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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 거니는 상주]여덟 마디로 우는 여울
    컬처라인 | 2020-08-10 프린트 퍼가기
  •  

     

    시로 거니는 상주

     

     

    여덟 마디로 우는 여울

     

     

    글 황구하

     

     

    산 첩첩 골 첩첩 꽃이 피고 연두가 한창인 데도 봄이 아닌 봄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 세계가 엄중합니다. 백신과 치료제도 없는 속수무책의 위기상황에 모든 사회적 일상이 멈추거나 흐트러졌습니다. 학교는 개학을 미루고 가게들도 거의 문을 닫아 마스크 쓴 사람들마저 보기 힘든 거리는 적막합니다.

     

    얼마 전 상주시 모동면 수봉에 다녀왔습니다. 구수천(龜水川) 팔탄(八灘. 여덟 여울) 물길 따라 두어 시간 걸었는데요. 구수천 팔탄길은 옥동서원(玉洞書院)이 있는 경북의 상주 수봉에서 충북 영동의 고찰 반야사(般若寺)까지 여덟 구간의 여울 따라 난 둘레길입니다. 그 옛날 사람들 발자국을 간직한 ‘천년 옛길’을 7, 8년 전 잘 열어놓았는데요. 인적이 드물고 풍광이 고요하지요.

     

     

    옥동서원 주차장에 차를 세웠습니다. 옥동서원은 황희(1363∼1452) 선생을 추모하는 서원입니다. 1518년 건립해 황희 선생의 영정을 봉안하고 공부하던 글방이 효시인데요. 1789년 백화서원에서 옥동서원으로 바꾸고 사액(賜額)되었는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도 훼철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서원의 문이 닫혀 있어 아쉬웠지만 오래된 나무문을 비롯한 목조와가의 품새가 그윽했습니다. 결혼하고 바로 3년 가까이 모동면 솔미 시댁에서 살았는데 주변 어른들로부터 “자네는 우째 친정으로 시집을 왔는고. 귀한 인연일세.” 라는 인사를 많이 들었습니다. 장수황씨 조상 할아버지인 황희 선생을 두고 하신 말씀이지요.

     

     

    연둣빛 실버들 늘어진 밭길을 지나 가파른 백옥정(白玉亭)에 오르니 건너편 백화산과 포도밭, 마을과 냇물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이들이 예닐곱 살 때 멀리 보이는 백화산 정상 금돌산성까지 올랐던 때를 생각하니 아련합니다.

    백옥정에서 내리막 산길로 가다 듬직하게 앉아 있는 세심석(洗心石)에서 잠시 쉬었는데요. 세심석은 1716년 이재 선생이 황익재 선생을 만나기 위해 왔다가 같이 들러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바위 한쪽에 설치된 밧줄을 잡고 대여섯 걸음 올라가니 평상처럼 널찍합니다. 이곳은 독서와 명상 그리고 문학 창작의 자리였다고 합니다. 세심석 뿐만 아니라 구수천 여덟 여울의 모든 공간은 시인묵객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수많은 작품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둥글게 둘러앉으면 그 자체로 작은 시회(詩會)가 어우러질 것 같은데요. “세속의 마음 씻는 바위”를 “세속의 병 씻는 바위”라고 불러보았습니다.

     

     

    세심석에서 나오는 길 한쪽 숲에는 청보랏빛 현호색이 무더기로 피었습니다.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길 주위에 군락을 이루고 있었는데요. 혹여 내 발길에 다치지 않을까 조심조심 현호색과 눈 맞추다 보니 마치 새가 입을 쫑쫑 벌리고 뭐라 뭐라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함께 만난 산자고와 참개별꽃, 산괴불주머니도 저마다의 눈빛으로 괜찮냐고, 부디 건강 챙기라던 지인들의 안부전화처럼 짠했습니다. 엄동설한 견디고 이 세상에 와서 겨우 며칠 피었다 가는 꽃들에게 몸을 낮추고 눈을 맞추는 일은 저 스스로를 챙기고 돌보는 일과 다름없지요.

     

     

    구수천 물소리 따라 걷는 길이 호젓하고 재밌습니다. 울퉁불퉁 돌길을 지나면 가마니 깔린 길이 나오고 나뭇잎 쌓인 길과 나무데크를 오르고 내리면 체에 거른 듯 고운 흙길이 푹신합니다. *너덜겅을 지날 때는 좀 무서웠습니다. 반대편에도 이런 곳이 두어 군데가 더 있고 반야사 가까이에는 아예 호랑이 모습을 닮았다 하여 이름 지어진 ‘호랑이 너덜겅’도 있는데요. 커다란 칼로 쓱쓱 베어놓은 듯 날카롭게 생긴 바위와 돌무더기가 산비탈을 이루고 있어서 금방이라도 굴러 내려올 것 같았습니다. 혹여 폭우나 폭설이라도 있다면 끔찍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지레 걱정도 되었습니다. 너덜겅은 요즘 코로나19의 세상만 같아서 마음 졸이며 걸었습니다.

    *너덜겅 : 돌이 많이 흩어져 깔려 있는 비탈  

     

     

    징검다리 돌 사이로 흐르는 개울물소리가 청량합니다. 여름이라면 발이라도 담갔을 텐데 장갑을 벗고 손을 씻었습니다. 새소리, 바람소리도 살랑살랑 부드러웠습니다. 노각나무, 물푸레, 박달, 상수리, 층층나무 사이사이 생강나무가 노란색 꽃을 망울망울 피웠습니다. 가지 하나 손가락 마디만큼 꺾어 코끝에 갖다 대니 생강 냄새가 알싸했습니다. 온몸에 쩡한 기운이 번지는데요. 모퉁이를 돌 때마다 만나는 작은 돌탑이 정겹습니다. 틈틈 평지에는 머위와 달래, 양지꽃, 제비꽃, 황새냉이가 화엄을 이루었습니다.

     

     

    밤나무골을 지나 구수천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 중간에 섰습니다. 상주 쪽과 영동 쪽으로 번갈아 바라보니 햇빛에 반짝이는 물살과 버드나무와 복사꽃이 더욱 새뜻합니다. 흔들리는 무릉도원의 경치도 잠시, 갈림길에서 저승골 표지석이 나오는데요. 일부러 그렇게 해놓은 건지 바위에 새겨진 빨간색 글자가 으스스합니다. 저승골은 1254년(고려 고종 41) 침입한 차라대(車蘿大)가 이끄는 몽골군이 떼죽음을 당한 곳입니다. 황령사의 홍지(洪之) 스님이 이끄는 승병 등 민관병이 몽골군을 이곳으로 유인한 것인데요. 골 깊은 산에 오르면 사방이 절벽과 같아 쉽게 되돌아 나올 수 없는 험지라고 합니다. 그런 자연적 조건을 지혜롭게 활용하여 적을 물리친 것이지요.

     

    저승골로 가는 길은 다음으로 미루고 옆길로 들었습니다. 냇물 건너편에 산 전체가 바위 절벽인 난가벽(欄柯壁)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데요. 난가벽은 등나무가 발을 드리운 듯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깎아지른 바위 발끝에 부딪는 물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산세가 눈길 오래 머물게 했습니다. 평상시 이맘때면 사이사이 오가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을 텐데 마주치는 사람들이 없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깊은 한숨이 나왔습니다.

     

     

    임천석대(林千石臺)가 바라다 보이는 개울엔 마른 억새가 줄지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임천석은 고려 말 거문고를 잘 타던 궁중 악사(樂師)입니다. 『상산지(商山誌)』 창석본에 의하면 나라가 망하자 백화산 기슭에 은거해 이 대에 올라 거문고를 켜며 망국의 설움을 달랬다는데요. 조선 태종의 부름이 있었으나 응하지 않고 결코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절벽에서 뛰어내렸다고 합니다. 거문고 여섯 줄이 우는 듯 여섯 번째 여울로 가는 물소리가 그렁그렁합니다. 벼랑의 진달래 꽃빛이 애처롭게 서늘했습니다.

     

    20여 년 전 이곳에 답사를 왔습니다. 권태을 선생님과 소천문학회 학생들과 함께였지요. 그때는 지금처럼 드러난 길도 없었고 또 한겨울이었습니다. 보현사 입구 쪽에서 산길을 넘기 시작했는데요. 마른 들풀과 나무들이 얽히고설킨 데다 잔설이 쌓여 무척 힘들었습니다. 사람들 발길이 끊어진 산길을 헤쳐 나왔을 때 군데군데 얼음이 덮이고 콸콸 흐르는 냇물이 또 난관이었습니다. 모두 쭈뼛거리고 있는데 권태을 선생님께서 바지를 둘둘 걷어 올리고 양손에 신발을 든 채 냇물을 건너셨습니다. 모두들 선생님 뒤를 따라 찰방찰방 건넜는데요. 임천석대 아래에서 술을 붓고 절을 올렸습니다. 저승골을 향해 묵념도 했지요.  

     

    非竹非絲折折鳴   퉁소도 거문고도 아닌데 굽이굽이 울리니

    自然聲樂石間生   자연의 성악이 돌 사이에서 생겼다

    浮泡飛洙雖渠使   뜬 물거품 나는 물방울은 비록 네가 시킨 것이나

    停則淵澄亦性情   멈추면 맑은 못 되는 게 또한 너의 성정이다

    ―김재륜, 「八節鳴灘」(김철수 외 14人, 『백화산』(상주문화원, 2001))

     

     

    구수천(龜水川)처럼 ‘거북 구(龜)’를 쓰는 곳은 보통 신성한 곳을 상징합니다. 신성한 곳이란 섬기는 곳으로 마음의 위안처이자 삶의 기도처입니다. 생각해보면 이 세상 살아 있는 생명과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러합니다. 그래서 “퉁소도 거문고도 아닌데 굽이굽이” 흘러드는 물길을 안고 여울지는 구수천은 이미 옛사람들이 걸었던 역사이며 지금 여기 우리가 품어야 할 “성정(性情)”입니다. “뜬 물거품 나는 물방울은” 여기서 또 반야사 옛터와 호랑이 너덜겅을 지나고 문수전을 거쳐 반야사 앞마당 앞으로 흘러갑니다. 온갖 희로애락을 끌어안고 “여덟 마디로 우는 여울(八節鳴灘)”은 ‘반야(지혜)의 강물’을 이루고 바다로 바다로 흘러 ‘해인삼매(海印三昧)’에 드는 것이지요.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코로나19 뉴스를 확인합니다. 처음보다는 많이 잦아들었지만 어쩌면 이 상황이 더 길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도 끝은 있을 겁니다. 조금 더디더라도 아프고 힘든 이 시절이 잘 지나가면 좋겠습니다. 저 구수천 여덟 여울이 한 굽이 울고 또 한 굽이 흘러흘러 강을 만나고 바다를 이루듯 코로나19를 무사히 건너 세상의 봄을 활짝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 황구하 글쓴이 : 황구하 충남 금산에서 태어났다. 영남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동양철학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2004년 『자유문학』으로 등단하였다. 시집 『물에 뜬 달』이 있으며 현재 반년간지 『시에티카』 편집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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