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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경애_영주 문화산책, 지역의 역사인물]보물, 꽃으로 피어나다 소백산 성혈사를 찾아서
    컬처라인 | 2023-10-17 프린트 퍼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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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가 있는 문화탐방

     

     

    보물, 꽃으로 피어나다

       

    소백산 성혈사를 찾아서

     

     

       글, 사진. 안경애

     

     

     

    소백산에 위치한 성혈사(聖穴寺)는 가파른 산비탈, 비좁은 대지 아늑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절의 전각들은 위계에 따른 건축이 아니라 비탈면 지형에 따라 자연스럽게 배치해 놓았다. 일주문을 한참 지나 심검당 옆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가파른 돌계단을 한 번 꺾어 오르면 성혈암(聖穴菴)이라는 현판을 단 2층 누각 아래에 다다른다. 누각 아래 돌계단을 몇 칸 올랐을까? 성혈사 대웅전과 대웅전용마루 위로 만지송(萬枝松)이 눈앞에 펼쳐진다. 대웅전을 지나면 골짜기를 타고 양 옆으로 산신각, 요사채, 나한전, 삼성각이 자리 잡고 있다. 

     

    대웅전 오른편 언덕에는 욕쟁이 스님으로 이름난 봉철스님이 성혈사 주석(駐錫) 시에 함담정(含湛亭)이라는 정자를 지었고, 선화(禪畵)·선시(禪詩)로 독보적인 세계관을 구축한 걸승 중광스님도 말년 한 때를 성혈사 함담정에서 보냈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고 했던가! 성혈사를 떠나 인근 단산 마락리 토굴에서 수행하던 봉철스님도 2011년 열반에 들었고, 걸레스님 중광도 2002년 “괜히 왔다 간다.”라는 묘비명을 남기고 출가했던 통도사에서 입적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성혈사에서의 함담정은 기억일 뿐, 그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성혈사(聖穴寺)의 성혈(聖穴)은 사찰 남쪽에 있는 바위굴을 말하는데, 옛날 이 바위굴에서 성승(聖僧)이 나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창건설화에는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소백산에서 초암사(草庵寺)를 짓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면 지붕 서까래가 하나씩 없어지곤 했다. 이를 의아하게 여겨 주변을 살피니 인근 숲속에 사라진 서까래가 쌓여 있는 게 아닌가! 이에 주위의 풀을 뜯어 초막을 지었는데, 이것이 성혈사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성혈사는 초암의 동쪽 골짜기에 있는데, 초암과 같은 때 창건하였다.”고 나와 있다. 

     

     

    성혈사에는 보물이 있다. 보물 제832호로 지정되어 있는 영주 성혈사 나한전(羅漢殿) 그것이다. 부처의 제자인 16나한을 봉안한 성혈사 나한전은 1553년(명종 8)에 창건해 1634년(인조 12) 중건했다. 나한전 내부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인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있고, 그 좌우로 석조 16나한이 안치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16나한 또는 500나한을 모시는 나한전은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하고 좌우에 ‘나한상’을 배치하는데 성혈사 나한전은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하고 있다. 

     

    나한전이 보물로 지정된 계기는 꽃살문에 있다고 하는데, 꽃살을 투각 형식으로 조각해 놓았다. 나한전 세 칸 문살 중 가운데 어칸 문살은 특히 생동감이 넘친다. 연꽃과 연잎으로 가득한 연못에는 물고기들이 노닐고 참게가 기어 다닌다. 백로는 그 물고기를 잡기 위해 목을 굽혀 물밑을 살피고 있다. 구름을 타고 날던 용은 방금 여의주를 떨어뜨린 듯 급히 한쪽 발을 여의주를 향해 뻗고 있고, 물총새는 연못 속에서 건져 올린 물고기를 입에 물었다. 연잎 위로 폴짝 뛰어 올라앉은 개구리는 한가롭다.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걸까? 연잎 밑으로 숨은 물고기도 보인다. 쌍상투를 귀엽게 틀고 연잎 배에 걸터앉아 연가지로 노를 젓고 있는 동자는 천진하기만 하다.  

     

     

    나한전 협칸 문은 꽃살문이다. 왼쪽 칸에는 잔잔한 비꽃을 사방연속으로 단정하게 꽃피웠다. 한 폭의 민화를 연상시키는 오른쪽 칸 문은 모란꽃살문이다. 소담스러운 모란꽃이 한 아름 피어올랐다. 오랜 세월 모진 비바람 속에서도 꽃살문을 고이 품은 나한전에는 아귀발우도 꽃으로 피어있다. 아귀의 배는 태산 같지만 목구멍은 바늘구멍만해서 고통 없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부처님 전에 올린 찻물뿐이라고 한다. 부처님 전에 올렸던 찻물을 버리는 곳이 아귀발우다. 누구일까? 어느 님의 손끝이 쓰다 남은 전각의 기왓장을 꽃으로 피워냈을까?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거리에 연등이 내걸렸다. 연등을 따라 걷거나, 연등탑 앞에서 손을 모으는 사람들 모두 마스크를 벗고 있었다. 이처럼 서로의 맨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은 공동체의 질서를 중요하게 여기며 나보다 이웃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다. 배려와 연민, 겸손과 겸허, 대범하나 온순하고 너그럽게 일을 처리하고자 하는 마음들이 모여 지난 몇 년간 간절히 바랐던 오늘과 같은 일상을 다시 세웠다. 아귀의 탐욕보다 아귀의 배고픔을 가련하게 여겼던 성혈사 아귀발우의 꽃 그릇을 연등 아래에서도 볼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고통과 슬픔을 내 것처럼 여기는 마음은 스스로 키워내야 하는 것이라서 싹을 틔우는 것도, 그것이 자랄 수 있도록 꾸준히 물을 주는 것도 어렵다. 이기(利己)가 이타(利他)로 건너는 일에 무릎이 몇 번 깨졌던가? 성찰을 모르고 아집을 불쏘시개 삼아 태웠던 관계들. 용서를 모르고 되갚기만을 다짐했던 불면의 밤은 셀 수 없었다. 한순간 화를 내게 되면 내 마음에 백만 가지 장애의 문이 열린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실감하면서도, 문을 연 내 손을 생각하기보다 문을 흔든 바람을 붙들고 탓하기 바빴다. 마음에 물을 준 것이 언제였을까? 아득하기만 했다. 문득, 바람이 그치고 철쭉향이 느껴지더니 산 능선을 향해 기어오르는 살찐 녹음이 보였다. 자타의 구분 없이 사는 일을 잊었을 때 찾은 성혈사. 비로소 봄을 만날 수 있었다.  

     

     

     

     

     

     

  • 안경애 글쓴이 : 안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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