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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이 있는 풍경]지지 않는 별, 약포 정탁 선생을 만나다
    컬처라인 | 2023-04-17 프린트 퍼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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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림이 있는 예천, 그 속으로

     

    지지 않는 별, 약포 정탁 선생을 만나다

     

    글. 전미경

     

      

    완연한 가을빛이다. 갈대가 반기는 길 따라 약포(藥圃) 정탁(鄭琢, 1526~1605) 선생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이 고운 빛깔이 오래전에도 같은 모습이었을 거라는 생각에 시대는 달라도 같은 공간, 역사의 한편에 동승하고 있다는 느낌에 왠지 모를 뿌듯함이 인다. 

     

    고즈넉한 산자락에 위치한 도정서원(道正書院), 안내도를 시작으로 정돈된 길 따라 걸음을 옮기자 깎아지른 경사면 아래 서원을 품은 내성천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강은 계절 변화에 아랑곳없이 흐름에 순응하며 진리를 향해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고 있다. 마치 선생의 굽히지 않는 올곧은 성품인 양 의연한 자세로 물길을 잇고 있다. 서원을 휘감은 물줄기가 세상 소리에 동요하지 않고 진리만을 향해 흐르는 것 같아 경건함이 일기도 한다. 

     

     

     

     내성천

    도정서원 입구

     

                                     

    선생이 걷던 이 길을 수백 년이라는 시간을 건너와 걸어보는 발걸음에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진다. 그의 곧은 성품과 덕망이 새겨진 이 터에서 역사를 되짚어보는 순간이기에 의미가 깃들지 않을 수 없다. 선생은 시대를 앞서갔지만, 그가 일군 삶의 철학만큼은 현세에도 깊은 울림으로 남아 후세인의 본이 되고 있다. 

      

    약포 정탁은 과거에 급제해 오랜 기간 관직에 머물며 공직자로서 충의와 청렴을 몸소 실천한 인물이다. 그가 세상을 바라볼 때 기울인 통찰력과 따뜻한 인간미는 시대를 함께한 이들에겐 의지처요 바람막이였을 테다. 겸허한 자세로 탐욕 부리지 않고 불의에 굴하지 않았기에 선생이 더욱더 우러러 보이는 것이 아닐까? 별세한 후 그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사당이 세워졌으며 그로부터 30년 후에 사림과 후손들이 강당채를 건립함으로써 도정서원으로 승격되었다. 사당에는 셋째아들인 정윤목(鄭允穆)도 함께 기렸으나 서원철폐령이 내려지면서 더는 서원으로서의 기능을 갖지 못했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복원이 이루어짐으로써 도정서원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었다. 

      

    경내에 들어서자 문루인 팔덕루(八德樓)에는 시대를 건너온 대학자 “정간공 약포정탁 선생 탄신 제495주년 기념다례” 펼침막이 선생의 의지만큼이나 결연한 모습으로 게시돼 있다. 지난해 탄신기념 다례 펼침막이 아직도 그대로다. 후손들에겐 선대를 향한 마음이 성지와도 같은 곳이기에 그들의 결속력이 느껴지기도 했다. 전통에 대한 길들여짐과 동시에 존재해왔던 것의 편안함 때문일까? 서원 안으로 들어갈수록 낯설지 않은 익숙함이 곳곳에서 배어난다. 유서 깊은 땅에서 만난 충과 효의 뿌리가 경내에 깃들어 있음인지 훈훈한 기운마저 감돈다.

     

     

    팔덕루(八德樓)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 도정서원 편액과 마주한다. 누마루 위 붓끝에 새겨진 필체에선 당대 최고의 문필가 못지않은 일필휘지의 힘이 느껴진다. 동시대에 기울였을 학문의 깊이를 만난 듯 근엄한 기개도 엿보인다. 이곳에서 선생의 뜻을 받들고자 선현들은 후학들에게 강연과 시연을 수없이 베풀었을 터, 학문을 알기에 앞서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근본 도리를 먼저 가르치고자 부단히도 노력했을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스승과 제자가 수없이 오르고 내린 걸음에는 꿈을 향한 신념이 학문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깊고 단단히 새겨졌을 테다. 인적이 뜸한 돌계단 가장자리에는 시간을 보듬어 온 이끼만 자리할 뿐 모두가 고요 속에 묻혀 있었다. 한때 이곳을 거쳐 간 이들이 일군 묵언수행의 흔적은 아니었는지, 침묵의 돌계단에서 그 해답을 찾아본다.

     

     

     

    도정서원(道正書院)

     

    지경당(持敬堂)과 자성재(自省齋)가 소담한 모습으로 길손을 반긴다. 마주한 두 숙소는 한때 저당 잡힌 젊음들이 청운의 꿈을 키우던 곳 아니었던가. 불어오는 소슬바람에도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쓰린 통증을 단 채, 보장되어질 내일을 위해 악착같이 견딘 시간이었을 테다. 그 기다림은 빛으로 나아가는 세상이며 길목이었을 것이다. 빈 댓돌만이 햇살을 이고 시공을 넘나들 뿐 주변은 적막에 갇힌 지 이미 오래다. 마주한 숙소 암수 맞물린 돌쩌귀가 빈방을 지키며 세월의 이력을 더듬고 있다.

      

    선생이 일군 흔적을 되짚어보면서 시대가 바라는 의인을 생각한다. 동시대를 살다간 이들에겐 충신으로서의 면모가 귀감을 이루었을 터, 그것은 곧 시대의 자랑이요 버팀목이었을 것이다. 시국이 어수선할 때일수록 지도자의 자리는 더 큰 무게감을 갖는다. 요즘같이 불안정한 시국에 그의 행적이 다시금 조명되는 건 진정한 충신과 의인을 만나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임진왜란 중 부산포로 들어오는 왜군을 공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양 의금부에 투옥된 이순신을 위해 정치적 생명을 걸면서까지 구명운동에 나섰던 정탁 선생이다. 당시 누구라도 이순신을 살려달라고 하면 목숨을 잃게 되는 상황에서 정탁은 선조께 이순신을 구해달라는 상소문을 올렸으니 바로 『이순신 신구차』다. 신구차(伸救箚)란 목숨을 구하는 것을 아뢰는 상소문이다. 이순신 구명에 좀체 돌아서지 않던 선조가 마침내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건 정탁의 충성과 어진 마음, 그에 더해 임금을 향한 신하의 공감 능력 때문이었다. 그 어떤 이의 상소와 호소에도 흔들리지 않던 선조는 선생이 올린 상소문인 『이순신 신구차』를 통해 이순신에게 두 번째 백의종군을 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덕에 이순신은 진퇴양난에 놓인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위대한 인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선생의 사려 깊은 통찰력과 혜안을 눈여겨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선현유적(先賢遺蹟)-예천박물관 / 논구이순신차(論救李舜臣箚) _ 예천박물관

       

    얼마 전 예천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이순신 신구차』를 보면서 약포는 상소문을 한 획씩 써 내려가며 몇 번이나 가슴을 쓸어내렸을까를 생각했다.『이순신 신구차』총 1,298자에는 정유재란 당시 풍전등화에 서 있던 나라를 구하기 위한 선생의 간절함이 행간에 구구절절 배어 있는 듯했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에 굴하지 않고 이순신 구명운동에 나선 정탁의 절개 앞에 숙연해지기도 했다. 이순신을 시대의 영웅이라면 그 영웅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정탁 선생 역시 시대가 낳은 진정한 위인 아니겠는가.

      

    약포는 누구보다 선조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았기에 굳게 닫혀있던 임금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 공감을 통해 위로가 필요한 요즘, 그의 인간적인 행적에서 우리는 사람의 향기를 맡는다. 이순신은 “나를 천거한 사람은 서애(류성룡)요, 나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은 약포다.”라 했으니 불의에 굴하지 않고 정의로울 수 있는 용기야말로 시대가 바라는 진정한 영웅 아니겠는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선조의 눈치만 보는 위정자들 앞에서 보란 듯 소신 있게 발언할 수 있는 당당함,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 속에서 무엇을 느끼며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올곧은 충성심은 시대를 건너온 지금에 와서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빛을 발할 수 있기에 시공을 뛰어넘어 선생을 만난 건 보람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옥중에 있는 이순신을 구명하고자 상소를 올려 죽음을 면하게 한『논구이순신차(論救李舜臣箚)』, 그 초고본이 수록된『선현유적(先賢遺蹟)』을 국가 보물로 지정하고자 문화재청에 신청한 상태라 하니 지역민으로선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요 자랑이기도 하다. 

      

    정충사(靖忠祠) _ 예천박물관

     

    지지 않는 별 약포 정탁, 그는 누가 뭐래도 당대 최고의 충신이었다. 당쟁에 휘말리지 않으면서도 정의를 위한 일이라면 몸을 사리지 않는 곧은 절개, 그의 숭고한 업적이 다시금 조명되는 건 허기진 우리의 마음을 달래줄 그 누군가가 지금 시대에도 간절히 필요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선생의 유물을 보존하고 관리하며 얼을 추모하는 약포 유물각, 정충사(靖忠祠)에서 그의 넋을 기렸다.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묘소, 그 아래 세운 청주정씨재실(淸州鄭氏齋室), 모두가 선생을 기리고자 제향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시대가 낳은 명재상 정탁이야말로 지역민에겐 최고의 가치이며 보물적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청주정씨재실(淸州鄭氏齋室)_ 예천박물관

     

    지금 우리 시대에 정의를 위해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옳고 그름을 소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또 자리에 급급한 나머지 불의를 보고도 차마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는 이들 앞에 약포의 정신은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서고 있는 것일까? 비록 진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혜안을 기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값진 일도 없을 것이다. 한 권의 책이나 한 사람의 인품을 통해서도 이정표가 그려지듯 선생이 일군 의와 충, 굽힘 없는 기개를 보면서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불의에 굴하지 않고 정의와 진리를 향해 나아갔던 시대의 영웅, 그러면서도 가슴만은 따뜻했던 약포 정탁, 우리가 그를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그는 지지 않는 별이 되어 오늘도 후세인 가슴에 한 줄기 빛을 쏘아 올리고 있다.

     

    약포 영정(보물 제487호) _ 예천박물관

     

     

     

  • 컬처라인 문화메신저 글쓴이 : 컬처라인 문화메신저 경상북도 북부권 11개 시군의 문화예술 관련 정보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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