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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종화_의성 시가기행, 산들에 대한 이야기]의성의 명소 빙계계곡 『빙산의 빙혈과 풍혈, 그 신비로움에 대하여』
    컬처라인 | 2023-08-07 프린트 퍼가기
  •  

     

    안종화와 함께 떠나는 의성 시가기행

     

     

    의성의 명소 빙계계곡

              

    『빙산의 빙혈과 풍혈, 그 신비로움에 대하여』

     

    글. 안종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어째서 시(詩)를 배우지 않느냐? 시는 감흥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물정을 살필 수 있게 하며, 여러 사람과 어울릴 수 있게 하고, 원망과 울분을 발산할 수 있게 하며, 가까이는 어버이를 섬기고, 멀리는 임금을 섬길 수 있게 하며, 새, 짐승, 풀,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

    (子曰 小子는 何莫學夫詩오 詩는 可以興이며 可以觀이며 可以群이며 可以怨이며 邇之事父며 遠之事君이오 多識於鳥獸草木之名이니라)

     -『논어(論語)』제17편 양화(陽貨) 제9장 -

     

    빙산원경. 가음지 뒤편 야트막한 산이 빙산이다. 그 뒤 산과의 사이에 빙계계곡이 있다. 

     

     

     

    한시(漢詩)의 의미를 살펴 의성지역 이곳저곳 지금까지 살펴보았다. 이번 호에는 의성의 대표적 명승지 빙계계곡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과거에 얼마만큼 유명하던 곳이었나 기록을 뒤져보았다. 그다음 호에는 이 산에 자리하고자 하던 종교들, 그다음 호에는 빙계 8경을 비롯하여 즐길 것이 무언지 알아보고자 한다.

     

    냉장고와 에어컨이 없던 시절. 의성의 빙산 일대는 매우 신비스러운 곳이었다. 중국 명나라 때의 학자 왕사의(王思義)가 지은『속삼재도회(續三才圖會)』에 의성의 빙산이 소개되어 있다. 

     

     

    “빙산은 경상도 의성현(義城縣)의 동남쪽 40리 되는 곳에 있다. 빙산의 큰 바위 아래에 돌구멍〔石穴〕이 있는데, 구멍의 입구는 높이가 3자, 폭이 4자 8치, 가로의 길이가 5자 1치이다. 이것을 풍혈(風穴)이라고 한다. 또 하나의 구멍이 바위 아래에서 곧장 밑으로 나 있는데, 너비가 한 길이며, 길이는 겨우 한 길까지만 잴 수 있으며, 그 아래로는 구부러져서 깊이를 잴 수가 없다. 입하(立夏)가 지난 뒤부터 얼음이 엉기기 시작하여 몹시 더우면 얼음이 굳게 얼다가 장마가 들면 얼음이 풀린다. 봄가을로는 춥지도 덥지도 않으며, 겨울에는 따뜻한 기운이 봄과 같다. 이것을 빙혈(氷穴)이라고 한다.”

     

    이와 비슷한 기록을 『여지도서(輿地圖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부계기문(涪溪記聞)』,『미수기언(眉叟記言)』,『여헌집(旅軒集)』 등에서도 살펴볼 수 있었다.

     

    빙계의 여름

     

     

    지상엔 온통 더위 천지

    광한전(달나라에 있다는 궁전) 월궁으로 달아날 재주 없으니

    설악산 폭포 생각나고

    풍혈 있는 빙산이 그리워라

    열자의 바람 타기를 못 배웠으니

    반랑의 화산 사랑함을 공연히 바라네1)

    어쩌면 악독한 관리가 가고

    고인 반가이 만나 기쁘게 놀까2)

    有地盡炎

    無階奔廣寒

    瀑川思雪岳 

    風穴憶氷巒

    未學乘飆列

    空希愛華潘

    何當酷吏去

    得與故人歡

    『동문선(東文選)』제9권에서

     

     

     

    윗글은 고려시대의 선승(禪僧) 석원감(釋圓鑑)의 고열음(苦熱吟)이란 제목의 오언율시(五言律詩)이다. 피서하기 무척 좋았나 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신라시대 고운 최치원이 해인사로 향하기 이전 경주의 남산, 합천의 청량사, 지리산의 쌍계사, 함포의 월영대, 동래의 해운대, 남악의 단석사 등과 더불어 즐겨 찾던 곳이었다. 

     

      

     

    가을날의 빙계계곡 

     

    이외에도 유호인, 허목, 구봉준, 장현광 등 시인 묵객과 피서객이 들렀다. 서원마을 앞 계곡의 큰 바위 하나에는 이여송이 쓴 것으로 알려진 ‘빙계동(氷溪洞)’이라는 글이 있으며, 그 위에는 ‘경북팔승지일(慶北八勝之一)’이라는 비가 있다. 1933년 대구일보사 주최로 경북의 절승을 선발할 때 도민의 투표로 ‘경북 팔승’의 하나로 뽑혔던 사실을 기념하여 세운 기념비이다. 그처럼 유명한 관광지였다. 유랑의 시인 김병연이 한 수의 시를 남기기도 하였다. 

     

    경북팔승기념비

     

     

    작은 시냇가 굽이치는 곳에 송사리 떼가 헤엄치고

    해묵은 바위에 꽃이 드리워져 피었구나.

    潤曲魚回入

    岩懸花倒開

     

     

     

    그러던 것이 중국에까지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더했다.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 1597~1673)의 시문집(詩文集)에 실려 있는 “의성의 수령으로 가는 엄중숙3)을 전송하다.(送義城嚴使君重叔)”라는 시가 그러한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엄조 전에 승명 입직 싫어하여서4)

    외직 나가 이천 섬의 수령 되었네

    허리에는 붉은 인끈 차고 있으며

    말 머리엔 금빛 실을 잡아매었네

    그댄 보지 못하였나

    조령 고개 남쪽 있는 칠십 개의 고을 중에

    의성 홀로 특이한 곳이 있어 중국까지 이름난 걸5)

    그 특이한 곳에 대해 내가 그대 위해 말해 주리

    그 고을엔 음침하고 깊은 굴이 둘 있는데

    한 구멍에선 바람나고 한 구멍에선 얼음 얼어

    밤낮 거센 바람 불고 유월에도 얼음 어네

    유월에는 얼음 있고 겨울에는 얼음 없어

    그 일 아주 기이하여 헤아리기 힘들다네

    내뿜는 숨 큰 땅덩이 안을 다 포괄하고6)

    음 기운이 삭막 북쪽까지 모두 통한 거리

    그곳으로 가는 그대 전송하면서

    노래지어 권면하여 주는 바이네

    바람 보고 정치 교화 행할 것이며

    얼음 보고 청렴결백 결의 다지소

    대장부가 정사 펴매 이 두 사물 같을 경우7)

    새서 황금 사양하려 해도 할 수 없을 거라네

    嚴助厭承明

    出爲二千石

    腰間佩紫綬

    馬頭纏金絡

    君不見

    鳥嶺之南七十州

    義城獨以異境名中國

    異境吾且爲君說

    邑有陰沈兩竅穴

    一穴生風一穴氷

    風怒晝夜氷六月

    六月有氷冬無氷

    此事恍惚尤難測

    噫氣包括大塊內

    凌陰潛通朔漠北

    送君此地去

    作歌以相勗

    風以行政化

    氷以勵淸白

    丈夫爲政有如此二物者

    雖欲辭璽書黃金安可得

     

      

    신비스러운 곳으로 신인손(辛引孫)은 “빙산의 명승은 나라의 으뜸(氷山名勝檀吾東)”이라 읊었다. 조선 정조 때 실학자 성해응(成海應, 1760~1839)은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에서 전국 명승지를 설명하면서 한국 백경[韓國 百景]의 하나로 소개하였으며, 이만부는 그의 『식산문집(息山文集)』에서 전국 50여 개의 산 가운데 하나로 빙산을 소개하였다. 

     

     

    움푹 파여진 듯한 곳이 빙산의 부처막(佛頂), 오른쪽 아래에 서원마을이 있다. 뒤의 산은 비봉산이다.

     

     

    이 고장 출신으로 조선시대 성균관 직강, 창원부사 등을 역임한 오봉 신지제 또한 “우연히 빙애 풍혈을 생각하다 감회가 일어(偶念氷厓風穴 起感)” 한 수의 시를 남겼다.  

     

    푸른 절벽 푸른 봉우리 겹겹이 에워싼 곳

    빙애의 풍혈은 참으로 기이한 경관이로다

    화룡8)도 가을의 서늘함 금하지 못하고

    염제9)가 도리어 오뉴월의 추위 걱정하네

    폐열 식혀주니 벌레의 의심 없을 수 있으랴10)

    홑옷 입기 아주 따뜻한 털옷 더욱 생각나네

    인간 세상에 아름답고 청량한 절경 있으리니

    충분히 헤아리고 자세히 보아야 하리라 

    翠壁蒼巒疊疊環

    冰崖風竇儘奇觀

    火龍不禁三秋爽

    炎帝還愁六月寒

    堪破蟲疑寬肺熱

    更思狐煖㤼衣單

    人間佳境淸凉味

    爛熟商量仔細看

     

      

    빙혈

     

     

    풍혈

     

     

    ---------------------------------------------------------------------------------------------------------- 

     

    1) 송나라 반랑이 화산(華山)을 사랑하여, “언제든 저 상봉(上峯)에 가서 살겠노라.” 하였다.

    2) 오대(五代) 때에 범질(范質)이 벼슬하기 전에 다점(茶店)에 들어갔는데, 마침 여름이므로 손에 부채를 들었다. 그 부채에 글쓰기를, “큰 더위에 혹리가 가고, 맑은 바람에 고인이 온다[大暑去酷吏 淸風來故人].” 하였다. 얼굴이 험상궂게 생긴 한 사나이가 앞에 와서 말하기를, “혹리(酷吏)를 어찌 큰 더위에만 비할 것이겠소. 상공(相公)께서 다른 날에 이 폐단을 깊이 살피시오.” 하고는 가버렸다. 범질이 다점에서 나와 그 부근에 있는 신사(神詞)에 들렀더니, 신상(神像)이 곧 조금 전에 본 그 사람이었다. 그 뒤에 범질이 후주(後周)의 재상(宰相)이 되어 첫머리에 형서(刑書)를 정리하여 형통(荊統)을 만들었다. 

    3) 엄중숙(嚴重叔) : 엄정구(嚴鼎耈, 1605~1670)로, 본관은 영월(寧越), 호는 창랑(滄浪)이다. 1630년(인조 8)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승지와 한성부 좌윤을 지냈다. 1642년에 의성 현령으로 있었다.

     

    4) 엄조(嚴助) …… 되었네 : 내직(內職)에 있는 것을 싫어하여 외방 고을의 수령으로 갔다는 뜻이다. 엄조는 한나라 무제 때의 사람이고, 승명(承明)은 한나라 때 시종신이 숙직하던 거소의 이름이다. 한 무제가 엄조를 회계 태수(會稽太守)에 제수하면서 내린 조서 가운데 “그대가 승명려에 있는 것을 지겹게 여기고 시종신의 일을 고단하게 여기면서 고향을 그리워하기에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바이다.”라고 하였다. 《漢書 卷64上 嚴助傳》

     

    5) 의성(義城)…걸 : 빙산(氷山)에 있는 빙혈(氷穴)과 풍혈(風穴)이《속삼재도회(續三才圖會)》에 소개되어 있음을 말한다. 

     

    6) 내뿜는…포괄하고 :《장자(莊子)》〈제물론(齊物論)〉에 “큰 땅덩어리가 숨을 내뿜는 것을 바람이라 하는데, 가만히 있으면 모르지만 일단 일어났다 하면 만 개의 구멍이 노하여 부르짖는다.〔夫大塊噫氣 其名爲風 是唯無作 作則萬竅怒號〕”라고 하였다.

     

    7) 대장부가…거리 : 지방의 수령으로 있으면서 정사를 잘하면 임금으로부터 상을 받을 것이라는 뜻이다. ‘두 사물’은 바람과 얼음을 말한다. 한나라 소제(昭帝) 때 사람인 두연년(杜延年)이 지방의 수령으로 있으면서 어진 사람들을 아전으로 뽑고 호강(豪强)한 자들을 체포하여 고을 안이 맑아지자, 황제가 새서(璽書)를 내리고 황금을 하사해 준 고사가 있다.《漢書 卷60 杜周傳》  

    8) 화룡(火龍) : 온몸에 불을 띠고 있다는 전설상의 신룡(神龍)으로, 여기서는 여름을 가리킨다.

     

    9) 염제(炎帝) : 여름을 관장하는 신으로, 적제(赤帝) 또는 화제(火帝)라고도 한다.

     

    10) 벌레의…있으랴:『장자(莊子)』추수(秋水)에 의하면 여름벌레가 의심할 정도로 서늘하다는 말이다. 

     

     

     

  • 안종화 글쓴이 : 안종화 사)경상북도산악연맹 학술정보이사
    조문국연구원 연구위원
    의성군청 주민생활지원과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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