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아_바람 따라 구름 따라]영양 주실마을 [0]

“앞치마 하셔야 해요.” 옆에 있던 통통하고 키가 작은 여자가 미수에게 앞치마를 내밀었다. “안 가져 왔죠?” “네, 고맙습니다.” 미수는 조심스럽게 앞치마를 받아 들었다. 분홍빛에 포크를 들은 돼지가 노...

[이선아_바람 따라 구름 따라]상주 은자골마을 [0]

두부처럼 보였지만, 하얗고, 네모난 백설기였다. “먹어.” 나는 백설기 비닐봉지 속에 얌전하게 담겨 있는 백설기를 조금 떼어 입에 넣었다. 마르고 뻑뻑해서 잘 씹히지 않았다. 입 속에 넣고, 물고 있었다. 천천히 씹고 삼키기를 반복했다. 쌀가루가 ...

[이선아_바람 따라 구름 따라]의성 산운마을 [0]

진유의 걸음이 빨라졌다. 여관 목욕탕이란 이정표가 보이자 뛰기 시작하고, 비닐 봉투 안에 담긴 두부가 몸을 흔들자, 바닥으로 물이 떨어졌다. 비닐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감긴 진유의 발이 땅에 잘 닿지 않았다. 비탈길에서 진유는 숨을 한 번 크게 토하고 계속 달렸다. ...

[이선아_바람 따라 구름 따라]영덕 인량마을 [0]

기차가 지나간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지나간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지나간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서 지나갔다. “면접 어땠어? 은하수?” 술잔에 소주를 따르며 내가 물었다. “야야, 흘리지 말고, 너는 맨날 술 ...

[이선아_바람 따라 구름 따라]울진 소광마을 [0]

오늘부터 만성 갈 것. 돈 조났음. 안 가면 혼날 꺼심. 한번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 엄마의 글씨는 언제나 바람에 날렸다. 밥도 먹기 전에 쪽지를 보자, 한숨부터 나왔다. 만성 학원은 선생들이 까다로웠다. 통로도 좁고, 강의실도 좁았다. 강의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

[이선아_바람 따라 구름 따라]청송 참소슬 마을 [0]

G열 6번 G, F, E, D열을 지나 크게 한숨, C, B, A. 다시 한숨. A열 까지는 아니더라도, C열. 변수를 두고, 중간에 게을러질 때도 있을 테니, 조금 여유를 부린다고 치고, E열. ‘앉을 수 있을까?’ E열은 창문이 곁에 있어, 가...

[이선아_바람 따라 구름 따라]예천 금당실마을 [0]

1. 명철과 은영의 이야기 은영은 멀건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아?” 명철은 가져온 복숭아 통조림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오늘은 기분이 좀 어때?” 은영은 여전히 창밖에 시선을 꽂고 있었다. “며칠...

[이선아_바람 따라 구름 따라]안동 내앞마을 [0]

1. 밤길 원은 잠깐 걸음을 멈췄다. 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새치름한 구름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더니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어디선가 어슴푸레 불빛이라도 보이면 좋으련만, 원의 눈앞엔 작은 오솔길이 누런 몸을 희미하게 드러내놓고 있었다. 길을 더듬자...

[이선아_바람 따라 구름 따라]영주 무섬마을 [0]

"돌아가려고." 순간 초침이 멈췄다. 수화기 넘어 김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이유가 뭐니" 멈칫 거리며 내가 물었을 때, 김은 대답 대신, 낮고 긴 한숨을 토했다. 약속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지만 김과의 통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이선아_바람 따라 구름 따라]봉화 닭실마을 [0]

귀밑에서 찬바람이 느껴졌다. 정은 눈을 떴다. 습관처럼 시계를 찾았다. 여섯 시 반이였다. 몸을 일으켜, 출근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온 몸이 욱신거리고 왼손의 어딘가가 쓰렸다. 정은 지난밤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어떻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