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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의 역사인물_영주시]삼판서고택에서 태어난 천문학자 김담을 아십니까?
    컬처라인 | 2020-09-21 프린트 퍼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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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가 있는 문화탐방

     

     

    삼판서고택에서 태어난 천문학자 김담을 아십니까? 

     

    글. 안경애

      

     

    무송헌 김담(撫松軒 金淡, 1416~1464)은 조선전기의 문신이자 천문학자다. 이순지(李純之) 등과 더불어 ‘칠정산내외편(七政算內外篇)’을 만든 김담은 ‘조선 천문학의 개척자’란 평가를 받고 있다. 김담은 정도전생가로 잘 알려진 영주 삼판서고택(三判書古宅)에서 태어났다. 삼판서고택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연이어 세 사람의 판서가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삼판서 가운데 가장 먼저 그 집에 살았던 사람은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의 부친으로 봉화가 본관인 정운경이다. 고려 공민왕 때 형부상서(형조판서)를 지낸 정운경은 사위인 황유정에게 자신의 집을 물려주었다. 황유정은 평해황씨로 조선태조에서 태종에 걸쳐 공조판서, 형조판서, 예조판서를 두루 지냈다.

     

    황유정은 다시 사위인 선성김씨 김소량에게 이 집을 물려주었고 김소량의 아들이 이조판서를 지낸 천문학자 김담이다. 그렇다면 같은 집에서 자란 정도전과 김담은 어떤 사이였을까? 정도전에게 김담은 누이의 외손자가 된다. 다시 말해 김담의 외할머니 정씨는 정도전과 오누이 간이다. 현재 김담의 후손이 사는 무송헌종택은 영주시 무섬마을에 있다.

     

     

    삼판서고택은 구성산(龜城山) 아래 남쪽기슭에 영주를 대표하는 선비의 가옥으로 오랜 세월 견뎌오다가 1961년 영주 대홍수로 일부 붕괴된 후 철거됐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지역 유림(儒林)들이 1999년 삼판서고택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복원사업을 펼쳐 현재 서천이 내려다보이는 구학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2008년 준공해 영주를 찾는 방문객들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고 있다. 

     

     

    이순지와 함께 당대 최고의 천문학자로 많은 업적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독서를 좋아했던 김담은 태어난 영주 삼판서고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18세(1434년)에 한양으로 올라가 이듬해인 1435년(세종 17) 형(김증)과 함께 문과에 급제, 형제가 나란히 집현전 정자(정9품)에 임명된다. 집현전 학사 99인중 형제가 나란히 집현전에 선발된 것은 유일한 예라고 한다. 

     

    세종은 1434년(세종 16) *간의대를 설치하고, 이순지를 책임자로 임명해 업무를 수행하게 했다. 그러나 이순지가 모친상을 당해 자리를 비우게 되자 세종은 이순지를 대신할 사람을 천거케 했고 승정원에서는 “집현전 정자 김담이 나이가 젊고 총민(聰敏)하고 영오(潁悟)하므로 맡길 만한 사람”이라며 천거했다. 몇 달 뒤 이순지가 왕명으로 복귀한 후에도 김담은 이순지와 함께 간의대에서 일하게 된다.

     

    *간의대(簡儀臺) : 조선시대의 천문대이다. 천체 관측기구인 간의(簡儀)를 올려놓았다고 하여 간의대(簡儀臺)라고 하며, 관천대(觀天臺)라고도 한다.

     

     

    천문도

     

    김담은 1439년 세종의 명으로 이순지와 함께 역법(曆法) 교정에 착수해 1442년 마침내 칠정산내외편을 완성한다. 칠정산의 ‘칠정’은 7개의 움직이는 별(해,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을 뜻하고 ‘산’은 ‘계산한다’는 의미다. ‘칠정산내편’은 중국 역법에 기반을 두었지만 수시력(授時曆)과 대통력(大統曆)을 한양 위도에 맞추어 교정한 것이다. 천문상수는 물론, 동지와 하지 전후의 해 뜨는 시각과 지는 시각, 밤낮의 길이를 다루고 있어 단순한 달력이라기보다는 오늘날의 천체력의 구실을 겸하고 있다. 책의 일행제율의 항에서 보면, 세주(歲周, 1년의 길이)=365일 2,425분으로 되어 있고, 1일=10,000분(分)=100각(刻), 1각(刻)=100분(分)의 십진법(十進法)이 쓰였는데 이로 미루어 1년의 길이가 현재 실시하고 있는 그레고리(Gregory) 태양력과 같은 365.2425일이고, 1분은 현행 8.64초와 같았음을 알 수가 있다.

     

     칠정산 내편 / 외편

     

    ‘칠정산외편’은 서역의 역법인 회회력(回回曆)이라고 불린 이슬람력을 연구하여 조선의 실제 절기에 맞춰 교정한 책이다. 칠정산내편과는 달리 원주를 360도로 한 60진법이 쓰이고 있다. 또 1태양년의 길이는 365일로 하되 128태양년에 31윤일을 두고 있으므로 이 역법에 의해 계산한 1태양년의 길이는 365일 5시 48분 45초로 현대 값 보다 1초 짧을 뿐이다. 세종이 칠정산내외편에 대해 얼마나 자부심을 가졌는가는 칠정산내편 서문을 통해 짐작 할 수 있다. 서문에는 “이리하여 역법이 아쉬움이 없다 할 만큼 되었다”고 적혀 있다.

     

    1445년에 간행된 제가역상집(諸家易象集)도 김담이 이순지와 함께 저술하는 등 당시 천문학에 관한 대부분의 저서는 김담과 이순지가 연구·저술한 것이다. 김담이 이조정랑으로 재직하던 1447년(세종 29)에는 문과중시(重試 : 과거 급제자를 대상으로 치르는 시험)에서 을과 1등 3인 중 제2인으로 합격했다. 1인은 성삼문 3인은 이개였다. 이처럼 학자로도 출중한 능력을 갖추었던 김담은 문과급제자로서는 특별하게 천문과 산학(算學)에 정통해 이순지와 함께 조선시대 과학 발전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심판서 고택 전경

     

     

    세종과 문종·세조로부터 각별한 총애를 받아

     

    김담은 1449년(세종 31) 부친상을 당해 시묘살이를 하던 중 세종은 출사하라는 명과 함께 쌀 10석·옷·신발·버선 등을 하사하며 역법을 맡아보도록 했다. 김담은 “신이 생시에 봉양하지 못하고, 병중에 의약도 지어 드리지 못했으며, 돌아가신 후 장례 치를 때도 당도하지 못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보고 땅을 치며 통곡하고 피눈물을 흘리며 생각하건대 마땅히 묘소 곁에 엎드려 삼년상을 마치고자함은 전일의 잘못을 보상하고자 함이 아니고 금일에 힘쓸 바 오직 이것뿐이라고 여겨집니다.”

     

    “신의 가정이 액운을 만나 신의 백부가 지난해 9월에 돌아가시고 11월에 신의 누이도 죽고, 올해 정월에는 신의 어미가 병환이 위독해 미처 쾌차하기도 전에 신의 아비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신의 여식이 조부모 슬하에 크다가 2월에 이르러 또 죽었습니다. …향리로 돌아가 상제(喪制)를 마치고 노모를 봉양하도록 윤허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세종이 계속 허락하지 않자 그 해 7월까지 여섯 차례나 상소를 올린다. 그러나 세종은 오히려 승진 벼슬을 내리면서 복귀하도록 명한다.

     

     

    이에 사간원에서 상을 당한 지 오래되지 않아 벼슬을 제수해 맡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건의하자, 세자(문종)는 “김담이 집에 있을 때는 상복을 입고 관청에 있을 때는 평상복을 입으면 되지 않겠는가? 역법에 정밀함이 김담 같은 이가 없기 때문에 임용하려는 것이다”라고 했다. 당시는 세자가 세종을 대신해 정무를 보던 때였다. 김담에 대한 세종과 세자의 신뢰와 총애가 이처럼 두터웠기에 결국 *기복의 명을 따라 복귀한 김담은 천문역법 연구에 매진했다.

     

    *기복(起復) : 상(喪)을 당해 휴직 중인 관리를 복상기간 중에 직무를 보게 하던 제도.

     

    또한 세조로부터도 각별한 대우를 받은 김담은 1463년(세조 9) 이조판서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다음해인 1464년 7월 48세 아까운 일기로 김담이 별세하자 세조는 이틀간 조회(朝會)와 저자[市]를 정지할 것을 명하고 예관을 보내 조제(弔祭)를 치르게 하고 부의를 후하게 내렸다. 그리고 별세 이튿날 *‘문절’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별세 후 이틀 만에 시호를 내린 것은 당시 드문 일이었다.

     

    김담 사후에도 천문과 산학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임금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이 그를 아쉬워했다고 한다. 성종 때 윤필상이 임금에게 아뢰기를 “조종조(祖宗朝)에는 김담이 역법에 정통하였는데 그 뒤에는 그를 이을만한 자가 없습니다. 청컨대 문신들 중에서 적임자를 골라서 이를 익히도록 하소서”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임하필기 제13권·성종실록 등>

     

    *문절(文節) : 학문에 부지런하고 묻기를 좋아하는 것을 ‘문(文)’이라 하고, 청렴(淸廉)하기를 좋아하고 스스로 극기(克己)하는 것을 ‘절(節)’이라고 한다.

     

     

    몽유도원도

     

    안견 몽유도원도에 찬시 남겨

     

    안평대군이 무릉도원을 방문하는 꿈을 꾸고 그 내용을 안견에게 그리게 한 그림이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이다. 이 몽유도원도에는 성삼문, 신숙주, 박팽년, 정인지 등 당대 최고 문사(文士)의 제찬(題讚)을 포함해 23편의 자필 찬시가 곁들여져 있는데, 무송헌 김담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김담이 몽유도원도에 남긴 시의 일부다.

     

    碧玉叢間白玉流    파란 숲 사이로 백옥같이 맑은 물 흐르는데

    花光長帶水光浮    꽃빛은 물 위에 길게 비치어 떠 있네

    淸冥風露非人世    맑고 그윽한 자연은 인간의 세계가 아니니  

    骨冷魂香夢裏遊    뼛속 시원하고 정신 향기로운 꿈속에서 노닐었네

    一片桃源一幅圖    한 조각 도원을 한 폭에 그려놓으니

    山中綃上較錙銖    산중의 선경이 비단 위에 사뿐히 실렸네  

    試問武陵迷路者    무릉에서 길 잃은 자에게 묻노니

    眼中還似夢中無    눈앞에 보았던 게 꿈만 같지 않았던가

     

     

     

     

  • 안경애 글쓴이 : 안경애 영주에서 다양한 문화활동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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