가치를 가지는 명소 5개를 비롯해 총 12개의 명소를 포함하고 있다. 그 시작점에 제오리공룡발자국화석이 있고 그 길은 빙계계곡으로 가는 길로 이어진다. 

     

     

    삼한시대의 무덤들을 만날 수 있는 금성면

    제오리에서 백악기 공룡의 세계를 만나고 조금 더 가면 삼한시대 왕의 무덤을 비롯한 고분들도 만날 수 있다. 금성산 자락을 지나노라면 옛 조문국의 도읍지였음을 증명하듯 크고 작은 무덤군들이 산재해 있다. 그 대표적인 공간인 금성산 고분군이다. 금성산 고분군은 대리리, 탑리리, 학미리 일원에 200여기가 소재하며 5~6세기 것으로 보이는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한다. 덕분에 차를 타고 가면서도 나지막한 길가 너른 분지에 불룩불룩 솟아있는 무덤들을 만날 수 있다. 금성면 한가운데 위치한 금성산을 중심으로 낮은 구릉지대에 걸쳐 주인을 모르는 모양도 크기도 다양한 무덤들이 떼를 이루고 누워있는 셈이다. 

     

    금성산 대리리 고분군

     

    대리리 고분군은 의성군지(*1988년 발행)에 따르면 약 500년 전까지도 이곳은 오극겸(吳克謙)이라는 사람의 외밭이었는데 꿈에 조문국의 왕이 나타나 너의 밭이 나의 능이니 속히 능으로 모시라고 하여 현감에게 고하고 지방 유지들의 뜻을 모아 능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 숙종 때 발간된 허미수의 문집에는 현감의 꿈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어찌되었건 그 이야기가 전설로 오랜 세월 의성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바탕에는 금성산 일대에 산재한, 조문국 경덕왕릉을 비롯해 누구의 것인지는 모르나 예사롭지 않았던 무덤들이 오래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금성산고분군 중 왕릉이 있는 이곳 대리리 고분군 일대 대형 고분군을 기저부 봉토 조사 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여 정비하였다는데, 고분들이 둥그렇게 누워 있는 이곳이 옛날 금성산 자락 어디쯤이었을까 짐작해볼 뿐 옛일을 알지 못하니 아득할 뿐이다. 

     

    금성산 대리리 고분군 삼한시대 조문국 경덕왕릉(1호고분)

     

    도로에 접해 있어 지나가다 잠시 차를 세우고 봉분들 사이를 거닐며 잠시 고대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기에는 제격이다. 차가 지나는 도로를 접하고 있지만 그 공간 속에 들어가는 순간 무덤과 나 자신뿐으로 저절로 걸음이 느려지는, 드물게 만나는 공간이다. 봄철이 되면 관민들이 모여 춘계향사를 지내고 있다는데 금년에는 코로나로 취소가 되었다 한다. 그 옛날의 작은 도읍지 터에 살면서 그 터를 발굴하고 봉분을 높여 관과 민이 함께 제를 올리니 의미가 있는 일이다. 먼저 살다간 이들과 뒤이어 사는 이들의 이야기가 같은 공간 위에 켜켜이 쌓여 시간 속에서 역사가 된다.  

     

     

    의성탑리오층석탑과 산운마을

    금성산고분군이 있는 대리리에서 탑리는 지척이다. 금성산 앞에 와서 국보인 탑리오층석탑을 보지 않고 지나치는 것은 길손의 덕목이 아닐 것 같다. 보고 난 느낌을 말하자면 이왕이면 탑리오층석탑을 꼭 보라고 말하고 싶다. 전국에 탑이 많지만 국보인 까닭은 그곳에 가 보아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이기에 그렇다. 그리고 그 길은 빙계계곡을 가는 길로도 연결된다. 탑은 절이 있는 곳에 선다. 그렇기에 우리는 큰 절의 이름을 알지만 그 절 마당에 서 있는 탑의 이름을 온전히 아는 경우는 많지 않다. 탑이 온전히 그 이름만으로 기억되는 탑들은 그래서 대부분 절이 스러진 자리를 홀로 묵묵히 지키고 서 있는 것일 때가 많다. 사찰의 다른 것들과 섞여 있을 때는 잘 몰랐던 가치가 따로 그것 하나만 볼 때 제대로 드러나는 것들 중 처음이 탑이 아닐까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새롭게 보게 되는 것들이 있는데 탑도 그렇다.  

    탑리오층석탑은 탑리시장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데, 탑의 앞쪽에 교회가 들어서 있어 탑을 보기 위해 뒤로 돌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 들어가면서 보면 둔덕 위에 우뚝한 탑 뒤로 교회 첨탑이 같이 들어온다. 산 속에 있지 않고 사람들이 사는 대중들 속에 사찰이 있었던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이 절 가까이에 청학사가 있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그 절에 딸린 탑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과 많이 닮은 듯한 탑리오층석탑은 돌을 벽돌처럼 잘게 자르지 않았지만 탑 전체의 모양은 전탑의 양식을 흉내 내어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분황사 탑과 견주어도 이 탑의 완성도와 의미가 조금도 뒤지지 않기에 국보가 된 것일 테다. 탑 주위를 나이 드신 동네 어른 두 분이 돌고 계셨다. 그저 운동 삼아 하는 일이라 하지만 매일 탑돌이를 하는 그 마음을 탑이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다. 교회와 나란히 서 있는 것 같았지만 가까이 가서 보니 상관하지 않고 홀로 온전히 탑리의 하늘을 이고 서 있다. 푸른 하늘과 그저 탑뿐인 그곳을 소나무 두 그루가 함께 지키고 있는데 그마저 상관하지 않을 듯 오롯하다. 단단한 화강암 돌로 한 층 한 층 쌓아올린 그 염원이 하늘에 닿아서 절을 지키던 이들은 서천으로 가고 무심히 탑만 남았던가? 탑을 올려다보면 그곳에 하늘이 있다. 

     

    국보 제77호 탑리오층석탑

     

    온전한 형상으로 서 있는 이 오층석탑이 조문국의 터전인 이곳 금성면 중앙에 자리 잡은 시기를 더듬으며 돌아서서 다시 본 국보 77호 탑리오층석탑은 천년의 하늘을 이고 선 돌탑답게 꿈쩍도 않고 단단하게 옛 터를 지키고 서 있다. 

     

    탑리에서 가음 방면으로 달리다 보면 길을 끼고 왼쪽으로 한옥들이 즐비한 산운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운마을의 산운은 불교가 성할 적에 마을 뒤 수정계곡 아래 구름이 감도는 것이 보여 수정산과 흰구름이 감싸고도는 마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영천이씨들이 주로 세거해 온 집성촌으로 마을 안에 자리한 돌담길이며 고택들이 지금도 윤기를 잃지 않고 그 정취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비워두지 않고 그 속에 사람이 여전히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길을 나선 까닭은 공룡발자국을 보고 의성 빙계계곡까지 둘러보려고 마음먹은 터라 산운마을은 잠시 눈으로 새기고 지나가기로 한다. 빙계를 가려면 가음 방면으로 가다 춘산면 방면으로 접어들어야 한다. 

     

     

    경북팔승지일 빙계계곡

    빙계계곡으로 들어가는 길목 산자락 아래에 서원이 있다. 서원이 있다 하여 빙계3리는 서원마을로 불리기도 한다. 옛날부터 파평 윤씨들이 많이 살았다. 조선 선조 임금때 의성읍 구리못 근처에 있던 장천서원이 난리통에 불에 타 없어지자 난이 끝난 뒤에 학동 이광준이 이곳에 이건하고 빙계서원이라 이름 짓고 마을 선비들과 시문을 논하며 내려오다 훼철되었다. 빈터만 남아 있다가 복원한 빙계서원이 자칫 그냥 스쳐지나가기 쉬운 계곡의 초입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가라고 차분히 지키고 서있는 형국이다. 

     

    빙계서원

     

    서원을 돌아들면 초록빛 양쪽 산자락 사이 계곡에 저마다 자리를 잡고 선 검은 바위들 사이를 흐르는 물소리가 곧장 다가든다. 물빛이 마치 석회석 동굴 안의 물빛과 닮은, 안개가 낀 듯한 초록빛이다. 계곡 안 검은 바위 위에 경북팔승지일(慶北八勝地一)이라 새긴 글자가 길에서도 보인다. 물빛과 검은 바위들이 이곳 또한 화산 지형과 관계가 있음을 짐작케 해준다. 그러나 연두와 진초록이 어우러진 산빛과 검은 바위들이 조화로운 봄날 계곡의 풍경은 다른 말이 필요 없다. 그저 마음에 담아가고 싶을 뿐. 이 빛깔을 만나기 위해 세 번이나 이 길을 오갔지만 다리가 조금도 아프지 않게 이 풍경을 만날 수 있어 고맙기만 하다.

     

     

    빙계계곡 전경

     

    계곡 안 검은 바위들과 물소리를 만났으면 빙계를 경북팔승 중 제일로 만든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풍혈(風穴),과 빙혈(氷穴)을 만나야 한다. 계곡길을 따라 올라오다 처음 만나는 왼쪽 언덕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빙산사지오층석탑이 먼저 보이고 풍혈과 빙혈이 보인다. 아니면 마을에서 탑 옆으로 빙혈로 오르는 길도 있다. 어느 길이든 지척간이라 어느 것을 먼저 보든 순서에 상관은 없지만 탑을 보는 것을 뒤로 미루고 빙혈을 먼저 보러 간다. 돌로 지은 집으로 들어가 풍혈이라 써진 안쪽으로 고개를 들이미는 순간 시원한 바람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시원하게 한다. 그야말로 바람 구멍이다. 만만하게 볼수록 시원함의 강도는 크다. 풍혈 뒤 빙혈은 눈으로도 얼음이 보이는데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만치 깊고 더울수록 얼음이 더 언다는 역설이 존재한다. 봄치고는 쌀쌀한 날임에도 얼음두께가 처음 갔을 때 보다 두번째, 세번째 갔을 때 더 두껍게 느껴진 것은 나의 착각만은 아니었다. 온도차가 클수록 빙혈이 내뿜는 차가움도 더 깊어진다.  

     

    풍혈

    빙혈


    바람구멍과 얼음동굴이 만들어낸 빙계의 풍혈과 빙혈

    춘원 이광수의 소설 ‘원효대사’ 속에서 요석공주는 지아비인 원효를 찾아 한여름 이곳에 이르러 어린 설총을 안고 좁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 “아바아!” 하고 지아비를 애타게 부른다. 이광수가 원효와 요석공주를 갈라놓는 두 세계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얼음과 바람이 흐르는 빙계의 동굴을 설정할 만치 그 옛날부터 한여름 얼음이 어는 빙계계곡이 경북팔승지 중의 제일로 널리 알려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춘원은 소설 ‘원효대사’를 집필하면서 필히 이곳을 다녀갔을 것이다. 빙계계곡 역사문학 연구보존회 사람들이 춘원의 소설을 빌어 원효와 요석공주, 설총의 이야기를 적어 빙혈과 풍혈의 입구를 지키고 서 있는 이끼 낀 석탑 옆에 세워놓았다. 그저 조금 특별한 자연현상인 풍혈과 빙혈을 특별한 공간으로 만든다. 

     

     

    그 자체로 충분한 빙산사지오층석탑 

    풍혈과 빙혈을 보고 산정의 불정을 보러 산길을 오르다 겨울을 나며 여기저기 패이고 낙엽이 쌓인 길섶에 미끄러져 돌아내려와 빙산사지오층석탑 앞에 섰다. 탑 앞에 선 순간, 계곡을 감싸 한 바퀴 휘돌아 마을을 안고 있는 주산을 마주하며 하늘과 땅을 지탱하고 서있는 그 모습이 비로소 빙계의 공간을 완성시켜주고 있는 듯 느껴진다. 탑이 선 자리가 그렇게 느끼도록 하는지도 모른다. 절이 흥성했을 적에는 분명 절의 오른쪽이 아니면 어느 전각 마당 한가운데 있었을 것인데, 지금은 마을을 지켜주듯 집들이 앉은 둔덕 뒤 중심에 자리를 잡고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빙계를 오고 가던 옛 사람들의 소리와 영화를 보고 들었던 시절로부터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러갔는지 모르는 그 세월을 한 자리에서 온전히 지켜본 탑이다. 유한한 짧은 생을 살다가는 인간과 천년의 시간을 사는 석탑, 탑리오층석탑도 그렇거니와 유한한 현존을 초극한 듯이 보이는 석탑이야말로 천년세월의 진짜 주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공룡발자국을 찾아나서 빙계를 보았지만 탑이 마음에 남았다.

     

    빙산사지오층석탑

     

     

     

     

  • 컬처라인 문화메신저 글쓴이 : 컬처라인 문화메신저 경상북도 북부권 11개 시군의 문화예술 관련 정보를 전합니다.
 
코멘트 영역
글에 대한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