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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미경_기다림이 있는 예천, 그 속으로]비경 중에 비경, 선몽대에 오르다
    컬처라인 | 2023-09-20 프린트 퍼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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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림이 있는 예천, 그 속으로

     

    비경 중에 비경, 선몽대에 오르다

     

    글. 전미경

     

      사진. 예천군청

     

     

    더불어 살아간다는 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의 소통이다. 뭇 생명체와 조화를 이루는 삶은 자연의 섭리로, 공존과 공생을 위한 어우러짐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자연이 펼쳐놓은 화폭, 그 속으로 걸어갈 수 있다는 건 세상과의 소통을 의미한다.

     

    경치가 좋기로 이름난 곳을 우리는 명승이라 한다. 사람들이 명승지를 찾아 떠나는 이유는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목적도 있지만, 경치 좋은 곳에서 심신을 수련해 좋은 기운을 얻음으로써 삶의 가치를 높이고 싶기 때문이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며, 산수의 집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선몽대가 바로 그런 곳이다. 

     

     

    사진. 예천군청

      

    빗금 긋듯 경사진 절벽에 세워진 선몽대, 수백 년을 묵향 짙은 역사와 함께 시간을 보듬은 정자다. 난간에 기대서니 내성천 물길과 함께 띠를 이루는 금빛 모래가 정돈된 송림과 어우러져 감탄을 자아낸다. 강 건너 야트막한 산들도 구도 잡힌 그림으로 다가와 선몽대와 조화를 이루니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노니는 꿈을 꾼 후 지었다는 선몽대, 그 뜻을 잘 풀이해보면 신선도 아름다운 경치에 쉬어 갈 정도로 절경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선몽대는 퇴계 이황의 종손자인 우암 이열도(李閱道 1538~1591)가 창건하였다고 널리 알려졌으나, 문화재청 고시 제2021-108(2021.09.06.) 국가지정문화재(명승) 지정 사유 변경에 따라, 그의 부친인 이굉(李宏 1515~1573)이 창건하였다는 것이 새롭게 확인되었다. 하지만 우암 선생의 후손으로부터 창건한 이는 우암 이열도라는 말을 듣고, 건립된 해가 이굉의 회갑이고 이열도가 스물여섯이니 동시대를 살아온 부자(父子)가 함께 이루지 않았을까 미루어 생각해본다. 또 선몽대를 중심으로 왼쪽 바위에 새겨진 遇岩(우암)이란 필체에서도 이열도가 창건했을 개연성에 더 큰 의중이 실린다. 퇴계는 선몽대(仙夢臺) 편액을 직접 써주며 ‘기제선몽대(寄題仙夢臺)’라는 시로 아름다운 경치를 찬탄했다. 신선은 인간이 사는 세상이 아닌, 저 높은 하늘 가까이에 산다고 생각해 선몽대 세 글자 중 유독 ‘선(仙)’ 자를 들어 올려 쓴 걸 보니 형이상학의 선경에 대한 경이로움마저 느껴진다. 

     

     

     

     

    누정에는 시의 현판들로 가득하다. 조선 중기 강직한 성품을 지닌 청음 김상헌은 시문에 선몽대를 옥산과 옥구슬 가득한 정원에 비유하며 신선의 땅이 하도 멀어 오기가 어려우니 이 정자에 오고 감을 소홀히 하지 말자고 했다. 다산 정약용도 예천군수인 아버지 정재원을 따라 이곳에 올라 ‘부친을 모시고 선몽대에 올라’라는 시문으로 당시 느꼈을 감흥 그대로를 솔직하게 담아냈다. 누구라도 이 누정에 오르면 시 한 수 읊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절경에 빠져들게 한다. 선몽대에 걸음 한 문사들은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이곳을 붓끝 세울 최고의 장소로 꼽지 않았을까 싶다. 당시 문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으뜸의 경승지였을 터, 시대를 건너와 지금도 걸음을 내디딜 때면 선현들이 남겼을 굵고 진한 발자국을 생각한다. 당대 최고의 문인인 약포 정탁, 서애 류성룡, 한음 이덕형, 학봉 김성일, 금계 황준량, 우복 정경세도 이곳을 다녀갔으니 석학들은 천혜의 자연경관인 이 비경을 체험한 후 퇴계 시에 화답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깎아지른 절벽에 새겨진 仙夢臺, 이 세 글자를 만나기 위해 풀숲을 헤집은 덕에 눈앞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바위 아래는 낭떠러지로 좀체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다. 뭇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 선몽대 세 글자를 만난 건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바위를 뒤덮고 있는 검푸른 이끼에서 세월의 흔적을 읽는다. 알아주는 이 없고 눈여겨 봐주는 이 없어도 자신이 뿌리내릴 곳이면 어디든 개의치 않고 길을 연 이끼다. 자연에서 얻는 지혜와 깨달음은 가끔 삶의 가치를 새롭게 이끌기도 한다. 선몽대는 바위 위에 기둥을 세워 건립하였기에 보기에 따라 위태로워 보일 수도 있으나 누정의 절묘한 풍광만큼은 가히 압도적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다. 

      

    관리동에서 선몽대로 오르는 길에 바위 계단을 만들어 정자의 기품을 한층 고조시킨 모습에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주변 풍경을 무대로, 선몽대를 세움으로써 화룡점정이라는 최고의 완성품을 만들어냈다. 많은 이들이 왜 선몽대를 예찬하고 걸음을 불러 모으는지 누정에 오르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선몽대의 이름값이 아깝지 않음이다. 주변 경관이 워낙 수려해 이름 없는 시인 묵객들도 말없이 다녀갔을 거란 생각을 놓을 수 없다. 그들은 한갓진 이곳에서 삶의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고 자연으로부터 위로받고자 마음을 모았을 테다. 누구든 선몽대를 방문하면 누정 옆 암석에 새겨진 仙夢臺(선몽대)와 遇岩(우암), 이 두 단어를 눈여겨볼 일이다. 느끼는 만큼 가슴 가득 얻어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열도의 부친 이굉은 퇴계의 조카로 선몽대가 위치한 백송리 마을의 입향조이다. 마을을 개척할 때 이곳에 흰 소나무가 있었다 하여 백송마을로 불려지게 되었다. 백송마을은 진성 이 씨 집성촌으로 박사마을로도 유명하다. 백송마을을 뿌리로, 지금껏 이 마을에서 50여 명이나 되는 박사가 배출되었다는 말을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후손의 안내에 따라 우암 종택을 방문하니 마당에는 잡풀만 무성할 뿐, 사람 손길 외면한 지 이미 오래된 듯 곳곳이 허물어져 있었다. 고택으로서의 가치를 넘어, 입향조 종택이 지니는 역사적 의의를 조명함으로써 복원과 정비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놓을 수 없다.

     

     

     

     

    선몽대 일원은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9호로 예천 8경 중 하나인 제8경에 속하는 비경 중의 비경이다. 이 일원은 선몽대 뿐 아니라 녹음 짙은 솔숲과 유유히 흐르는 내성천, 물길 따라 길게 늘어선 모래밭, 확 트인 시야,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다. 아름다운 풍경은 모든 게 조화롭게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조화란 넘침도 부족함도 없이 있어야 할 그곳에 존재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선몽대 일원은 발길 닿는 모든 곳이 절경이다. 누구라도 풍광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고, 심신 치유의 장소로도 손색없는 곳이다.

      

    강의 흐름에서 고단한 생의 현주소를 읽는다. 흘러가는 강물이 우리네 삶과 닮은 듯 쉼 없이 앞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물길을 바라보니 강이 내어 뿜는 굴곡진 사연을 들어보지 않고는 그 깊이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름다운 승경을 눈으로 귀로 가슴으로 즐길 수 있다는 건 설렘이며 행복이다. 흘러가는 구름 한 점, 스치는 바람 한 조각마저 선몽대에선 예사로 와 닿지 않는다. 걸러내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도 이곳에 서면 훌훌 벗겨지듯 마음 헹구기엔 최적의 장소다. 선대가 즐겼을 비경을 후대인이 같은 무대에서 향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선몽대의 가치를 한층 돋보이게 하는 건 바로 내성천이다. 내성천의 자랑은 단연 모래사장이다. 길게 늘어선 백사장은 어디서도 흉내 낼 수 없는 보물이다. 내성천은 봉화 물야 저수지에서 발원하여 영주 무섬을 지나 선몽대 앞을 지나면서 예천 삼강을 거쳐 낙동강을 향해 흐르는 물길이다. 내성천이 지나는 길목마다 수려한 경관이 걸음을 붙들어 세운다. 자연이 베푸는 최고의 은덕이다. 내성천은 어떤 강보다 생태보존이 필요한 강이라는 걸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근래 많은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으로 생태계가 파괴되는 현실 앞에 내성천을 지켜내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자연자원을 지키기 위한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봄꽃 피어나는 계절을 시작으로 녹음 짙은 여름과 단풍 고운 가을을 지나 눈 덮인 겨울까지, 사계를 이곳에서 즐길 수 있다면 더없는 행복일 테다. 휴가철이면 온 가족이 송림 사이사이에 자리를 깔고 솔이 전하는 향기 맡으며, 내성천 모래톱에서 추억을 쌓아가길 바란다. 선몽대는 한 번으로 만족 되지 않는 곳이다. 몰랐으면 몰랐지 선몽대를 알게 된 이상 계절마다 찾지 않고선 허기를 달랠 수 없다. 경승지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이곳에 걸음을 해보면 알게 될 일이다.

     

     

    선몽대 일원은 비움이 잘 어울리는 곳이다. 강 가장자리와 숲의 경계에 놓여 있는 빈 의자가 그것을 말해준다. 수많은 이의 사연을 알고 있으면서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송림처럼 말이다. 소나무 숲을 거닐다 보니 뜬구름 잡듯 욕심과 집착에 허덕이던 부끄러움 되어 되살아난다. 불필요하게 옭아맨 이기와 허영이 자신을 얼마나 옥죄어 왔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된다. 한참이나 빈 의자에 앉아 유유히 흐르는 물길을 바라본다. 저 강은 한 번의 휴식 없이 흘러왔을 터, 흐르면서 또 얼마나 많은 사연과 부딪치며 멍이 들었을까. 물살 깊은 곳에서는 굽이쳐 흐르다가 완만한 물길에서는 또 얼마나 느리게 흘러왔을까. 똑같은 물길이지만 주어진 환경에 따라 북받쳐 오르기도 하고 가슴이 아리기도 했을 것이다. 윤슬 반짝이는 물길 속으로 불필요하게 쟁여놓은 불편한 감정을 흘려보내려 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다. 더 낮은 자세로 비우고 걸러내며 인내할 일만 남았다.

     

     

    빼곡히 들어선 송림에서 온전한 자유를 느낀다. 수백 년을 이어오는 동안, 뻗쳐나간 뿌리만큼 뻗어 나갔을 가지다. 생의 가지만큼이나 다사다난했을 무게다. 세월을 이고 져오는 동안 이 숲을 거쳐 간 이들의 고뇌는 어디쯤에서 멈춰졌을까를 생각한다. 바람 잘 날 없는 인생길에서 위로가 필요할 때 찾으면 좋은 곳이 바로 이곳 선몽대 일원이다. 명승이 그냥 주어지진 않았을 터, 이렇듯 허한 마음 보상받으며 가슴 가득 위로받을 수 있으니 그 이름값을 하나 보다. 이제 모든 걸 쏟아내도 부끄럽지 않을 용기가 조금은 생긴 듯하다.

     

     

    솔숲을 거닐며 여러 감정과 마주하는 사이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간다. 달궈진 해가 고단한 하루를 안고 기우는 사이 둥근 달이 떠오른다. 소멸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임을 알려주는 신호다. 선몽대에서 맹세한 다짐이 은은한 달 속으로 스며든다. 해와 달의 교차점, 비경을 가슴에 담는 절정의 순간이다.

     

     

     

  • 전미경 글쓴이 : 전미경 -영주에서 출생하여 초,중,고를 다님
    -대학에서 경영학을,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현대문학)을 전공함
    -제21회 신라문학대상 수필 당선으로 등단(2009년)
    -2020년 경상북도 문화진흥기금 수혜
    -수필집『이끼로 사는 이유』발간
    -영주시민신문 오피니언 필진
    -그늘지고 소외된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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