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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 거니는 상주]상주말 마음 수첩
    컬처라인 | 2023-04-03 프린트 퍼가기
  •  

     

    시로 거니는 상주

     

    상주말 마음 수첩

     

    글, 사진 황구하

     

     

    상주에 시집와 산 지 어언 30년이 지났습니다. 처음 상주에 와서 언어 때문에 고충을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합니다. 외국도 아닌데 왜 그렇게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부끄러워 다시 묻지도 못하고 속으로 얼마나 끙끙댔던지요. 지금도 여전히 언어의 벽에 부딪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되묻거나 미루어 짐작하게 되는데요. 그 또한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만큼 언어는 지역의 문화, 역사, 그리고 정신이 응집된 삶의 무늬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야성이지요. 깊어가는 가을, 마음의 수첩에 적어놓은 상주말 몇 개 꺼내 봅니다. 

     

     

     

     

    1. 참어로

    “황구하 시인, 오늘 날씨가 좋아요. 낮술 한잔하다가 전화했어요. 싸랑합니다아아아아~.”

    김주대 시인의 목소리가 잠자리처럼 불쑥 날아들었습니다.

    “아이고, 지금 날씨가 좋아서, 낮술이 좋아서 전국 이천 명 애인들한테 빙빙 전화 돌리고 있죠? 참어로 싸랑합니다아~.”

    쨍한 가을볕 묻어나는 ‘참어로’에 힘을 실어 화답했는데요. 상주사람들은 ‘달이 뜬다’를 ‘달이 떤다’로 소리 내거나 표기하는 게 다반사지요. ‘참어로’는 어쩌다 김주대 시인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2018년 5월 김주대 시인 겸 문인화가의 귀향 그림전이 있었습니다. 서울 인사동에서 큰 전시를 마치고 그를 사랑하는 고향 사람들 요청으로 상주 중앙시장 빈 상가에 부랴부랴 전이 꾸려졌는데요. 그때 김주대 시인의 어머니께서 노구를 이끌고 떡을 푸짐하게 해오셨지요.

     

    시인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전시장에 들른 어느 분이 어머니께 김주대 시인의 책 『시인의 붓』에 사인을 해달라고 청했나 봅니다. 어머니께서 시인 대신 사인을 해주게 되었는데 뒤늦게 시인이 미안하다며 옆에다 다시 사인을 하는 해프닝이 있었지요. 그런데 책을 구입한 분은 어머니께서 해주신 “우리 아들 김주대 엄마 홍순희” 사인을 받을 수 있어 더없이 기쁘고 감동이라고 했습니다. 

     

    김주대 전시장 그림

     

    그때 방명록을 들추다가 “우리 아들 참어로 장하구나 엄마가, 홍순희”라고 적어놓은 어머니 글귀를 보게 되었는데요. 순간 코끝이 시큰했습니다. 김주대 시인도 깜짝 놀라 사진을 찍고 그 사연을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순식간에 ‘참어로’에 담긴 어머니의 사랑, 어머니의 삶, 어머니의 눈물, 어머니의 얼굴, 어머니의 말씀, 어머니의 손, 어머니의 떡까지 무량무량 번져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의 품에 있는 김주대 시인 관련 페이스북 덧글에는 어김없이 ‘참어로’가 등장하곤 했지요.

     

    “방 한켠에 통곡의 방이 있었으면 엉엉 울었을… 잠시 잠깐 지나가려다 울고 갑니다.”라는 전시장 방명록에 적힌 독자의 심정처럼 이후 그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참어로’는 김주대 시인과 어머니 홍순희 여사를 상징하는 뜨거운 말로 자리매김 되었습니다. 함창 예주에 살고 계시는 시인의 어머니는 안녕하신지, ‘참어로’ 평강하시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김주대 시인의 시 한 편을 읽어봅니다.

     

    옛날부터 우리 엄마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나도 이제 꽤 나이 들었다 생각하며 찾아갔는데

    홀로 사는 엄마는 어느새 또 나보다 나이가 많아 있었다

    흰머리 이고 저만큼 가신 당신을

    서둘러 따라가 동무해주지 못하는 그것이 오늘 슬펐다 

     

    ―김주대, 「엄마」 전문(『살며―시』, 지식을만드는지식, 2013)

     

     

     

    2. 달구와 닭비실꽃

    맨드라미를 볼 때마다 할머니가 생각납니다. 곡식을 거두는 철, 꽃도 거두어야 합니다. 어릴 적 집안 어른들한테 어깨너머 배운 것인데요. 한해살이 꽃들은 씨앗은 씨앗대로 뿌리는 뿌리대로 거두어 보관했다가 봄에 다시 뿌리거나 심어야 튼실하게 잘 큰답니다. 추수철 온 식구가 들녘에 나가면 집안일은 할머니 차지였지요. 연례행사처럼 맨드라미 모가지 댕강 끊어 처마에 거꾸로 달아놓는 일도 잊지 않았습니다. 사랑채 처마에 종처럼 매달린 붉은 맨드라미가 바람에 살풋 살풋 흔들리면서 말라가는데요. 씨앗 보관도 보관이지만 마르는 채로 꽃을 더 오래 보기 위함이라는 걸 커서 알았습니다. 

      

    가을이 되기 전 한여름에는 맨드라미 꽃잎을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고 화전도 부쳐 먹었는데요. 찹쌀가루를 익반죽해서 동글납작하게 빚어 맨드라미 꽃잎과 대추, 쑥을 올려 엎어놓은 솥뚜껑에 지졌지요. 꿀을 묻혀 먹으면 그대로 별미였습니다. 대추나 쑥, 맨드라미가 배탈 잦은 여름철에 약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맨드라미

     

    저 달구 좀 바래이, 두 눈 뚱그렇게 뜨고 앉아 있는 저 암딱 말이다 벌써 이레째 알 하나 품고 있데이 요전 앞엔 댓 개 품어 삼치레 지나 알 안 깠겠나 빙아리 말이라 니 마리는 노랑이고 한 마리는 얼룩이드라 요전 암딱 거 내가 실쩍 갖다 넣은 기 얼룩이지 시푸다 저 암딱 장딱캉 새끼들 거느리고 모가지를 요래 빼고는 엉디를 삐딱빼딱 어찌나 폼 재미 나부대는지 하도 우스버 고마 희뜩 디비질 뻔했데이 조것들 이뻐가 오미가미 모시 슨나 뿌리주믄 하이고 분답시러버라 한바탕 난리 안 지기나 근디 아따 조 새끼들찌리 얼룩일 따돌리는 기라 얼룩이 여불때긴 얼찐거리지도 않고 먹을 기 있어도 지들찌리만 사바사바하고 이리 종종 저리 종종 노오랗게 몰려다니드라 어쩌다 얼룩이 지 에미 가차이 갈라치믄 고단새 얼룩일 에워싸고 하여튼 참 얄궂어래이 백지 나 혼자 솔갑증 나 감질러쌓지 자시 치다보믄 저 에미란 것이 개살떠는 꼬라지 숭악허데이 나 몰라라 냅두드만 결국 얼룩일 내치드라 어찌 된 긴지 얼룩이가 저짝 디엄 기티 죽어 나자빠져 있는기라 괭이가 채가다 떨쿤 것도 같고 근디 참 희한치 얼마 못가 장딱이 시름시름 고마 가뿌대 그라고 미칠 있자니까 저 암딱 지가 난 알 하날 품는 기라 그래가이고 저 몸띠 좀 봐라 윤기 자르르허던 터리기는 푸석푸석허지 거기다 그기 뭐꼬 원형탈모증인가 뭔가 저래 숭숭 구영나삐고 폭삭 사그라진 몰골하고는 에그 얼매나 독한지 뭘 지대로 먹지도 않고 저래 알 하나에 지 목숨 다 걸고 있는 기라 시상에 저걸 우짜믄 좋노 저 알 말이다 실쩍 바꿔치기 할라캐도 당최 자리도 안 뜨고 하루점두록 씨떵거리맨치로 눌러붙어 있으이 야야, 저 머저리 암딱 참말로 우짜믄 좋겠노 

    ―황구하, 「머저리」 부분

     

    상주 모동에서 ‘달구’를 키우는 할머니한테 이야기를 듣고 옮겨본 시인데요. 이 시를 정리하면서 우리말이 이렇게나 뜨끈하고 멋스럽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특히 “희뜩 디비질 뻔했데이”는 우습거나 화가 날 때 감정의 온도가 상승해서 하는 말인데 주로 술좌석에서 종종 듣는 말입니다. 

      

    맨드라미는 계관화(鷄冠花)라고 하지요. 정말 닭 머리 위 볏과 생김새가 닮았습니다. 꽃 머리가 무거워서인지 기우뚱 피어 있는 ‘닭비실꽃’을 보면 뒤뚱거리며 먹이를 쪼는 닭의 발소리가 들려옵니다. 눈물겨운 그 ‘머저리’ 닭도 함께 생각납니다. “하루점두록 씨떵거리맨치로 눌러붙어” 할머니 이야기 들으며 ‘여불때기’ 호박전이라도 부쳐 먹고 싶습니다.

     

     

    추수철 상주 들녘

     

     

    3. 우옌따나 니캉 내캉  

    얼마 전 모 방송국 텔레비전에서 ‘자연의 철학자들’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강원도 영월에서 자급자족 농사를 지으며 글을 쓰는 유승도 시인의 생활이 나와서 챙겨 보았는데요. 나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망경대산 중턱의 밭이랑을 만드는 부부의 모습이었는데요. 시인의 아내 김미숙 씨가 끈을 허리에 묶고 쇠스랑을 지팡이처럼 짚으며 걸어가면서 쟁기를 끌고 유승도 시인은 뒤에서 쟁기를 잡아 밀고 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시인은 “뒤에서 방향을 잡고 고랑을 잘 타야 하기 때문에 힘들다.”고 하니까 아내는 웃으면서 “소예요. 저는 소예요.” 하는데 그 눈빛이 너무도 맑고 따뜻해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아내는 “하고 싶어서 하죠. 힘들면 안 하고 또 힘든 일은 안 만들어요.” 하는데 어쩜 부부가 그리도 천생연분일까요. 유승도 시인도 “살면서 뭐 바쁠 게 없지. 또 바쁜 일은 안 만들어.” 하니까요. 

      

    늦가을 억새

     

    파란 하늘에 억새가 눈부신 며칠 전, 유승도 시인을 만나 방송 본 이야기를 하니 대학 생활 중 선후배 사이로 아내를 만났다고 합니다. 유승도 시인의 아내 김미숙 씨는 상주 이안이 고향입니다. “당신이랑 나랑 살았으면 좋겠다.”고 충청도 서천 고향 걸음으로 느릿느릿 운을 뗐다는데요. “아이고, 우리의 경상도 아가씨 김미숙 씨가 ‘우옌따나 니캉 내캉 살자’고 했는지 알았어요.” 우스갯소리를 했더니 또 느릿느릿 “경상도 부지런한 여자가 그래도 며칠 뜸을 들이더니 답이 와 뭐 결혼을 했어요.” 합니다.

     

     

    닭 한 마리를 붙잡아 다리를 묶어 처마 밑에 놓으며

    빨리 잡아주고 갈까? 물으니

    어이구 잡는 건 내가 더 잘 잡는데, 그냥 놔두고 어서 갔다 오세요

     

    아내도 산짐승이 다 됐다

     

    ―유승도, 「아내」 전문(『사람도 흐른다』, 도서출판 달을쏘다, 2020)

     

     

    사실 산속에 사는 게 낭만일 수만은 없습니다. 산속 집을 구할 때부터 기우뚱한 집은 여전히 뚝딱거리며 망치질을 하고 풀과 나무는 제 마음껏 기지개를 켜고 새와 쥐와 뱀 등 야생들이 더 신이 나는 곳인지도 모릅니다. 어찌 보면 생존을 위해 더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내야 하는 고된 삶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살아진다.”고 합니다. 때가 되면 무엇을 심고 또 어느 때가 되면 작물을 거두고 또 밭갈이를 하며 산에 사는 사람은 어느새 산이 되었습니다. 문명의 속도가 아닌 사람의 속도로 서로에 대한 존재의 귀중함을 발견하며 ‘우옌따나 니캉 내캉’ 잘 살고 있는 이 부부는 이미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자연의 철학자’입니다.

     

     

    유승도 시인 책들

     

     

  • 황구하 글쓴이 : 황구하 충남 금산에서 태어났다. 영남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동양철학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2004년 『자유문학』으로 등단하였다. 시집 『물에 뜬 달』이 있으며 현재 반년간지 『시에티카』 편집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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