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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이 있는 풍경]장계향의 발자취를 찾아
    컬처라인 | 2021-01-11 프린트 퍼가기
  •  

     

    이야기가 있는 문화탐방

     

    장계향의 발자취를 찾아

     

      글. 이말섭

     

     

     

    어질고 인자한 현인이 많다는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마을,

    이곳은 우리나라 5대 명당으로 꼽히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 앞을 흐르는 송천을 건너면 칠보산 자락이 마을을 감싸 안은 모습이 편안하게 다가오고, 나지막한 산과 넉넉한 들판, 그 사이에 옹기종기 들어 선 고택들, 어느 하나 모난 곳이나 튀는 구석 없는 이곳은 풍수에 문외한이라도 배산임수의 평온이 절로 느껴지는 명당 중의 명당이다. 

     

     

    인량리는 8성씨 12종가가 모여 사는 양반 마을이다. 입향 시기에 따라 많게는 500년이 넘고, 적게는 200년 남짓 되는 고택이 즐비하며, 문화재로 지정된 가옥만도 9채에 이른다. 

    마을의 지세가 학이 날개를 펼친 형상이라 하여 ‘나래골’이라고도 불리는 이 마을에는 옛 부터 걸출한 인재가 많아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사모관대 행차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단아하면서도 기상이 있고, 소담한 가운데 품격을 잃지 않은 이 인량리에서 여중군자(女中君子)의 삶을 산 정부인 장계향의 발자취를 들여다본다.

     

    조선중기의 여류 문인이며, 교육자, 사회사업가 또 순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으로 명성이 알려진 정부인 안동장씨(貞夫人 安東 張氏)의 본명은 장계향(張桂香 1598~1680)이다. 1598년 안동 서후면 금계리 봄파리 마을에서 퇴계의 학통을 계승한 아버지 경당 장흥효(敬堂 張興孝)와 어머니 권씨 부인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경당 장흥효는 당시 영남사림의 최고의 학자였고, 수많은 학인들이 경당에게 배움을 청하였다. 정부인 장계향은 이러한 가운데 학문을 틈틈이 배웠으며 특히 학인들이 모르는 부분까지 깨우쳐 주위의 놀라움을 샀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 부터󰡐소학(小學)󰡑,󰡐십구사략(十九史略0󰡑등을 배웠고, 열세 살 이른 나이에 예기(禮記)와 논어(論語)를 혼자 읽었으며, 「학발시(鶴髮詩)」, 「소소음(蕭蕭吟)」, 「성인음(聖人吟)」등 여러 편의 시를 지었다. 어린 시절 남긴 시를 보면 당시 정부인 장계향의 깊이 있는 사색을 짐작할 수 있다.

     

    소소음(蕭蕭吟)

     

    창외우소소(窓外雨蕭蕭) 창밖 쓸쓸한 비

    소소성자연(蕭蕭聲自然) 빗소리 자연스럽게 들리네

    아문자연성(我聞自然聲) 자연의 소리에 듣노니

    아심역자연(我心亦自然) 내 마음도 자연 되네

     

    19세 때 정부인 장계향은 아버지 장흥효의 수제자인 8살 연상의 석계 이시명(石溪 李時明)과 혼인을 한다. 영해 인량리의 재령이씨 운악 이함(雲嶽 李涵) 선생의 셋째 아들인 석계 이시명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김해의 딸과 혼인하였으나 사별한 지 2년이 되었고, 슬하에 두 자녀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 장흥효는 총명한 이시명을 깊이 신뢰하였고, 그의 장래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혼인 후 정부인 장계향은 이시명이 살고 있는 영해부 인량리 충효당으로 시집을 간다.

     

     

    어질고 바른 어머니

     

    정부인 장계향은 전부인(광산 김씨)의 자녀들을 어루만져주고 사랑하기를 자기가 낳은 자녀와 차별을 두지 않았으며, 자녀를 가르치고 일과를 독려하기 또한 지극하게 하였다. 추은 겨울 전처 아들 상일을 교육시키기 위해 5리 넘게 떨어져 있는 남경훈 선생 댁 까지 등에 업고 다닌 열성을 보였다. 심성 고운 새 며느리를 지켜보던 시아버지는 “저 어미 잃은 것이 아니고 죽은 어미가 살아온 것이다.󰡓하고 칭찬하였다 한다.  

    10명의 자녀들에게 매우 자애로웠지만 잘못이 있으면 엄하게 꾸짖고 바로잡아 결코 흐지부지 용서하는 법이 없는 엄정함이 있었고 재주보다 선행을 강조하여, 

    “너희들이 비록 글을 잘 짓는다는 명성이 있지만 나는 그 일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다만 너희들이 선행을 한다는 말을 듣는다면 나는 기뻐하면서 잊지 않을 것이다.” 

    라고 했다하니, 어머니로서 장계향의 인성교육이 어떠했는가를 반증한다.

     

     

    퇴계학파의 대모

     

    정부인 장계향은 퇴계의 학통을 잇는 학봉 김성일 - 경당 장흥효 - 석계 이시명 - 갈암 이현일 - 밀암 이재로 이어지는 중심에 있었던 여성이었다. 말하자면 장흥효를 아버지로, 이시명을 남편으로 이현일을 아들로 둔 딸이자 부인이자 어머니였다. 일찍이 퇴계학파의 적통인 아버지 경당 장흥효의 가르침을 받아서일까 항상 몸을 삼가고, 공경하는 생활을 하였다. 이 같은 경신사상 외에도 성인지향사상, 인간평등사상, 애민사상, 중용사상 등을 몸소 실천하였다. 또 이 시기 내외 구분이 심하여 여성에게 부담이 컸던 어려운 사회적 정황 속에서도 장계향은 선비의 길을 택한 이시명에게 현명한 몸가짐과 성실하고 애정 어린 삶의 자세로 남편의 길에 보탬을 주었고, 이러한 헌신적 보살핌은 자녀들에게도 이어져 칠남 삼녀를 모두 훌륭히 성장시켰으며, 칠남을 세칭(世稱) 칠현자(七賢子)로 칭송받도록 하였다. 특히 이러한 장계향의 뒷받침이 마중물이 되어 셋째 아들 갈암 이현일이 대사헌 이조판서(정2품)에 오르게 되고 장계향은 사후 정부인에 추증되었다.

     

     

    요리백과 음식디미방

     

    정부인 장계향의 업적 중 특히 빛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자신의 지식을 정리해서 쓴 순 한글 조리서인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이다. 이 서적은 1672년경에 저술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서적 표지에는 규곤시의방(閨壼是議方)으로 쓰여 있고 첫머리에는 음식디미방이라 제목하고 궁체의 붓글씨로 기록되어 있다. 

    현존하는 한글조리서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146종의 음식 조리법, 저장, 발효식품, 식품보관법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 중에는 53종의 술 제조법도 포함되어 있다. 이 서적은 가문에 대대로 전해오거나 스스로 개발한 조리법을 글로 써 놓은 독자적 기록물로서 며느리나 시집갈 딸에게 주기 위하여 정리하였다고 한다. 내용에는 자신의 종가뿐만 아니라 ‘맛질방문’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이웃마을의 요리도 기록하고 있다. 음식디미방은 아시아 여성에 의해 쓰인 가장 오래된 조리서로 음식문화사에 특별한 의의와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조선 중후기 양반가의 식생활과 문화를 짐작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가 된다. 

    장계향은 책 말미에 이러한 당부를 남겼다.

    “이 책을 이리 눈 어두운데 간신히 썼으니 이 뜻을 알아 이대로 시행하고 딸자식들은 각각 베껴가되 이 책을 가져갈 생각을 말며 부디 상하지 않게 간수하여 쉽게 떨어 버리지 말라.”

    현재 음식디미방은 정부인 장계향이 병자호란을 피해 남편 석계 이시명을 따라 이거한 석계종택이 있는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을에서 계승․보존하고 있으며, 음식디미방 체험관, 여중군자 장계향 예절관, 전통장류 홍보관 등을 통해 340여년을 이어온 조리비법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전통주 체험관에서는 칠일주를 직접 빚을 수 있는 체험교육도 받을 수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사회사업가

     

    정부인 장계향은 빈민규휼을 통해 애민사상을 몸소 실천한 사회사업가이기도 하다. 재령이씨 영해파 문중의 큰살림을 맡아 살면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더없이 피폐해진 민초들을 구하기 위해 집안의 재산과 곡식을 풀었다. 곡식이 떨어지자 도토리 죽을 쑤어서까지 민초들의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과 어려움에 처해 있는 이웃들에게 구휼하고 도와주기를 자신의 깊은 근심처럼 여기고 자신의 가난과 곤궁을 이유로 게을리 하는 일이 없었다. 또한 음식을 보내주고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못하게 하니, 그녀의 인품은 추후 사람들까지 모두 감동시키고, 그들 또한 그 은덕에 보답하고자 그녀처럼 착하고 바른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사대부 집안의 며느리로서 정부인 장계향은 베풂과 나눔의 정신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현재 시아버지인 운악 묘소 부근에 넓게 형성된 도토리나무 군락도 그 당시 그녀가 중심이 되어 조성한 것이다. 영양 두들마을 석계고택 부근에 많이 보이는 오랜 도토리나무도 이런 남다른 사연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옛집엔 그리움이 묻어난다 했던가? 고택이 아름다운 것은 산천의 덕분이라기보다 아름다운 정신이 깃들었기 때문이라 한다. 인량리 충효당 입구, 400년이 훌쩍 넘은 은행나무 아래에서 겸손함과 애민사상을 몸소 실천하신 우리의 어머니인 여중군자 장계향의 여운을 다시금 느껴본다.

     

     

     

  • 컬처라인 문화메신저 글쓴이 : 컬처라인 문화메신저 경상북도 북부권 11개 시군의 문화예술 관련 정보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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